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장 책상에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박용진 3법’ 개정안 자료가 올려져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곽상도 위원님 말씀 좀 중지해 주시고요. 협조 좀 해주십시오. 지금 이렇게 할 시간에 제가 보기에 (박용진 3법을 다 읽고 검토하는) 일독이 벌써 끝났습니다.(조승래 교육위원회 법안소위원회 위원장)“
지난 12일 국회 교육위 법안소위에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이른바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대한 법안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이 법의 법안소위 통과를 사실상 막기 위해 “우리 당의 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법안 내용과 무관한 자료를 요청하며 회의를 끊기도 했습니다. <한겨레>는 당시 국회 속기록을 바탕으로 그날 언론의 출입이 차단된 교육위 법안소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장면1. “이 법안을 오늘 꼭 해야 되는지 좀 의문스럽다”
당시 회의에서 ‘박용진 3법’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먼저 ‘포문’을 열었습니다. 곽 의원은 “이 안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른 법안과 합쳐) 병합심사를 하자고 하는 간사 간 합의 여부를 확인해서 그 내용에 대해 확실히 한 다음에 진행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논의 자체를 거부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합심’해 나섰습니다.
“각 당이 요청했던 중점 법안을 올렸고, 그 올린 것이 좀 전에 논의했던 (시간)강사법, 민주당은 유치원 3법, 한국당은 학교폭력 관련된 것들, 이렇게 각자 제안을 하셔서 그것을 순서에 따라 이렇게 쭉 배치한 겁니다.(조승래 민주당 간사)”
“저도 솔직히 그 워딩 자체는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하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조승래 위원장 말씀 취지가 일단 타당하고 봅니다. 일단 저희가 지난주 회의(9일) 때 강독을 한 번 했기 때문에 오늘 다시 강독해서 의견을 조율했으면 합니다.(임재훈 바른미래당 간사)”
그럼에도 곽 의원의 ‘버티기’는 계속됐습니다. 곽 의원은 “오늘 또 얘기하면 결국 어떻게 진행이 되겠냐. 한쪽이 얘기한 거 ’아, 그러면 우리도 안을 낼 테니까 좀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밖에 우리가 얘기할 수 없지 않으냐. 이 법안에 대해서 우리가 결론을 못 내는 상태로 갈 텐데, 그걸 오늘 꼭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저는 좀 의문스럽다”고 했습니다. 보다 못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다시 나섰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순서도 아니고 이후에 올 다른 법안이 어떤 내용인지도 아직 모르는데 그냥 기다리자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법안을 실제로 언제, 어떤 내용으로 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법안 제출을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게 박 의원의 주장입니다.
장면2. “교육부에서 자료 안 줘서 검토 못한 것”
첫 번째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가 되자 또다른 ‘지연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곽 의원이 ‘국공립 확대에 따른 사립 유치원 영향’ 등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며 논의 진척을 막자, 여당은 법안심사소위 테이블에 올라온 박용진 3법 개정안 논의와 상관없는 자료 요구라며 반박했습니다. 곽 의원은 “교육부에서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40%로 맞춰 나가면, 사립유치원을 몇 프로까지 줄여야 하는지 자료를 달라고 얘기해도 아직 안 줬다. 교육부도 자료를 안 주니까 우리도 검토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조승래 위원장이 회의를 계속 이어가려고 하자, 곽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법안에 대해 12월 초면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또 거꾸로 교육부에서 지금 자료를 요청해도 자료가 안 나오니까 저희도 얘기를 만들려고 해도…(곽상도)”
“국공립 유치원 확대에 따른 원아 수의 추이, 국공립 확대에 따른 사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계입니까? (중략) 그것은 지금 보조금으로 전환하거나 회계규칙을 만드는 거하고 관계없는 통계 아닌가요? 국공립 확대 정책에 대한 그것을 예산 때 따지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고요, 예산 심사할 때. 그거 필요다고 생각하면 삭감을 하면 되겠지요.(조승래)”
“국공립유치원 늘고 원아 수가 줄면 현재 75%를 담당하고 있는 사립유치원 수를 대폭 줄여야 합니다.(곽상도)”
“그게 공공성 강화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있어요?(조승래)”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도 가세했습니다. 전 의원은 누리과정을 지원할 때 애초 보조금이 아닌 지원금 명목으로 준 이유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전 의원은 “지금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 대해 당사자들이 그렇게 반대를 한다. 그러면 왜 반대를 하는지 뭘 잘못 알고 반대를 하는지, 그러면 그분들 의견이 뭔지를 그래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장면3. 보다 못해 나선 바른미래당
여기서 다시 상기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이날 법안소위 논의의 핵심은 사립유치원 등에 주는 지원금을 보조금 명목으로 전환해 ‘용도 외 사용금지’를 막고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데 있습니다. 사립유치원 문제가 촉발된 것은 유치원들이 국가에서 받은 지원금과 학부모로부터 받은 돈을 교육 목적이 아닌 곳에 쓴 데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사립유치원에 대해 ‘시설’ 측면으로 접근해 사유재산만 강조하지만, 박용진 의원이 낸 개정안들의 핵심은 유치원이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인 만큼 그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정안 목적은 사유재산을 뺏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지원되는 돈이 교육목적으로 투명하게 쓰이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쳇바퀴처럼 반복되자 임재훈 바른미래당 간사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임 의원은 “오늘 어쨌든 형식적으로나마 심의했는데 사실 내용은 단순하고 복잡한 것은 없어요. 그리고 굉장히 상식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우리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임 의원은 “지원금, 보조금 문제와 회계처리 문제에 대해선 약간의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위원님들이 동의해준다면 다음 주 월요일 정도에 한국당 쪽에서 두 가지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 좀 대충의 안이라도 가지고 와서 다시 한 번 압축해서 심의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이날 논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간사간 합의로 다시 날짜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조승래 민주당 간사는 이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간사와 다시 만나 법안소위 일정을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청와대의 인사 강행을 비판하며 ‘대통령 사과-조국 민정수석 해임’을 요구한 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회 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한 만큼 국회 교육위 법안소위 일정 조율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립유치원 비리근절에 목소리를 높여온 상당수 학부모들은 현 국회 상황을 보면 답답할 것 같습니다. 당시 조승래 교육위 법안소위 위원장의 발언에 이런 상황에 대한 갑갑함이 묻어납니다.
“참 답답한 상황이네요. 그런데 어쨌든 지금 국민들이, 학부모들이 요청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을 빨리 좀 해 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육 당국이나 저희들 입장에서는 입법을 빨리 결론을 내주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있다면 이유는 그것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만들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서 기한 없이 차일피일 만들 테니까 기다려 달라고 하는 데 저희들이 그것 가지고 기다릴 수는 없지요. 그리고 국민이 설득이 되겠습니까?“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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