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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전두환 ‘4·13 호헌’ 설득하자 미국은 “왜 이 시점에”

등록 2023-04-06 16:25수정 2023-04-06 19:14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6월 민주항쟁’의 징검다리 구실을 했던 이한열 열사 장례식이 뜨거웠던 1987년 7월 열렸다. 서울시청 앞에 시민 100만여명이 모여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6월 민주항쟁’의 징검다리 구실을 했던 이한열 열사 장례식이 뜨거웠던 1987년 7월 열렸다. 서울시청 앞에 시민 100만여명이 모여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전두환 정권이 4·13 호헌부터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직선제 개헌을 막고 미국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정황이 6일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날 외교부가 공개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보면, 전두환 정권은 1987년 4월13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 논의를 미루는 특별담화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미국을 설득하는 데 집중했다. 담화 하루 전날은 일요일이었지만 최광수 외무장관은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미대사를 만나 “야당의 분열과 대립, 비타협적인 태도로 국회에서의 합의개헌은 불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개헌논의는 1988년 2월 평화적 정부이양과 88년 서울올림픽을 마칠 때까지 유보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경원 주미대사에겐 “특별성명 관련 금번 조치의 불가피성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논평하도록 거듭 촉구 바란다”고 주문했다. 전 재외공관장에게도 특별담화 배경에 대한 홍보 사항도 하달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으로 점화된 민주화 열기를 누르기 위한 외교전에 힘을 쏟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릴리 전 대사는 최 장관과의 면담에서 “왜 이 시점에 그런 결단을 발표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민주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담화 발표 뒤 개스틴 시거 국무부 차관보와 만난 주미대사는 “솔라즈 의원은 미 국무성이 이번 조치에 명백한 비판적 입장을 취했어야만 했다고 주장하며 국무성에 경고했다. 향후 미국 의회의 반응이 우려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에 당시 정부는 이기백 전 국방부 장관의 1987년 5월 방미를 계기로 전두환씨 명의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친서도 보냈다. 친서에서 전씨는 “야당 지도층의 무분별한 파멸행위로 개헌 협상이 불가능하다”며 “한국 헌법과 정치의 성공은 결국 레이건 행정부의 공적으로 반영되길 희망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의 답장은 6·10 항쟁 뒤인 같은달 19일에야 도착했고, 당시는 이미 국가 전역에서 학생·시민 운동이 일어나 전씨는 군부 동원과 계엄령까지 검토하는 상황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친서에서 “민주적 제도에 기반한 정치적 안정성이 국가 안보 보장에 매우 중요하다”며 정치범 석방과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등 전두환 정권의 미국을 향한 요청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주지 않았다.

한편 이날 비밀해제된 외교문서엔 1987년 9월 방한한 시걸 미 차관보와 김정열 당시 국무총리가 면담한 내용도 공개됐다. 앞선 6.29 선언으로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안을 받아들이면서 민주화로 진전한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면담에서 김 총리와 시걸 차관보는 한국의 노조 문제를 언급하며 그 ‘해결 방안’을 찾기도 했다. 김 총리가 “노조가 가장 큰 문제다. 그들이 어딘가로부터 명령을 받아 좌경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명령이 어디서 오는지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가 미국에 있으면 알려주길 바란다”고 묻자 시걸 차관보는 “최고의 전문가는 레이건 대통령이다. 그가 노조 회장으로 취임하여 공산주의자를 소탕한 것은 매우 훌륭한 일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레이건은) 노조 내부에 소수의 심복을 심어놓고 막후에서 조종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새벽 2시에 회합을 갖는 등 은밀한 방법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전략을 수립했다고 한다”며 “민주주의를 하는 많은 나라에서 이런 방법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노조에서 반대파를 민주적 방법으로 패배시키면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고 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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