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이어 보유세까지 부동산 세금 공약 돌연 ‘급변경’ ‘코로나 민생’ ‘국민 부담’ 내세우나 집부자들 더 큰 혜택 ‘전두환 성과’ 발언 파문…차별금지법·탈원전 입장도 모호 ‘양다리’보다 불평등·기후위기 등 대전환기 비전 제시해야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안녕하세요. ‘한겨레 논썰’ 안영춘입니다.
이번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최근 행보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단순한 행보가 아니죠. ‘방향 전환’이 동반된 행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과 관련한 문제에서 가장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이 ‘실용주의자’임을 애써 강조합니다. 무엇이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냐는 반문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대선 투표일이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고, 양강 후보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지지율이 백중세인 상황에 저절로 눈길이 가게 됩니다. 이재명 후보는 이런 시점과 조건에서, 부동산 세금 문제를 승부수로 띄우고, 배수진을 친 게 아닐까요.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부동산 세금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차별성을 보여 승기를 확실히 잡겠다는 의도와 의지가 읽힙니다.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부동산 세금 문제만큼은 아니지만, 이재명 후보는 정치·사회 영역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면모를 자주 보이고 있는데요. 이재명 후보의 이런 주장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가 맞는지, 또 지지율과 득표에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공시가격 전면 재검토”, 실체는?
요즘 이재명 후보의 부동산 세금 관련 주장은 ‘공시가격 전면 재검토’와 ‘다주택자 양도소득 중과세 유예’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표현들이 하나같이 어렵고 복잡한데요. 단순하게 말하면, 부동산 세금의 양대 축인 보유세와 양도세 모두 깎거나, 적어도 인상을 뒤로 미루자는 겁니다.
먼저 ‘공시가격 전면 재검토’. 이재명 후보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립니다.
“어려움에 처한 민생 경제를 고려해 공시가격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디까지 바꾸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명확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동산시장에서는 이런저런 추측이 나옵니다. 가령 ‘전면 재검토라면 적어도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를 늦추자는 것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공시가격 현실화 자체에 제동을 거는 거 아니겠느냐’는 거죠.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는 왜 똑 떨어지게 설명하지 않을까요?
정책 캠프의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다소 즉흥적으로 나와서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의도적으로 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기와 조건만 맞으면, 전략적 모호성이 꽤 효과적일 때도 있긴 합니다. 당장 민주당이 지난 20일 당정협의를 열어서 ‘재산세 동결 카드’를 내놓은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민주당은 내년도 공시가격은 예정대로 발표하되, 재산세를 부과할 때는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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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은 올리는데, 정작 재산세는 공시가격을 올리기 전 기준으로 부과한다…. 제가 과문한지 몰라도, 이런 세금 정책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당론과 정부 정책 기조를 뒤집는 건 모양새도 빠지고, 부동산시장 안정에 미칠 악영향도 큰데, 자기 당 대선후보가 모호한 메시지로 목소리를 높이니까, 민주당이 궁여지책으로 이런 기이한 대안을 제시한 거 아닐까요. 물론 추론입니다.
‘민생 경제’와 ‘공정성’이라는 명분
이재명 후보가 공시가격 전면 재검토까지 들고나온 데는 이런 명분이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민생 경제를 고려해야 한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부담을 온전히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민생 경제’와 ‘공정성’을 위해서라는 뜻이겠죠. 명분에만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실용주의자다운 면모까지 엿보입니다.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책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고, 국민 행복에 필요한 일이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시가격은 68가지나 되는 민생 제도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이 가운데 39가지는 국민이 직접 부담한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복지 수급 자격에서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따져봐야 할 대목들이 눈에 띕니다.
먼저, 이재명 후보가 말하는 ‘집값 폭등으로 인한 부담’이라는 게 뭘까요.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거나, 또는 언제가 될지 모를 까마득한 미래로 미뤄야 하는 무주택 서민들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시원이나 원룸에 사는 청년들을 비롯한 주거 약자는 더더욱 아닐 테고요. 누가 봐도 집값 폭등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난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중산·서민층을 위한 건가
이런 질문을 해보죠. 그 사람들은 집값이 더 오르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세금 부담이 힘겨워서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랄까요?
각종 세금 인상분 총합이 집값 상승분을 넘어서는 지경이 아니라면, 답은 뻔합니다. 집이 한 채인 사람은 거주를 위한 사용가치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조차 자기 집값은커녕 우리나라 전체 집값 평균이 내려가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집값이 아무리 폭등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미실현 이익이고, 세금은 당장 눈앞의 부담이라는 반론이 가능하긴 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집값이 급등했는데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은 과세 체계의 근간을 허무는 일입니다. 이렇게 비유해볼 수 있겠네요.
내 임금이 올랐는데 하필 근로소득세 과세 구간을 갓 넘어서는 바람에, 세금이 임금 인상분보다 더 올라서 실제 가처분소득은 외려 줄었다고 치죠. 근로소득세를 깎아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임금 앞에서는 그 실용주의가 멈춰서야 하는 걸까요?
