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괴이한 당선자의 언행…‘검찰 왕국’과 ‘제왕적 대통령’의 귀환 조짐

등록 2022-04-17 07:29수정 2022-04-17 09:07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24
대통령 당선자의 마이동풍 리더십

‘광화문 시대’ 공약 깨고 사과 없어
안철수와 공동정부 약속도 실종
측근 중용 ‘마이웨이’ 장관 인사에
지방선거-당내 정치 등 개입 정황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4일 서울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3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4일 서울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3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윤석열 당선자에 대해 저는 마음의 짐이 좀 있습니다. 지난해 3월에 쓴 ‘윤석열 총장 정치하지 마시라’라는 제목의 칼럼 때문입니다. 검찰총장 사퇴 직후였습니다.

당시 저는 두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 정치와 국정 경험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돼도 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 여론조사의 높은 지지도는 거품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확실히 틀렸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3월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저는 윤석열 당선자가 잘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희망했습니다. 정치를 만류하며 들었던 첫번째 이유도 저의 잘못된 생각이었기를 바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잘하지 못하면 무엇보다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이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저는 득표율 0.73%포인트 격차가 윤석열 당선자에게 꼭 필요한 겸손의 덕목을 선사했기를 기대했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36.64%의 낮은 득표율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4·26 총선에서 패배해 여소야대 정국을 맞았습니다. 마음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집권당 일변도의 정치 시대는 지나가고 여야 동반자 시대가 도래했으므로 여야 협조 체제가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부단히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내와 관용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런 기본자세를 갖지 않고서는 역사를 진전시킬 수 없다.”(노태우 회고록)

벌써부터 못 믿을 태도들

어떻습니까? 저는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압도적인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나가야 하는 윤석열 당선자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인내와 관용과 기다림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자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3월9일 이후 최근까지 다섯개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첫째,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브리핑입니다.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집 ‘정부 혁신’ 편에는 이런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청와대 해체 및 대통령실 광화문 이전으로 ‘제왕적 대통령’ 잔재 청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 집무실, 비서실, 분야별 민관합동위원회 설치. 대통령과 공무원, 민간인재들이 함께 일하고, 국민과 항상 자유롭게 소통하는 대통령실로 공간 재구성. 청와대는 명칭까지 완전히 폐지. 대통령 관저, 대통령실과 공간적 분리 및 이전.”

윤석열 당선자는 가장 중요한 공약을 명백히 파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3월20일 회견문을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사과나 유감이라는 표현조차 없었습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하는 저의 의지를 헤아려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구한다”는 당부가 있을 뿐입니다. 사과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자존심 때문일까요? 혹시 평생 검사로 살면서 남에게 갑질만 하고 머리를 숙여본 경험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둘째, 정치 개입입니다.

저는 윤석열 당선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6월1일 지방선거와 당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간접적인 정황이 많습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김태흠 의원에게 충남지사 출마를 직접 권고했습니다. 그 결과 ‘윤핵관’ 권성동 의원이 원내대표에 쉽게 당선됐습니다. 김은혜 의원이 인수위원회 대변인을 팽개치고 갑자기 경기지사 후보로 나섰습니다. 거당적인 지원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윤석열 당선자와 겨뤘던 유승민 전 의원은 난감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4월11일과 12일 안동, 상주 등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해 거리에서 유세를 방불케 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특유의 어퍼컷까지 날렸습니다. 제가 정치부 기자를 꽤 오래 했지만 대통령 당선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1일 오후 경북 상주시 상주중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1일 오후 경북 상주시 상주중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유영하 변호사를 돕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다퉜던 홍준표 의원이 유영하 변호사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에 있던 황상무 전 <한국방송>(KBS) 앵커가 강원지사 후보로 확정됐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이뤄진 것일까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무를 흔들고 뿌리를 뽑기도 합니다.

