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통일부는 앞으로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라”고 지시했다. 정부 출범 뒤 “인도적 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고 강조해온 정책 기조와 충돌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북한 인권보고서’ 공개 발간 계획 등을 보고받았다. 보고서는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이듬해부터 해마다 비공개로 발간됐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널리 알린다는 명목으로 올해부터 ‘공개 발간’으로 방침을 바꿨다.
보고를 들은 윤 대통령은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퍼주기 중단’을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의 인권과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 등을 다양한 루트로 조사해서 국내외에 알리는 것이 안보와 통일의 핵심적 로드맵”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난 24일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만난 유가족들이 “일본에는 사과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 자식을 죽인 북한에는 사과하라는 얘기를 왜 안 하느냐”고 하소연했다고 전하며 “이런 시각이 보편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이런 강경 메시지를 공개 발신한 것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무기급 핵물질 생산 확대” 지시 등 북한의 최근 무력시위를 겨냥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워낙 강한 탓에 향후 대북 인도적 지원까지도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복수의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한겨레>에 “동북아의 평화에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필수불가결한 선결 요건이다.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발언은 대통령으로서는 절대 피해야 할 감정적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김창수 전 청와대 통일비서관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에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담대한 구상이 담대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통일부는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민생을 도외시한 채 핵·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는 북한 정권에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며 “인도적 지원은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수습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인도주의적 지원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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