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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윤석열과 2012년 안철수는 ‘닮은꼴’

등록 2021-09-12 14:42수정 2021-09-12 16:0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95
반정치주의 때문에 발생한 신기루
콘텐츠 없이 달려들었다 불쏘시개로
홍준표-윤석열, TK 민심 잡기 대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월 7일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월 7일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역동성입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의 뜨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 속도에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여론조사 회사에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및 적합도 조사를 시작한 것은 대략 2019년 9월부터였습니다.

당시 여당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확실한 1강 체제였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를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 총선과 코로나 정국을 거치면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치고 올라왔습니다. 2020년 여름부터 이낙연-이재명 양강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2021년에는 이재명 경기지사로 선두가 바뀌었습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경선은 ‘1강 1중 다약’ 구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야당은 2019년 9월부터 2020년 4월까지 황교안 대표 1강 체제였습니다. 4월 총선 참패로 황교안 대표가 무너졌습니다.

2020년 7월부터 윤석열 검찰총장이 떠오르더니 2020년 12월부터는 아예 윤석열 1강 체제가 구축됐습니다. 야당 대선 후보는 윤석열로 확정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지금 야당은 윤석열-홍준표, 아니 홍준표-윤석열 2강 체제입니다.

홍준표 의원은 본래 좀 허풍이 센 정치인입니다. 2017년 대선에서 자신이 이긴다고 장담했고, 2018년 지방선거도 자유한국당이 이긴다고 장담했습니다. 물론 허풍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윤석열 전 총장을 꺾고 내가 올라설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홍준표 의원이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비에스> 화면 갈무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에스비에스> 화면 갈무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9월 9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의 보수 진영 대통령 후보 적합도가 홍준표 24%, 윤석열 18%로 나왔습니다. 1주일 전에는 윤석열 22%, 홍준표 19%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연령별, 지역별, 이념성향별, 지지정당별 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후보는 60대 이상, 보수,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만 앞섰습니다. 홍준표 후보가 나머지 연령층, 이념성향, 지지정당에서 모두 앞섰습니다.

특이한 것은 지역별 결과입니다. 홍준표 후보가 대구·경북에서도 윤석열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권역별 샘플 수가 너무 적어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보수의 본산이라는 대구·경북에서도 변화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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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의원은 한껏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9월 9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대선은 우리끼리만 투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기껏해야 35% 내외에 불과합니다.
중도층, 진보층, 호남, 20~40대 표심도 가져오는 확장성이 있어야 하고
또 이분들로부터 거부감이 없어야 이깁니다.
이제 남은 곳은 60대 이상과 TK밖에 없습니다.
이번 주는 JP 희망 로드 마지막 방문지인 대구·경북으로 갑니다.
싹쓸이하고 오겠습니다.

만약 홍준표 의원의 말대로 60대 이상 연령층도 윤석열 전 총장보다 홍준표 의원을 더 지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9월 10일 활짝 웃는 모습으로 프로필 사진을 바꿨습니다. 자신감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홍준표 의원의 상승세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이번 주말 대구·경북에서는 ‘티케이 목장의 결투’가 벌어졌습니다. 홍준표 의원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티케이 민심을 잡기 위해 대구·경북으로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매일신문> 9월 11일 치 신문은 1면과 3면을 할애해 이 소식을 큼지막하게 다뤘습니다. 1면 머리기사와 3면 윤석열 전 총장 기사를 쓴 사람이 공교롭게도 홍준표 기자입니다. 물론 동명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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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11일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준표 의원에게 반격을 가했습니다. 역시 <매일신문> 기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윤석열 “고발사주, 與가 던지고 홍준표 올라탄 행색…기가 찬다” (종합)
11일 국민의힘 대구시당 기자회견서 맹비난
“어떻게 저쪽 주장 벌떼처럼 올라타냐” 성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가 11일 자신을 둘러싼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맹공을 퍼붓는 야권 대선주자들을 겨냥해 “아무리 경선으로 경쟁한다고 해도, 어떻게 저쪽(여당) 주장에 벌떼처럼 올라타느냐. 그렇게 해서 정권교체 하겠나”라고 맹비난했다.

이번 최근 윤 후보를 맹추격하고 있는 경쟁자 홍준표 후보를 비롯한 야권 경선후보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홍 후보는 이날도 페이스북을 통해 “후보 개인의 문제에 당이 말려들어선 안 된다. 당사자들이 자꾸 변명하고 회피하는 바람에 일이 커지고 당도 말려들어 가고 있다”며 “정치공작은 거짓을 두고 하는 것이 공작이고, 팩트가 있다면 경위가 어찌 되었건 간에 공작이 아니라 범죄”라고 윤 후보에게 맹공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정치나 수사를 해본 분들이 딱 이 사건을 보면 어떻게 흘러갈지 감도 올 것이고, 어느 정도 진행돼서 사안이 드러났을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치는데 (일방적인) 주장이 나오자마자 벌떼처럼 올라타는 게 기가 차다”며 “정권교체를 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 야당의 기득권 정치인으로 남아 누리겠다는 거냐”고 비난했다.

