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박찬식 예비후보가 25일 제주시 중앙로 선거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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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 검토위원회가 국토교통부의 고집으로 업무 개시 석달 만에 문을 닫게 된 2018년 12월13일, “공항 건설비로 5조원 돈을 쓰겠다면서 나랏일을 이따위로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위원회는 이때까지 입지 타당성 검토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그때, 굉장히, 진짜 화가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바쳐서 이건(제2공항은) 막겠다”고 결심했다. 그길로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제주로 돌아왔다. 대학 진학차 고향을 떠난 지 36년 만이었다. 그리고 ‘공항 싸움’은 그를 ‘무소속 제주지사 후보’의 길로 이끌었다. 이 사람, 박찬식(59) 제주지사 예비후보를 지난 25일 오후 제주 이도2동 선거사무소에서 만났다.
―제주지사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좀 의외였다. 계기가 뭔가?
“도민 반대 여론이 절반을 넘는데도, 제2공항을 하면 안 된다는 유력 도지사 후보가 어느 당에도 없다. 제2공항은 앞으로 제주도가 난개발·투기·성장을 계속 지향할 거냐, 여기서 멈추고 자연환경·역사·문화를 잘 보존하면서 미래를 설계할 거냐를 가르는 이정표다. 코로나19 직전까지 제주 공항 수요가 3천만명, 그러니까 관광객 수로는 1500만명이다. 그것만으로도 제주도는 이미 쓰레기, 하수 처리, 교통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포화상태를 넘었다. 그런데 국토부는 제2공항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수요를 4천만명(관광객 2천만명)으로 잡았다.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도민이 희생돼도 되는 건가?”
제주도민들에게 그는 사실 ‘상황실장’으로 더 익숙하다. 2019년 7월, 11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을 맡아 그해 9월 원희룡 당시 지사와 일대일 티브이(TV) 토론, 11월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 등에 나서며 제2공항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80분 동안 진행된 원 지사와의 ‘맞짱 토론’에서 그는 현 제주공항 활용 방안,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보고서 은폐 의혹, 도민 의견 공론화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도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국 2015년 사전타당성 보고서 발표 당시 71.1%에 이르던 제2공항 찬성률(<한국방송(KBS)> 제주방송총국)은 완전히 뒤집혀, 2020년 32.2%(<제주문화방송>)로 주저앉았다. 당정 협의를 거친 지난해 2월 ‘공식’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이 더 높았는데, 문제는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하고 존중하겠다”고 했던 국토부가 강행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박찬식 예비후보가 25일 인터뷰에 앞서 제주시 중앙로 선거사무소 앞에서 사진취재에 응하고 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제2공항 문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막을 방법이 있나?
“정확히 말하면, 제2공항과 관련해 지금 법률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 기본계획 수립하고 전략환경영향평가 동의 절차를 거쳐 기본계획을 고시해야 거기가 공항 부지라고 법적으로 확정되는데, 지금은 ‘검토’ 단계다. 취소 소송을 내고 싶어도, 소송할 처분 자체가 없다. 이 검토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민의 뜻이고, 도지사는 그걸 받들어 관철시키면 된다. 국토부가 주민투표에 반대해서 실시한 게 지난해 2월 여론조사다. 최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2개 기관에, 그것도 보통 조사 규모의 2배인 각 2천명씩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미 도민 의견 수렴 절차는 끝났다. 환경부가 지난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한 건 사실상 부동의한 건데, 국토부가 계속 쥐고 있는 바람에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제2공항으로 인한 갈등 수습과 대안 등을 놓고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도로 제2공항을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로 돌아가는 게 안타깝다. 제주가 언제까지 이 문제에 붙들려 가야 하나.”
―제2공항의 대안으로 현 공항을 확장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가능한가?
“2013~2015년 정부에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할 때, 현 공항 용량 증대 방안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에 맡겼다. 국토부 취지는, 제2공항을 짓기 전까지만 현 공항을 활용할 방안을 가져오라는 거였는데, 이들은 아예 현 공항 활용만으로도 국토부가 제시한 제2공항의 장기 수요 자체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래서 그 보고서를 국토부가 덮었던 것 아닌가.”
―‘입도세’ 신설을 공약했는데.
