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 도착해 승강기에서 눈을 감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했다. 지난해 12월22일 김종인 위원장에게 “선대위 그립을 강하게 잡아달라”고 주문한 지 2주 만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여론조사 지지도가 조금 더 하락했을 뿐이다.
1월3일치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로 실린 여론조사 결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39.4%, 윤 후보 29.9%였다. ‘2030 표심 돌아섰다’는 부제가 달렸다.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는 ‘이재명 39.9%, 윤석열 30.2%’였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국민의힘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른바 메이저 언론을 중시하는 윤석열 후보도 그랬던 것 같다. 모든 일정을 중단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김종인 위원장과의 결별을 최종 선택했다.
정치인의 저력은 견디는 힘이다. 불리한 형세에서도 태산같이 버틸 줄 알아야 정치를 할 수 있다. 과거 큰 정치인들은 다 그랬다. 이재명 후보도 불과 얼마 전까지 불리했던 형세를 묵묵히 버티며 돌파해 냈다. 윤석열 후보의 이번 판단과 선택은 지나치게 가볍다.
어쨌든 윤석열 후보는 급선회라는 모험을 선택했다. 옳은 선택이면 ‘윤석열 선장’이 이끄는 국민의힘이라는 이름의 배가 중심을 잡고 순항할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면 배가 뒤집힐 것이다.
어떻게 될까? 윤석열 후보는 이날 기자들에게 “이제 2030, 그중에서도 30대 청년들을 많이 참여시켜서 대선 캠페인을 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선대위 해체의 명분을 청년 중심 캠페인으로 잡은 것이다. 청년층 이탈을 위기의 원인으로 본 진단은 일리가 있다.
새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오후 부랴부랴 국회 기자실에 나타났다. “준비가 안 됐지만 인사드리려고 나왔다”고 했다. 기자들이 머무는 부스를 일일이 돌며 “잘 부탁한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는 실무에 밝고 경험이 많은 정치인이다. 권영세 본부장 체제의 선거대책본부가 제대로 돌아가고 ‘2030 민심’이 돌아온다면 윤석열 후보도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2030 민심’이 당장 돌아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대와 30대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도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실 국민의힘에서 2030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진 정치인은 이준석 대표, 김종인 위원장, 그리고 경선에서 탈락한 홍준표 의원 세 사람 정도다.
세 사람은 60대 이상 고연령층과 2030 젊은층 유권자들의 동맹으로 ‘4050 유권자들’을 압박해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이른바 ‘세대동맹론’의 신봉자다. 반면에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기존 정치인들은 ‘반문재인 세력’을 총결집해 압도적인 여론으로 정권교체론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반문 연대론’의 신봉자다.
윤석열 후보가 김종인 위원장, 이준석 대표와 사실상 결별하고 홍준표 의원도 경원시하면서 2030 표심을 잡겠다는 것은 표리부동이거나 심각한 엇박자인 셈이다. 자칫하면 선대위 해체를 계기로 2030을 포함한 중도층 이탈이 가속화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지지도가 다시 오르지 않을 경우 윤석열 후보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첫째,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다. 패배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면 어쨌든 정권교체라는 명분은 건진다. 후보 단일화에서 승리하면 3월9일 대선에서 막판 대역전을 노려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선거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와중에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줬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 때는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을 이유로 한나라당에 121석을 줬다.
둘째, 그냥 끝까지 버티기다. 3월9일 대선에서 패배해도 국민의힘은 없어지지 않는다. 6월1일 지방선거도 치러야 한다. 낙선한 대선 후보는 야당의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1997년 대선에서 패한 이회창 총재가 그랬고, 2012년 대선에서 패한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다. 2017년 대선에서 패한 홍준표 의원도 그랬다. 윤석열 후보도 그럴 수 있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가 이날 성명을 냈다.
“선대위의 사실상 해체 수준에 이른 현 시국을 당 존폐 위기로 규정하며 당 대표와 후보, 의원직 총사퇴 수준의 결기를 갖고 선대위 재건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윤석열 후보 사퇴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가 자진해서 사퇴하거나 국민의힘이 윤석열 후보를 출당시키는 장면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국민의힘에는 그만한 내부 동력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