셋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저는 윤석열 당선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서 “공직자로서 직분에 맞는 일을 했다 해도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대단히 미안한 그런 마음을 인간적으로 갖고 있다”는 정도로 말할 줄 알았습니다. 지난해 12월 방송기자클럽에서 했던 발언입니다. 그런데 “참 면목이 없다. 늘 죄송했다”고 했습니다. 왜 면목이 없고, 뭐가 죄송했다는 것일까요?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대한민국 검찰총장을 했던 사람으로서 자존심도 없는 것일까요? 저는 윤석열 당선자가 검찰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넷째, 마이 웨이 인사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18명의 장관 후보자,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등이 발표됐습니다. 결과는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이상 남자)이었습니다. 장관 후보자 18명 중에 30대는 없고, 호남 출신은 1명, 여성은 3명뿐입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서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것이 인사의 기준”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준은 그렇게 정해놓고 실제로는 지역과 세대와 성별로 안배하는 것이 우리나라 고위 공직 인사의 불문율입니다. 그걸 몰랐다면 윤석열 당선자는 정말 순진한 사람입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법무부 장관에 검사 시절 최측근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40년 지기’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자신의 충암고, 서울법대 후배를 앉히려 하고 있습니다. 무리한 인사에는 무리한 설명이 불가피합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대구 발전을 위해 경북대병원장을 임명했으니 잘 해결될 것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공동취재사진

다섯째, 통합정부 약속 파기입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을 겨우 6일 앞둔 3월3일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습니다. 국민 앞에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오늘 저희 두 사람이 정권교체의 민의에 부응하여 함께 만들고자 하는 정부는 미래지향적이며 개혁적인 ‘국민통합정부’입니다. ‘국민통합정부’는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승자독식, 증오와 배제, 분열의 정치를 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국민통합정부는 ‘통합정부’입니다. 국민통합 없이 위기를 극복한 나라는 없습니다. 분열과 과거가 아닌 통합과 미래를 지향하고, 잘못된 정책은 즉시 바로잡아 대한민국을 바른 궤도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단절과 부정이 아닌 계승과 발전의 역사를 써나가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 국민을 가르는 분열의 정치는 사라질 것입니다.”

“국민통합정부는 대통령이 혼자서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가 아닐 것입니다. 협치와 협업의 원칙하에 국민께 약속드린 국정 파트너와 함께 국정 운영을 함께 해나가겠습니다. 인수위원회 구성부터 공동정부 구성까지 함께 협의하며 역사와 국민의 뜻에 부응할 것입니다.”

이렇게 다짐했던 윤석열 당선자가 4월14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와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한 뒤 짜증을 냈습니다. 기자들이 안철수 인수위원장과의 공동정부 구성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는 질문을 계속해댔기 때문입니다.

“저는 좀 이해가 안 됩니다만 제가 추천을 받았고, 인선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 문제가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국정 파트너와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은 장관직을 나누는 것입니다. 다른 의미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안철수 위원장은 윤석열 당선자에게 농락당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14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완전히 하나가 되기로 했다”고 합니다. “웃음이 가득했고 국민들 걱정 없이, 공동정부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손잡고 가자고 했다”고 장제원 비서실장이 전했습니다. 정말요?

곳곳에 그로테스크한 장면들

국회 다수 세력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는 어차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내 경선을 했던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을 골탕 먹이고, 공동정부 구성을 약속했던 안철수 위원장까지 외면하는 윤석열 당선자의 정치를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영어로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극도로 부자연스럽고 괴이하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윤석열 당선자의 최근 언행을 표현하기에 딱 적합한 단어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당선자의 마이동풍 리더십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대선 전부터 걱정했던 검찰공화국이 도래한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때문입니다. 또 삼김 시대 이후 이제는 거의 사라진 줄 알았던 제왕적 대통령이 귀환하는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혹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증오가 뼈에 사무친 나머지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불러내서 대통령 자리로 밀어 올린 이른바 보수가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너무 심한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무조건 보호가 사명? ‘내란수비대’ 경호처 폐지될 수도 1.

윤석열 무조건 보호가 사명? ‘내란수비대’ 경호처 폐지될 수도

‘법꾸라지’ 전락한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여당서도 “볼썽사납다” 2.

‘법꾸라지’ 전락한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여당서도 “볼썽사납다”

우원식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 배제 자의적”…권한쟁의 청구 3.

우원식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 배제 자의적”…권한쟁의 청구

[영상] “윤석열이 대한민국”…‘내란선전’ 윤상현 제명청원 12만명 넘어 4.

[영상] “윤석열이 대한민국”…‘내란선전’ 윤상현 제명청원 12만명 넘어

버티는 윤석열에 보수언론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5.

버티는 윤석열에 보수언론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