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백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왼쪽)과 제방훈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회장이 18일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국회에는 300명의 의원을 보좌하는 2700명의 보좌진이 있다. 의원실을 직장 삼아 일하는, 정치를 다루는 직원이다. 의원을 보좌하며 정책과 법안을 만들고, 여러 행사의 축사와 연설문, 각종 보도자료를 작성한다. 지역구 민원을 들어주고 해결하기도 한다.” 2019년 방영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보좌관>은 주인공 이정재씨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말은 국회 보좌진의 업무를 그대로 잘 설명해 준다. 국회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과 5~9급 비서관 6명, 인턴 1명까지 모두 9명의 보좌진이 붙어 입법과 정책 활동을 돕는다. 흔히 보좌관이라고 하면 이들 9명을 통칭해 이른다.
1년 중 가장 바쁘다는 국정감사를 끝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을 18일 만났다. 제방훈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회장(서일준 의원실)과 이지백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기동민 의원실)은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국회 인턴에서 시작해서 4급 보좌관까지 올라왔다. 두 사람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국회의원 보좌관과 얼마나 비슷한 모습일까, 또 정치권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보좌관들은 현장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 얼마 전 국정감사가 끝났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국감인데, 여야가 바뀐 걸 실감했습니까?
이지백 민주당 보좌관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여당과 야당을 대하는 정부 공무원들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고요, 자료 협조라든가 그런 게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모시는 기동민 의원은 여당 때 상임위 간사를 여러 번 하셨는데, 그때는 정부 쪽에서 찾아와서 협조도 많이 구하고 내밀한 얘기도 많이 했거든요. 이젠 그런 게 거의 없습니다. 보좌관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이번 국감을 거치며 민주당의 여당 물이 쏙 빠졌다고 얘기를 합니다.”
제방훈 국민의힘 보좌관 “이번 국감이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국감이면서 동시에 문재인 정권 5년을 평가하는 국감이었지 않습니까? 여당은 문재인 정권의 과오를 되짚거나 새 정부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반면에, 야당은 새 정부의 실책을 집중 공격했다는 점에서 여야가 확실히 바뀐 게 실감이 났습니다. 여당이 되니까 정부와 협조해야 할 부분도 많고, 방향성을 함께 하는 부분도 많아졌습니다.”
― 국정감사가 국회 보좌진에겐 1년중 가장 중요하고 바쁜 시기인가요?
이지백 “그렇죠. 10월에 국감을 하면 보통 7, 8월부터는 본격 준비에 들어갑니다. 그때부터는 퇴근도 없고 휴일도 없어요. 국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자료요청입니다. 정부기관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료를 잘 내놓지 않죠. 처음엔 포괄적 자료를 요청했다가 거기서 문제 되는 자료를 좀 더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이런 식으로 서너 차례 자료요청을 해야 원하는 자료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자료를 어떻게 끄집어내느냐, 이게 보좌관의 실력입니다.”
― 국정감사에 대한 국민 관심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 정쟁은 더 심해지고요. 행정이 많이 공개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그래서 국감 무용론도 나옵니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요?
제방훈 “정치와 감사의 본질상 정쟁으로 비치는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언론에서도 정책적인 부분이나 대안 제시보다는 자극적으로 다투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국감을 하루종일 지켜보면, 여야 의원들이 낮엔 싸우다가도 한밤중엔 중요한 정책 질의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건 언론에서 다루질 않죠. 그래도 국감을 실제 준비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국민 삶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크다고 저는 봅니다. 상당히 전문적인 부분까지 장관에게 문제를 지적해서 제도 개선을 이뤄내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좋은 기능은 더 확대하고 정쟁으로는 치닫지 않도록 협조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지백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국정감사 빼고는 국회가 정부기관으로부터 1년에 서너 차례 업무보고 받는 게 전부거든요. 업무보고는 대부분 현안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정책이나 제도를 깊숙이 들여다보기 어렵습니다. 국감은 업무보고보다 몇배나 깊이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국회 활동이 결산 심사와 국정감사, 그리고 예산안 심사로 이어지는 과정이거든요. 그런데 결산 심사엔 언론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산 심사만 제대로 이뤄져도 국감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사안들이 무궁무진하게 제기될 겁니다. 올해는 특히 정쟁이 부각됐는데, 그건 감사원 감사가 핵심 요인이었어요. 거의 모든 상임위에서 감사원의 정치감사 논란이 앞세워지면서 정책 질의는 뒤로 밀린 측면이 큽니다.”
