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BAR

경남 진주서 만난 ‘샤이한 보수’들의 속내…“뚜껑 열면 다 바뀔 것”

등록 2018-06-10 14:15수정 2018-06-22 23:14

정치BAR_김규남의 스냅샷_말하기 쉽잖은 사람들
젊은 유권자들 “자유한국당 심판” 강하지만
노년층 “그래도 새누리당…다들 나랑 비슷“
“이번엔 투표 안해” “선거 묻지말라” 대답도
(왼쪽부터)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후보와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지사 후보
(왼쪽부터)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후보와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지사 후보
이번 지방선거 격전지 중 한 곳인 경남의 민심을 알아보려고 지난 6일 진주시를 찾았습니다. 서부 경남의 중심인 이곳은 ‘경남의 TK’로 불릴 정도로 보수색이 강한 곳입니다. 변화의 기운은 “국정농단 세력인 자유한국당이 아직 죗값을 덜 치렀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심판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젊은 유권자들에게서 명확히 읽혔습니다. 진주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아무개씨(63)씨도 “택시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자유한국당 지지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민주당에도 우호적인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장년·노년층은 달랐습니다. 경남지사 지지 후보를 정했냐고 묻자 택시기사 이씨는 “선거 당일날 돼봐야 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지 후보를 정하는 데 어떤 게 고려 요소가 될까’라고 묻자, 그는 “우리는 60살이 넘어서 보수적인 기질이 있어. 이런 앙케이트(취재에 응하는 걸 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작성되는 건 좀 조심스럽다. 진주하면 보수인데 보수 지지세가 좀 약화되는 등 옛날하고 다르니까”라고 답했습니다. ‘나는 원래 보수적인 사람인데 요즘 분위기가 그러질 않아 솔직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진주중앙시장에서 만난 70대 음식점 사장님도 선거 이야기에 머뭇거리다가 60대 남성 손님이 “여론조사에서는 김경수가 앞서간다고 하지만 지금은 생각들을 잘 안 드러내서 그렇지 여긴 뚜껑 열어보면 다 바뀐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모기만한 소리로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지.” 어렵게 입을 연 음식점 사장님과 ‘근본적인’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왜 새누리당이에요?”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야.”

“사장님뿐 아니라 다른 시장분들도 다 비슷해요?”

“응.”

이 분들에게 ‘드루킹 사건’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택시기사님은 “드루킹 사건은 특검을 하니까 밝혀지겠지. ‘그런 일이 김경수한테 있었는가보다’ 하는 거지 그걸로 물고 늘어질 일은 아닌 거 같다”고 했습니다. 음식점 사장님도 “사람들이 다 알아서 잘 판단하겠지”라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노년층 시민들도 속내를 드러내기를 꺼려했습니다. 중앙시장 정육점에서 만난 한 60대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이번엔 투표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물었습니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으세요?”

“왜 없겠어. 다 있지.”

“그럼 투표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투표하러 가야지.”

“늘 찍던 당 찍으시려는 건가요?”

“(몇 초 고민 뒤) 그래야지.”

중앙시장을 오가며 리어카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80대 할머니는 “김태호는 경남지사를 했었는데 마치고 나서 뒤탈이 없고 뒷말이 안 나오면 잘한 거다. 김경수는 잘 모르고.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김태호가 맘에 드는데 투표를 할지는 모르겠다’는 얘깁니다. 옷가게를 지키고 있던 70대로 보이는 남자 사장님은 “선거 얘기 안 할랍니다. 그냥 가세요”라며 문전박대하기도 했습니다.

김경수 후보가 우세하게 나온 여론조사 결과들을 불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양아무개(65)씨는 “나도 여론조사 전화가 두 번이나 왔는데 응답을 안 했다. 내 지인들도 응답들을 많이 안 한다. 지금 여론조사는 젊은 사람들 의견이 크게 반영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경상대 앞에서 만난 장아무개(65)씨는 “그저께 자녀들이 사는 서울에 갔다왔는데 아들, 딸, 사위, 며느리들이 죄다 1번 찍으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찍을 생각이 없다”며 “이번에는 투표하기 싫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진주에서 스스로 보수라고 밝히거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보수 지지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분들은 지지 정당이나 인물들에 대해 속내를 감추거나 자신 없어하는 ‘샤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안동에서 만난 조아무개(58)씨는 “예전 선거 때는 친구들과 모임을 하면 서로 누구 찍겠다, 누구 찍어라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대체로 선거날 돼봐야 안다는 분위기”라고 귀띔했습니다. 그는 분위기가 바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정치에 회의를 느끼는 거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박 전 대통령 탄핵 영향이 가장 크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은 “보수가 샤이해진 데에는 외부의 압력보다 본인들이 생각해도 보수세력이 부끄럽게 보이는 데 요인이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 위원은 이어 “투표실증이론 연구를 보면 지지 선호가 강해야 투표 동기가 강해지는 반면, 지지 선호가 약하면 투표 동기가 약해지는데 이런 경우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투표일까지 남은 기간 동안 보수세력에 대해 확고한 지지 동기가 생기지 않는 한, ‘부끄러운 보수 표심’이 실제 투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자주 언급되는, 보수를 지지하지만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으며 그 속내를 숨기고 있다는 ‘샤이 보수’는 선거 여론조사의 예측이 틀렸을 때 활용되는 사후적인 개념입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가 다를 때 왜 달랐는지를 분석하면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이라는 것이죠. 또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규모를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번에 제가 진주에 가보니,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를 지지하는 분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자신있게 드러내지 못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거론되던 ‘샤이 보수’를 현실에서 직접 대면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분들이 6월13일 실제로 투표장에 갈지, 투표장에 가서 어떤 선택을 할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관련기사 : 경남의 TK 진주…“그래도 자유한국당” “이번에는 바꿔야”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새해 벌 많이 받으세요”…국힘 외면하는 설 민심 1.

“새해 벌 많이 받으세요”…국힘 외면하는 설 민심

이재명 vs 국힘 대선주자 초박빙…박근혜 탄핵 때와 다른 판세, 왜 2.

이재명 vs 국힘 대선주자 초박빙…박근혜 탄핵 때와 다른 판세, 왜

윤석열이 저래도 국힘 지지율이 민주당과 비슷한 이유 3.

윤석열이 저래도 국힘 지지율이 민주당과 비슷한 이유

국힘,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에 “즉각 석방해야…공수처장은 사퇴하라” 4.

국힘,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에 “즉각 석방해야…공수처장은 사퇴하라”

“부끄러운 줄 알라” “폭동 옹호”…싸늘한 민심 마주한 국힘 5.

“부끄러운 줄 알라” “폭동 옹호”…싸늘한 민심 마주한 국힘

이재명 41 : 홍준표 41, 이재명 41 : 오세훈 41 접전 6.

이재명 41 : 홍준표 41, 이재명 41 : 오세훈 41 접전

윤석열 지지율이 40%?…극우 결집 불쏘시개 된 ‘명태균식 여론조사’[영상] 7.

윤석열 지지율이 40%?…극우 결집 불쏘시개 된 ‘명태균식 여론조사’[영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