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며 정치개혁 등 쇄신안을 내놓았다. 이재명 대선 후보의 지지율 정체가 이어지고 이대로 대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에서 반전을 위한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서 터져나온 ‘586 용퇴론’의 물꼬를 튼 송 대표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당을 혁신하는 한편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2030세대를 겨냥해 “지방선거에서 청년들을 파격 공천하겠다”는 카드도 내놨다.
송영길, 지도부 모르게 결단…총선 불출마 ‘솔선수범’
송 대표의 이날 쇄신 기자회견은 당 지도부도 모르게 진행될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총선 불출마는 물론, 당내 이견이 있었던 서울 종로 무공천, 국회의원 4선 연임 금지 추진은 당 지도부와 상의하지 않고 본인의 결단으로 기자회견을 한 뒤 최고위원회의 추인을 받았다. 송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최근 열흘 가까이 부·울·경 지역 등을 다니면서 고민이 많았다. 총선 불출마 등은 지난 일요일에 최종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송 대표는 1984년 연세대 최초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돼 민주화운동을 이끈 86세대의 맏이다. 이재명 후보가 30% 지지율에 묶여있는 상황이 반전되지 않으면 대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당 대표로서 솔선수범에 나선 모양새다. 송 대표는 이날 총선 불출마 선언 뒤 “(용퇴는) 헌법기관으로 자신이 책임지고 하는 거지 누가 강요하고 압박하는 문제 아니다. 각자가 판단할 문제”라고 했지만 “운동권 동우회 기득권을 타파하자”며 동참을 호소했다. 송 대표와 연세대 동창인 우상호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저희는 부족했던 점을 부끄럽게 반성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저는 지난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호응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인 한 의원은 “이런 움직임이 송 대표에서 그치면 단기 이벤트처럼 비쳐질 수 있다”며 “이 움직임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종로 공천” 주장 많았지만, 강한 반성 위해 ‘무공천’으로
당내 이견이 있었던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 문제도 송 대표의 결단으로 정리됐다. 민주당은 보궐선거에 ‘귀책 사유’가 있는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이전의 당헌·당규를 복원하기로 했지만, 서울 종로 지역구 공천 문제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사퇴했기에 선거법(경기 안성), 정치자금법 위반(청주 상당)으로 재보선을 치르게 된 다른 지역구와 성격이 다르다는 반론이었다. 대선일인 3월9일에 함께 치르는 재보선에서 ‘정치 1번지’에 당연히 후보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고 이 전 대표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송 대표는 반성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종로 무공천을 결정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종로는 싸워볼 만한 곳이다. 귀책사유로 공천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책임지고 절실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충돌 논란으로 검찰 수사 중인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과, 민주당 출신인 윤미향(기부금 유용 의혹), 이상직(비상장주식 백지신탁 의무 위반) 무소속 의원 제명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것도 반성과 정치개혁 다짐을 담은 제안이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야당이 협조하면 조속하게 처리하려고 했다”며 “2월 임시국회가 합의됐으니 빨리 상정해서 처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국회의원 동일 지역구 4선 연임 금지와 지방선거 청년 30% 공천은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 구상이다. 송 대표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만들어주는 민주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청년층에 구애하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에 맞춰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는 26일 총선·지방선거에서 특정 세대에 공천이 쏠리지 않게 하는 ‘세대 균형 공천’ 방안과 4선 연임 금지를 지방의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의원들의 정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을 송 대표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인다며 반발 기류도 형성되고 있어 향후 진통도 예상된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국회의원 3선 초과 불출마는 동의하지 않는다. 발표는 해놨으니 뒤집으면 대표 나가라는 소리여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도부 관계자도 “본인은 5선이고 광역시장까지 했으니 불출마 선언한다는 건데 남들도 다 하지 말라는 거냐.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민주 내부 보고서 “서울 판세 열악…중도노선으로 이탈층 복원해야”
민주당 내부의 대선 패배 위기감은 내부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서울시 유권자 정치지형과 대선전략 함의’ 보고서에서 “전국에 비해 서울은 열악한 판세”라고 진단했다. 서울시당은 지난 8~9일 만 18살 이상 25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를 실시했고,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연령대(20~50대) 중 지난 총선 이후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유권자 대상으로 지난 10~13일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을 진행했다. 이 후보의 스왓(SWOT)분석을 보면 약점으로는 △대장동 연루 의혹 및 유권자들 의구심 미해소 △대표적인 선거공약 부재 △200 여성 지지 가능성 하락 등을 꼽은 반면, 강점은 경쟁후보 대비 개인적 역량이 우수하다는 점이었다. 보고서는 “네거티브 전장에서는 이 후보 역시 약점이 큰 상태이며, 승산이 불투명한 반반 게임이 될 것”이라며 “과도한 네거티브 전환 대신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역량대결의 전장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전략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이탈층의 다수는 압도적으로 부동산 대책은 중시하고 검찰·언록 등 권력기관 개혁 의제에는 관심이 적다고 분석하며 “중도노선(탈진영, 현실주의적 접근)을 강조해야 이탈층의 복원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 북부 지역을 순회한 이재명 후보는 송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높이 평가했고,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 등을 거듭 반성하며 정치개혁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는 이날 경기 북부 지역을 순회하며 “친구에게 ‘너 출마하지 말아라’ 이러기 어렵다“며 “그래서 ‘나부터 내려놓는다’고 했으니 진정성을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로 지역 무공천 방침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못이라 할 수 없는 곳도 공천을 포기해 진정성을 갖고 변화한다는 말을 당 대표께서 드린 것”이라고 호응했다. 이 후보는 이어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면 상대가 반칙해도 우리는 정도를 갔어야 했다”며 위성정당 창당을 반성한 뒤 “그게 국민이 원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간 길”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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