― 요즘처럼 여야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심하면 보좌관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있을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여야 갈등과 별개로 보좌관들은 개인적으로 친합니까?
제방훈 “실제로 긴장감이 있습니다. 제가 느낀 걸 솔직히 말씀드리면, 문재인 정부 5년간 정치가 실종됐고 이게 보좌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과거엔 카메라 앞에서는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서로 다투다가도 카메라가 빠지면 악수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고소·고발이 난무합니다. 의원들 분위기가 그대로 보좌관들에게 연결이 됩니다. 상대 진영을 존중하고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당분간은 어렵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지백 “ 의원들 사이에 감정적인 공방이 벌어지니까 그게 보좌관들한테도 영향을 끼칩니다 . 과거에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당을 넘나드는 보좌관들이 있었거든요 .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끊어졌어요 . 여야 모두 ‘ 상대 당에서 일했던 보좌관은 받지 말라 ’ 는 게 지금 분위기입니다 . 보좌관은 개별 의원실에서 판단해서 뽑으면 되는데 , 이렇게 진영을 나누니까 보좌관들끼리도 당이 다르면 예전과 같은 친밀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진 거죠 . 그래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끼리는 친합니다 . 여야 모두 국회 사무처를 상대로 해서는 처우 개선 등 공동의 이해를 갖고 있거든요 . 그래서 경력이 많은 보좌관일수록 여야를 넘어 친분이 강한 편입니다 . 저는 정말 부끄러운 게 , 이런 말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국민의힘 보좌관들도 비슷한 생각일 거예요 , 제가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니까 국민의힘이 야당일 때 하던 얘기를 똑같이 하고 있는 거에요 . 그럴 때는 여야가 정말 이념적으로 확 다른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
― 두 분 사이는 어떻습니까?
이지백 제방훈 “우리는 엄청 친합니다.”(웃음)
이지백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왼쪽)과 제방훈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회장이 18일 국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2019년에 이정재씨가 주연한 드라마 <보좌관>을 두 분도 보셨을 텐데, 현실과 드라마는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릅니까? 드라마에 나오는 어느 배우가 현실의 보좌관에 가장 근접해 있습니까?
제방훈 “국회 보좌관은 잘 드러나지 않는 직업인데요, 드라마 인기와 함께 큰 관심을 받게 돼서 약간은 얼떨떨했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보다는 현실이 훨씬 치열한 편입니다. 드라마와 가장 다른 점은, 보좌관을 하다가 바로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은 사정이 좀 낫지만, 국민의힘은 더 심각합니다. 또 드라마에선 보좌관 역할인 이정재씨가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해 검찰 또는 경찰 내부자로부터 몰래 자료를 받아 언론에 흘리거나 폭로하는데,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자료 출처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의원실에서는 이슈 메이킹을 위해 수시로 자료를 요구하고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지백 “예전에는 ‘슈퍼 보좌관’이란 말이 있었어요. 대선주자급 의원의 보좌관인데 웬만한 초선 의원보다 영향력이 커서 그렇게 불렀어요. 드라마의 이정재씨가 ‘슈퍼 보좌관’인 셈이죠. 웬만한 의원 이상의 정무적 판단능력과 정치력을 가졌지만,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슈퍼 보좌관은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 국회에서 ‘의원급 보좌관’이란 말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드라마 <보좌관>에 나온 극적인 요소들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닌데 지금은 맞지 않는 내용인 거죠. 그 드라마에서 우리랑 똑같다는 말을 많이 한 배역은 배우 이엘리야씨가 연기한 5급 비서관이었어요. 이 분이 시즌2에선 보좌관으로 승진하는데, 다들 저건 우리 얘기라고 말했어요. 정책 준비부터 민원, 잔심부름까지 잡무란 잡무는 다 하거든요. 현실에선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정말 그렇게 온갖 일을 합니다.”
― 그래도 현실에서 보좌관은 정부기관이나 기업들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정책 질의나 증인 채택 등에서 역할을 하니까 로비 대상이 되기도 할 텐데, 그런 ‘권력’을 실제로 느낍니까?
