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안보나 피해자 인권과 직결된 외교 사안을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독선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협상 패를 미리 내보여 협상력을 소진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보도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내비쳤다. “살상무기 지원 불가”라는 정부의 방침과는 다른 늬앙스였다.
러시아가 바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일정 부분 전쟁 개입”이라고 반발할 만큼 민감한 사안을 오는 24일 방미를 앞두고 한 외신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설이 불거질 때마다 부인하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 문제는 26일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이 ‘패’를 미리 꺼내 보였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이런 태도는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 전후 과정과도 닮았다.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달 15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관련 제3자 변제안에 관해 “나중에 구상권(채무를 대신 변제한 사람이 지니는 상환청구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만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국내의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한 채 한국 정부의 카드를 꺼내 보인 셈이었다. 당시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16일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도쿄에서 만난 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쪽의) 사과와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필요하며, 그래야 발표할 수 있다고 (일본 쪽에) 말했다”고 한 바 있다.
한-일 정상회담 뒤 비판이 거세자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결단’을 강조한 뒤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호응은 아직까지 없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일방주의적인 태도가 외교·안보 리스크를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종수 전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방미를 앞두고 미국을 의식해 인터뷰 한 것 같은데, 국익에 플러스 요인이 있어야 하는데 잃을 가능성이 더 많은 상황”이라며 “외신에 왜 그런식으로 인터뷰를 했는지 의아하다”라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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