이런 질문도 해볼 수 있습니다. 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보완책이 늘 있어 왔습니다. 특히 은퇴한 1주택 장기 보유자들에게는 세액을 줄여주고 세금 분납이나 납부 유예도 해주고 있습니다.
세금 깎지 않고도 얼마든지 ‘대안’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미 올해 종부세와 양도세를 한 차례씩 깎아준 바 있습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함께 종부세 과세 기준을 공시가격 9억원(시가 13억원)에서 공시가격 11억원(시가 16억원)으로 올리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지난 8월31일 국회에서 통과시켰죠. 또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12월2일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시가 9원억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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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가 정말로 민생이 어려운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한다면 이들을 상대로만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저가 1주택 보유자에 한해 재산세 인상 상한선이나 세율 조정 같은 방법으로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겁니다. 정부도 지난해 공시가격 6억원(시가 9억원)에 해당하는 1주택자의 재산세율을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인하했고, 올해는 공시가격 6억원 이상 9억원 미만 주택에도 재산세율 특례를 적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서민층과 중산층을 위한 맞춤형 세금 경감이 실용주의일까요, 아니면 수십억대 부동산 자산가들까지 포함한 무차별적인 보유세 동결이 실용주의일까요. 또한 세금은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어느 쪽이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겠습니까. 참고로, 내년 재산세 산정에 올해의 공시가격을 적용하면 중산·서민층보다 고가·다주택 보유자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이재명 후보는 공시가격과 연동된 복지 수급 자격 문제도 언급했는데요. 과연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같은 문제를 푸는 방식이 공시가격을 묶어두는 것 말고 없을까요. 이런 복지제도에 조정계수를 마련해 연동하면 얼마든지 서민·중산층이 복지제도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조세 정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조정계수를 조정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실용적일까요.
실패한 실험 앞에서 ‘묻지 마’ 재실험
이제 ‘다주택자 양도소득 중과 유예’에 대해 짚어 보죠. 이재명 후보는 이것이 공급 확대와 집값 안정으로 이어질 거라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부담 때문에 집을 팔지 못하고, 이 때문에 주택 공급이 줄어들고, 주택 공급이 줄어들어 집값을 끌어올리는 연쇄작용이 일어난다는 거죠. 이재명 후보는 1년 정도 한시적으로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유예해주면 너도나도 자기 살 집 빼놓고 남은 집들을 매물로 내놓을 거 아니냐고 합니다.
그런데 실험을 안 해본 게 아닙니다. 정부가 지난해 ‘7·10 대책’ 때 다주택자 양도세율을 최대 75%까지 높이면서, 동시에 올해 6월1일 법 시행 전까지 11개월의 유예기간을 줬습니다. 거의 1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죠. 하지만 매물 유도 효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10%포인트의 중과세를 유예해도 세율이 55~65%로 증여세 최고세율 50%보다 높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은 매각이 아니라 증여나 임대사업자 등록 같은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끌어내는 정책 효과를 거두려면 중과세 유예 정도가 아니라 양도세율을 증여세율보다 낮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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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실험을 해봤는데도 효과가 없었는데 다시 실험을 하자고 주장하려면, 앞서 실험에 무슨 설계 오류가 있었는지부터 입증하는 게 순서일 겁니다. 그게 없으면 실용주의도 없습니다. 조세 정의에 역행할 뿐입니다.
더구나 이재명 후보의 주장은 자신이 과거에 했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보유세 실효세율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을 현재 0.17%에서 1%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이 재원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습니다. 보유세가 6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재명 후보가 어제의 이재명 후보에게 지금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정치공학적 판단, 그러나 꿈보다 해몽
이재명 후보가 입장을 바꾼 건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공학에 가까운 거로 보입니다.
집값 폭등은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꼽힙니다. 이재명 후보로서는 어떻게든 부동산 문제에서 차별성을 선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겠죠. 더구나 대장동 사태로 한때 윤석열 후보와 지지율에서 크게 격차가 벌어졌으니 더욱 다급했을 수도 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격차를 줄이고 백중세를 이뤄냈습니다.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그런데 지역별 지지율 조사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곳이 어딘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입니다. 20%포인트 넘게 벌어졌던 격차가 12월 들어 바짝 따라붙더니 중순에 접어들자 역전까지 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후보 쪽에서는 이런 변화의 원인을 부동산 세금 공약의 변화에서 찾는다고 합니다. 서울의 집값이 유난히 폭등한 데다 이에 따른 세금 불만도 그만큼 커서 지지율이 낮았는데, 부동산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와 확실한 차별화에 나선 것이 지지율 격차를 좁히거나 역전하는 데 주효했다고 보는 겁니다.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전국 유권자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울과 수도권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다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부동산 세금에 대한 이재명 후보의 방향 전환은 어떤 결과로 귀결될까요?