이지백 “국회의원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일면 맞는 지적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권력이란 게 보좌관이란 자리에서 나오는 건 아니고 국회의원한테서 나오는 건데, 직접 의원님을 만나기 어려우니까 저희를 찾는 측면이 있죠. 또 법안을 만드는데 어떤 내용을 넣을 거냐, 어떤 예산을 삭감할 거냐 이런 판단을 하는 데서 보좌관들 의견이 들어가니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임된 권한인 거죠. 자기 스스로 자가발전해서 권한을 행사하려 한 보좌관들은 예외 없이 다 문제를 일으켜 날아갔거든요. 그런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게 보좌관에겐 중요합니다.”
제방훈 “지금은 많이 투명해지고 깨끗해졌다는 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국회선진화법과 부정청탁금지법이 만들어진 다음엔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엔 기업들도 국회 로비를 직접 하지 않고 로펌에 맡겨서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엔 피감기관이나 기업에 연락해서 술값 내라고 하는 보좌관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 보좌관들은 별정직 공무원이지 않습니까? 휴일도 없이 일한다는데, 그러면 주 52시간 근무라든가 주 5일제 근무제는 신경을 안 씁니까?
이지백 “저희끼리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국회는 법을 만드는 데지 법을 지키는 데는 아니라는 겁니다. 주말에도 갑자기 교섭단체 간 교섭이 잡히면 그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런 걸 다 지키면 일을 못 합니다.” (웃음)
― 요즘 보좌관과 비서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턴의 스펙도 매우 화려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왜 인기가 높은 건가요?
제방훈 “보좌관이라는 직업이 주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국회 보좌진은 다른 곳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고 전문성도 가질 수 있습니다. 국회가 전문화하면서 법안과 정책 등에서 전문 지식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변호사나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 자격증을 가진 분들이 많이 들어오고, 국회 인턴에는 외국 대학에서 석·박사를 딴 인재들도 많이 지원합니다. 인턴을 거쳐야 국회의원실의 비서관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걸 젊은 친구들이 아니까요. 또 최근에 정치·사회적으로 국회 영향력이 높아진 것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지백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왼쪽)과 제방훈 국민의힘 보좌관.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보좌관은 정책 전문가의 성격과 정치 지망생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을 텐데, 둘 중에선 어느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지백 “약간 직급마다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5~6급 정도의 비서관들에겐 전문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4급 보좌관들도 정책 전문성이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넓게 보는 관점이 더 필요한 거 같아요. 정치 지망생이란 얘기는 결국 보좌관직을 바탕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것이겠죠. 저도 예전엔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국회의원도 정치를 하고, 보좌관도 정치를 하고, 기초·광역의원들도 정치를 하는 거라고 봅니다, 다만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다를 뿐이죠. 그러니까 정치 지망생이란 성격이 보좌관을 규정하는 핵심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방훈 “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 전체적으로 보좌관과 비서관들에겐 정책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보좌관은 뭘 연습하고 배우기 위해 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 전문가들이 모여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그에 따른 평가를 받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 물론 정치적인 꿈을 갖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건 중요할 뿐 아니라 큰 동기 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
― 두 분 모두 여야의 보좌진협의회 회장이신데, 협의회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회장은 모든 보좌진의 직접 투표로 뽑는 건가요?
제방훈 “회장 임기는 1년인데, 4급 보좌관부터 인턴까지 보좌진의 전체 투표로 뽑습니다. 저희도 직장인으로서 처우 개선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고요, 또 동시에 정치단체다 보니 사회 현안이나 정치 현안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의원실에서 보좌관 일을 하면서 협의회장도 맡아야 하니까 오히려 일은 늘고 더 바빠졌습니다.”
― 두 분은 왜 보좌관이란 직업을 택했습니까?
이지백 “정말 단순한 이유였어요. 2006년에 제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는데, 그때 노무현 정부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정권은 넘어갈 게 뻔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통령이 될 텐데 도저히 그걸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마침 김근태 의원실에서 인턴을 뽑는다길래 그냥 지원을 했습니다. 나이가 서른살이었는데, 그때까지 사실 국회라는 공간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공부를 더 할까 생각하다가 정권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 잠시 일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4급 보좌관까지 올라왔네요.”
제방훈 “저도 18대 국회 첫해인 2008년에 공채를 통해 백성운 당시 국회의원의 인턴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엔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학보사 편집장도 했어요. 국회의원 인턴을 한 것도 나중에 정치부 기자를 하는 데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비록 인턴이지만 국회에서의 생활이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대한민국을 기획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요. 청와대 행정관 생활 1년여를 빼고는 줄곧 국회에서 일했는데,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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