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글로벌 아시아’ 편집실에서 한겨레와 한·미·일 정상회의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원로 국제정치학자인 문정인(72) 연세대 명예교수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과거지향적”이라 평가했다. 냉전 시대로 돌아가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22일 저녁 서울 종로구 ‘글로벌 아시아’ 편집실에서 한겨레와 1시간30분 동안 한 인터뷰에서 “한·미·일의 손익계산은 눈에 띄게 비대칭적”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미국은 ‘70년 꿈’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원하는 모든 걸 얻었다. 일본도 잃은 건 없고 얻은 게 많다”며 “반면 한국은 준 건 많은데 얻은 게 별로 없는데다 상당한 안보 위험을 떠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 지지층이 좋아할 외교 성과를 하루빨리 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힌 듯하다”고 짚었다.
―3국 정상은 “한·미·일 관계의 새장이 시작됐다”고 선언했고, 대통령실은 캠프 데이비드 전과 후는 다른 세상이라고 자평했습니다. 이번 회의의 역사적 위상과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한·미·일 3국 정상회의 정례화를 포함해 포괄적 안보협력의 제도화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는 크다. 그러나 지정학적·지경학적 판도를 바꿀 이벤트는 아니다. 우선 3국 동맹이 아니고, 3국 협의체다. 회의 공식 문건의 하나인 ‘협의에 대한 공약’에 역내 위협에 대한 공동행동과 관련해 국내법·국제법적 의무가 없다고 밝히지 않았나.
무엇보다 과거 회귀적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한 국방전문가인 벤 잭슨은 이번 정상회의를 “반동적 3자 협력체”(reactionary trilateralism)라고 부르더라. 미국 국무장관이던 존 포스터 덜레스가 1954~57년에 걸쳐 일본·한국·중화민국(현 대만)을 미국과 묶어 유럽의 ‘나토’ 같은 반공 집단안보체제인 ‘동북아조약기구’(NEATO·니토) 구성을 제안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일본과 협력할 수 없다는 이승만 정부의 반대와 일본의 평화헌법 때문이었다. 이번 3자 안보협력체가 ‘니토’를 연상시키기에 벤 잭슨의 ‘반동적’이라는 지적은 과하지 않아 보인다. 어찌 보면 한-일을 하나로 묶으려는 미국 외교의 70년 숙원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지만, 배타적 클럽의 성격을 띤 이런 소다자주의적 접근이 국제정치적으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한, 미, 일의 손익계산은 어떤가요?
“한·미·일 모두에 ‘윈-윈’이라는 공식 평가를 한꺼풀 벗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가장 얻은 게 많고, 일본도 잃은 건 없고 많은 걸 얻었다. 반면 한국은 준 건 많은데 얻은 게 별로 없는 데다 상당한 안보 위험을 떠안게 됐다. 한·미·일의 손익계산은 눈에 띌 정도로 비대칭적이다.”
―미국부터 따져볼까요?
“미국은 원하는 걸 다 얻었다. 미국의 대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약한 연계 고리’가 한-일 관계인데, 이번에 한·미·일 3각 협력 제도화로 해소됐다. 둘째, 인·태전략에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포섭은 늘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중국이 우세를 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세안을 포섭하는 데 한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미국을 돕기로 했다. 셋째, ‘미국 외교의 70년 꿈’인 한·미·일 3각 협력 성사는 내년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한테 대단한 정치적 호재다. 바이든은 역대 대통령이 해내지 못한 ‘한-일을 화해시킨 유능하고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평판을 얻은 셈이다. 넷째, 역대 한국 정부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보수,진보 불문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요구를 거부해왔다. 실익이 별로 없고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번에 윤 대통령은 미·일이 희망하는 미사일 방어 협력에 적극적 참여를 결정했다.”
―일본의 손익은?
“일본은 준 건 없고 얻은 건 많아 보인다. 우선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합의는 일본한테 큰 성과다. 북한이나 중국이 미사일을 쏘면 가장 먼저 탐지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과 정보공유를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둘째, 일본은 한국이라는 완충지대를 확보했다. 한국 없는 신냉전에선 일본이 최전선인데 한국이 참여하면 한국이 최전선이다. 셋째, 남중국해·대만·해로안전 문제에서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군사적 지원 획득 가능성을 높였다. 넷째,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상대로 한-일 관계의 민감한 현안인 독도, 동해 표기, 강제동원,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등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는 기시다한테 국내 정치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준 것 없이 얻기만 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손익은?
“한국은 보수와 진보의 평가가 완전히 갈리고 있다. 보수 쪽에선 ‘대성공’, ‘윤석열 외교의 정점’이라는 극찬이 나오는데, 진보와 중도 쪽에선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여론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큰 손실이다. 사실 이번 회의는 한국의 안보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는 결국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줬다. 역내 위협에 대응하는 공동행동에 국내법·국제법적 의무가 없다고 명기한 ‘협의에 대한 공약’은 3각 안보협력의 기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연루의 위험’을 피하고자 이 조항을 주도적으로 넣었다고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데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윤석열 정부로선 대북정책의 핵심 목표로 내세운 △북한 비핵화 △납북자·억류자·미송환국군포로 문제 해결 △담대한 구상 목표 지지 △자유·평화 통일한반도 지지 등을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명시한 걸 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이 정상회의 성과를 미국민한테 알릴 목적으로 요약해 공개한 ‘팩트시트’(fact sheet)에는 북한 관련 내용이 모두 빠져 있다. 곱씹어볼 일이다.”
―북·중·러시아의 반응은 어떠리라고 보시는가요?
“북·중·러 3국 모두 각자의 이유로 한·미·일이 ‘적대 의지’를 전보다 더 강하게 드러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우선 중국은 남중국해·대만 문제를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적시하고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를 밝힌 게 자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렸다고 보고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한·미·일 3국이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 연례 해상연합훈련 등을 하기로 한 건 중국을 겨냥한 미국 중심의 역내 미사일방어(TMD)체계 구체화 시도로 받아들일 것이다. 한·미·일의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 합의도 중국 겨냥으로 볼 것이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방침을 ‘북한 비핵화’로 바꾸고 북한 인권문제를 집중 부각한 데서 ‘적대의 심화’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미·일의 결속 강화는 역설적으로 북한한테 기회일 수 있다. 북·중·러 연대 필요성을 자극해 북한이 오랜 고립에서 벗어날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어서다. 북-중, 북-러 협력 강화 추세를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미·일 정상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단합된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조했으니 당연히 러시아한테는 ‘적대적 이벤트’일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중·러의 연대 움직임이 가시화되리라 보시나요?
“연대 가능성이 크다. 한·미·일의 군사적 밀착이 가속화하면 북·중·러가 전례없는 3국 연합군사훈련으로 맞대응하는 위험한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
―윤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어떻게 안보가 위험해진다는 것이냐”며, 전문가들의 우려를 공박했는데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와 인식이다. 안보엔 ‘설마’가 없다.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해야 한다. 전쟁이라는 최악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만을 주문처럼 되뇌는데, 미국이 힘이 없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물러났겠나? 한-미 동맹의 강력한 억제력 때문에 한반도에서 계획에 의한 전쟁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우발적 충돌과 확전이다. 대통령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모든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그래서 이길 수 있더라도 전쟁은 기필코 피하고 예방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평화와 안보에는 신중과 겸손이 최대의 미덕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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