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청와대(대통령실)를 도·감청해온 것은 ‘오래된 비밀’이다.
1970년대 주한미군 철수, 한국 인권문제 등을 두고 한국과 미국이 다투는 와중에 1976년 10월 미국 <워싱턴 포스트> 보도로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터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박동선 등 로비스트를 통해 미국 의원과 공직자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정보의 출처도 놀라웠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청와대를 도청해 이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얼마 뒤 <뉴욕 타임스>는 ‘고성능 지향성 전파 탐지’를 이용해 유리창의 떨림 등으로 도청을 할 수 있다고 청와대 도청 방법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국 도청을 피하려고 중요한 이야기는 집무실에서 하지 않고 청와대 뜰을 거닐면서 했다.
청와대 도청 사실은 윌리엄 포터 전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포터 전 대사는 1978년 4월 한 미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청와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부임하기 전에 그것(도청)이 중단됐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밝혔다.
2013년에도 미국이 주미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38개국의 재미 공관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이 동맹국까지 감시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였다. 2016년에는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2008년 미 국가안보국이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화를 도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도청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강하게 항의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1970년대부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란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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