“현재 제주도는 관광객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와 하수 처리, 교통혼잡과 대기오염 문제 대응 등에 쓰겠다며 1인당 8천원 수준의 ‘환경보전기여금’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도민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제주라는 섬의 특수성이 입도세의 근거가 돼야 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생물권보전지역·세계지질공원 세가지에 다 해당되는 곳은 전세계에서 제주밖에 없다. 람사르 습지 도시이기도 하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섬이다. 반면 여기서 발생하는 쓰레기 등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렵고 한번 훼손되면 되돌리기도 힘들다. 도민은 물론, 제주도를 찾는 분들이 함께 지켜야 하는 곳이라는 얘기다. 도민은 경관, 생태, 지질, 바다 등 제주의 가치를 지키고, 그에 드는 비용은 관광객이 나눠서 함께 부담해야 한다. 가령 바다나 오름, 곶자왈, 과수원을 관리하는 주민 모임이나 사회적 기업 등에 입도세로 참여소득을 지급하면, 제주를 지키면서 그 혜택은 모두가 나눌 수 있다.”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박찬식 예비후보가 25일 제주시 이도2동 제주참여환경연대에서 생태여행 종사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서귀포 월평동 출신인 그는, 제주교대 부속초와 제일중, 오현고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하고 1982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학력고사 전국 1등’을 한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같은 해에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나란히 진학한 것이다. 같은 제주 출신인 두 사람은 친구가 됐고, 한때는 노동운동을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길은 갈라졌다. 1992년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원 전 지사는 검사, 국회의원, 제주지사 등으로 승승장구했고 지금은 윤석열 정부의 첫 국토부 장관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 후보는 1985년 반독재 시위를 벌이다 구속됐고, 이듬해 출옥한 뒤 2005년 영국 요크대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서도 뿌리인 고향의 문제 해결에 깊이 개입하기도 했다. 그는 ‘4·3 50주년 기념사업추진 범국민위원회’에서 정책팀장 등을 맡아 4·3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고,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 등을 지내며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재심 등을 명문화한 4·3 특별법 전면개정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 제2공항 저지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그리고 이젠 영리병원의 공공병원화, 성산 물류특구 신설, 승용차 이용을 줄일 무상버스 도입, 제주도 추가 배송비 폐지 등을 공약하는 도지사 후보로 나선다.
―원희룡 전 지사의 도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제2공항 문제 등에서 계속 맞서 싸웠는데, 여전히 친구인가?
“정치적으로 명확하게 대립하지만 친구가 아닌 건 아니다.(웃음) 원 지사의 제일 큰 문제는 일관된 기조가 없었다는 점이다. 2014년 처음 당선됐을 땐 새누리당 소속이긴 했지만, 기존 도지사가 워낙 ‘괸당(혈연, 지연을 이르는 제주말) 정치’로 지역사회를 흐려놔서 원 지사가 오히려 개혁 세력이었다. 초반엔 난개발이나 중국 자본 유입에 반대하고 환경적 가치를 지키려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동물테마파크, 사파리월드, 송악산, 비자림로, 영리병원, 제2공항 등 끝내 난개발을 부추기고 말았다. 특히 제2공항 추진은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는 반민주적인 폭거, 해석 쿠데타를 한 거다. 영리병원은, 자기 공약으로 공론조사 결과를 따르겠다고 해놓고는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는데도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꼼수를 내놓으며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떨어지면서는 완전히, 걷잡을 수 없이 보수적인 모습으로 돌아섰다.”
―정당이 아닌,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는 이유가 뭔가?
“진보정당조차도 중앙정치 흐름에 좌우되고, 지역의 문제에 꾸준히 천착하면서 지역의 대안을 만드는 모습이 부족하다. 한편으론, 진보정당이 하나로 결집돼 있었다면 선택이 간단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영국 유학 갈 당시만 해도 귀국하면 민주노동당에서 정책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분당돼버렸다.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어느 한 정당을 선택하는 건 오히려 제주 지역 상황과 의견을 폭넓게 모아내기 힘들다.”
―주민과 관광객이 모두 행복한 제주는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제주의 강점은 도시적인 관광 시설이 아니라 자연과 농촌, 농업이다. 그 부분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과 수용 능력을 평가해야 하는데 여태 체계적인 연구가 안 돼 있다. 적정한 관광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과학적인 연구가 축적돼야 하고, 그걸 기초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이뤄야 한다. 만약 적정 관광객이 1200만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에 맞게 관광객 수를 줄일 정책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