특히 지난 10일 홍 후보가 대구시당 기자회견에서 ‘윤 후보는 권력욕이 강해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도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선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관해선 답도 안 하고, 논평도 안 했다. 그 정도로 답변을 대신하겠다”고 비꼬았다. 홍 후보를 검찰총장 시절 갈등을 빚었던 최대 정적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빗댄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고발장 내용에 관해서는 “4월 3일에 자료를 넘겨줬다고 가정하면, 며칠 뒤 고발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선거일(4월 15일) 이전에 수사에 착수할 수 있으며 그런다고 결론이 나오느냐”며 “자세히 말하기 어렵지만 4월 3일 기준으로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도 여기에 다 들어가 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만들어놨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목조목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고발을 사주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는 프레임 아니겠냐. 그러나 작년 1월이면 대검이나 중앙지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조국 사태와 울산 사건으로 보복 인사를 받아 다 나가 있던 상황”이라며 “고발을 한다고 해서 수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하라 그래도 안 한다”고 항변했다.

윤 후보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이번 사건의 제보자 조성은 씨를 만났다는 보도에 관해서도 국정원을 겨냥한 ‘선거 개입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윤 후보는 “국정원장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어제 보도를 보니 호텔 38층 전망 좋은 고급 한정식집에서 어떤 사람이랑 밥을 먹고 또 수시로 본다더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인가. 한번 쭉 지켜보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혹을 처음 보도한 매체를 ‘메이저’ 언론사가 아니라고 말해 논란을 빚은 데 대해선 “오해가 있었다면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 후보는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거나 근무하시는 분들이 분노하거나 상처받았다고 한다면 물론 제 뜻이 잘못 전달된 것이긴 하지만, 얘기한 사람은 저기 때문에 깊이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김근우 기자 gnu@imaeil.com

윤석열 전 총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지요? 윤석열 전 총장의 강점은 극우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홍준표 의원이 앞서는 여론조사에 위기감을 느낀 극우 성향 유권자들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석열 전 총장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가 쓴 ‘홍준표論’(2017.8.1.), ‘윤석열을 주목한다’(2020.12.22.), ‘문재인 5년을 지울 청소부를’(2021.7.13.) 등 과거 칼럼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기세입니다.

아무래도 당분간 대선 정국은 윤석열-홍준표, 홍준표-윤석열의 대결 구도를 중심축으로 전개될 것 같습니다.

윤석열-홍준표, 홍준표-윤석열 두 사람의 대결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결판이 날까요? 아니면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놓고 벌어졌던 이명박-박근혜 대결처럼 보수 세력 전체의 분열로 치닫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저는 결국 홍준표 의원의 승리로 결판이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 전 총장이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반정치주의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최고의 정치인들이 벌이는 최대의 정치 행사입니다. 대선에 나서는 사람은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가치와 비전과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가치와 비전과 정책이 없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정치 콘텐츠가 전혀 없습니다.

1992년 정주영, 2007년 고건, 2012년 안철수, 2017년 반기문도 그랬습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 즉 반정치주의에 기대어 갑자기 출현했다가 사라졌습니다.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였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 ‘신상’(새로운 상품) 효과를 누릴 수 있을 뿐 결국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 반문재인입니다.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 누가 출마하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출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반문재인’ 깃발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입니다. 이제는 반문재인이 아니라 ‘반이재명’ 깃발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를 꺾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야당 지지층이 윤석열 전 총장을 끝까지 지지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꿩을 잡으려면 매가 필요하지, 호랑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월 7일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월 7일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홍준표 대립 구도는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에서 벌어졌던 문재인-안철수 대립 구도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안철수 교수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되면서 갑자기 스타가 됐습니다. 2012년 <안철수의 생각> 서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2011년 9월 2일이었다. 전날 밤 나의 서울시장 출마 결심이 임박했다는 기사가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그다음 날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청춘콘서트 현장은 취재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눈앞에서 그처럼 많은 플래시가 터지는 것은 생전 처음 봤다.

안철수 교수는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한 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이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야권의 유일한 대선주자였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반정치주의, 반한나라당 깃발의 한계였습니다. 안철수 교수는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의 등장 과정도 비슷합니다. 그가 왜 대선주자로 나서게 됐는지 제가 정치 막전막후를 통해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다음 날인 6월 30일 <세계일보> 기사입니다.

“그때 그 조사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도 안 왔다.”

30일 국회 소통관 기자실 세계일보 부스를 찾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취재진을 향해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언급한 조사는 지난해 1월 ‘세계일보 창간 31주년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다.

본지는 지난해 1월 31일 자에 ‘윤석열, 새보수·무당층 지지 업고 급부상…’ 기사를 냈다. 당시 세계일보는 창간 기획을 위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윤 전 총장이 응답자 10.8%의 지지를 얻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야권 주자 중에서는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던 황교안 대표를 윤 전 총장이 오차범위 내에서 따돌렸다.

2012년 안철수 교수나 2021년 윤석열 전 총장이나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 지지도가 올라가면서 대통령 꿈을 품었고 실제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제 윤석열 전 총장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2012년 안철수 교수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반정치주의 및 현직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타고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결국 정당에 기반을 둔 기성 정치인의 대선 출마를 돕는 불쏘시개 구실만 하게 되는 그런 운명 말입니다.

“과거와 완전히 꼭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새롭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완전히 새로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재탕이다.”

역사에서 사건은 늘 새롭지만, 패턴은 반복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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