이재명, 윤석열보다 더 ‘집부자’ 환심 살 수 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재명 후보가 아무리 방향 전환을 꾀하더라도 윤석열 후보보다 ‘부동산 부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이미 보유세와 양도세 세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훨씬 큰소리로 떠들었습니다. 23일이죠. 윤 후보는 내년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이 20일 밝힌 2021년보다 1년 더 뒤로 돌아가겠다는 겁니다. 또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통합을 추진하고, 양도소득세를 개편하고, 취득세 부담을 인하하고, 정부 출범 즉시 부동산 세제 정상화를 위한 티에프(TF)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보다 그들의 환심을 더 많이 살 수 있는 공약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더구나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압도적으로 국민의힘 성향에 기울어져 있었던 데다, 대한민국에서 ‘계급투표’에 가장 철두철미한 유권자 집단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요인을 뭘까요. 부동산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 후보의 부동산 세금 공약이 먹혀서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두 후보가 펼치는 ‘비호감 경쟁’의 무게추가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서울의 유권자들은 벌써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종부세 인상 1년 유예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1년 유예하면, 그 1년이 지난 뒤에는 2배로 세금이 뛰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불신만 더 키우지 않을까요.
전략적 모호성? 효과의 모호성!
앞에서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잠깐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죠.
전략적 모호성은 ‘양다리 걸치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쪽의 거리가 두 다리의 길이보다 멀어서는 안 되겠죠. 주거 약자의 마음도 사고, 부동산 부자의 마음도 함께 살 수 있는 양다리 걸치기 전략은 과연 가능할까요? <조선일보>의 지난 15일치 사설이 그렇지 않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양도세 폭탄 만든 장본인이 세금 깎아줄 테니 표 달라고 한다.’
그동안 ‘세금 폭탄론’ 프레임으로 문재인 정부를 집요하게 공격해온 보수세력은, 이재명 후보가 그들의 주장대로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에 동참했는데도 칭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또 공격의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윤석열 후보가 부동산 종합선물세트 공약을 자신감 있게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이재명 후보가 그만큼 정책의 중심축을 오른쪽으로 옮겨줬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재명 후보의 전략적 모호성은 부동산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영남 지역에 가서 ‘전두환의 경제 성과는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죠.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겨레> 23일치 광주 지역 민심 르포 기사를 보십시오. 송정시장 상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진취적이고 추진력이 있어서 좋아했다. 근데 최근에 전두환씨 관련 발언을 보고 그 한마디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다들 그랬다. ‘미쳤다’ ‘눈이 뒤집혔구나’ ‘앞뒤 분간 못 하는구나’. 본인이 살고자 우리를 이용하는 느낌이었다.”
23일 윤석열 후보가 전북대를 찾아갔는데, 시위대가 이런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두환 학살 옹호하는 윤석열 5·18 영령은 거부한다’, ‘전두환 찬양한 윤○○놈 이○○놈 정신 너갱이 빠진 놈들 후보 사퇴하라.’
어쩌다 이재명 후보는 스스로 윤석열 후보와 패키지가 됐을까요.
[논썰] 이재명의 ‘방향 전환’ 승부수, 약 될까 독 될까
이재명, 남의 밭에 가서 이삭 줍나
이재명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에서도 모호한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늦게나마 법 제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마당에, 보수 기독교 인사들 앞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성소수자 부분만 빼고 입법하는 방안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탈원전 정책은 어떻습니까. 신한울 3·4호기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국민 공론을 거쳐 안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폐기라기보다 멈춰서 있는 것이다. 계속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지, 안 하는 것으로 확정된 게 아니다”라면서, 건설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야릇하게 말입니다.
전두환과 차별금지법, 탈원전 정책 등에 대한 그의 언행을 보면, 부동산 세금에 대한 방향 전환의 속내도 더욱 또렷해 보입니다. 이것을 실용주의라고 주장한다면 실용주의에 대한 이만저만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용주의 하나에도 그 갈래가 복잡하지만, 조선 시대 실학파만으로도 얼추 가름할 수 있습니다. 실학파의 이론은 ‘몸 체’의 ‘체’(體)와 ‘쓸 용’의 ‘용’(用)입니다. ‘체’와 ‘용’의 관계에 관한 넓고 깊은 사상이 실용주의입니다. 관념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본질의 탄탄한 토대 위에서 쓸모를 중시하기. 그것은 자기 밭을 팽개치고 품종이 다른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비전 제시+실용주의’가 선택 받을 것
지금 우리 국민에게는 포스트 코로나와 불평등의 시대, 기후위기의 대전환기를 헤쳐나갈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지도자가 절실합니다. 그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실용주의까지 갖춘 후보가 있다면, 탁류가 가득 휩쓰는 20대 대선에서 당연히 다수 유권자의 선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누구보다 이재명 후보가 유념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한겨레 논썰’이었습니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