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절차·명분 정당했나
야 ‘국정원본’ 공개요구 안했는데
“여야가 전문 공개요구” 주장도
야 ‘국정원본’ 공개요구 안했는데
“여야가 전문 공개요구” 주장도
24일 오후 3시15분께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갑자기 나타났다. 이들은 사전 연락도 없이 야당 정보위원들의 방을 돌며 스프링으로 편철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한 부씩 배포하려고 시도했다. 서상기 정보위원장(새누리당)의 ‘열람 요청’을 받았다며 대화록 원문과 발췌본을 들고 국회 정보위원장실에 나타났던 지난 20일 오후 4시와 비슷한 상황이 나흘 만에 재연된 것이다.
국정원이 들고온 103쪽에 이르는 대화록 표지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10.2~4, 평양)’이라는 제목과 함께 ‘2008.1(생산)’ ‘국가정보원(2013.6.24)’라는 표시가 병기돼 있었다. 야당 정보위원 6명은 일방적인 배포에 수령을 거부했고, 여당 정보위원 6명은 이를 ‘접수’했다.
여야가 대화록 원문 공개 여부와 공개 방법, 시기 등을 두고 정치적 공방과 합의를 병행해 가고 있는 사이, 국정원이 갑자기 대화록 원문을 공개해버리는 초유의 틈입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치는 사라지고 정보기관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기이한 국면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절차에 따랐을 뿐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은 직원들이 대화록 원문의 사본을 들고 의원회관을 돌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온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비밀 생산·보관 규정에 따라 2급 비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그동안 대화록을 2급 비밀로 분류해 보관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국정원 보안업무규정은 2급 비밀을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비밀’로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령에서 정한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비밀 해제 절차를 밟았다. 비밀 생산 부서의 심의절차를 거쳐 국정원장이 재가를 하면 비밀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쪽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남북정상회담 녹취파일을 풀어서 대화록을 작성(국정원에서는 이를 두고 ‘비밀 생산 부서는 국정원’이라고 주장)했던 부서의 관계자들이 모여 ‘비밀 재분류 심의절차’를 거쳤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비밀 생산 부서의 관계자들이 (해제 필요성 여부를) 제일 잘 안다. 비밀 생산 부서는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비밀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만을 따진다”고 했다. 비밀을 해제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고, 이를 남재준 국정원장이 받아들였다는 것이 국정원 쪽 설명이다. 국정원은 비밀 해제 직후 국회 정보위원의 수(12명)대로 ‘복사본’을 만들었다.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임의로 복사해도 이제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대화록 원문을 공개한 이유가 “더 이상 비밀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6년 전 남북정상회담 내용이 현시점에서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회담 내용의 진위를 두고 국론 분열이 심화돼 오히려 국가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며 △상당 부분이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공개돼 비밀문서로 유지해야 할 가치를 상실했다는 것이 국정원의 판단이다. 이미 내용이 다 공개돼 있어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비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밀 공개에 국정원이 ‘일조’한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가 없었다.
국정원은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면서도 “여야 공히 전문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첫 번째 공개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야당은 국정원이 보관한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원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 나온 직후, 국정원이 대화록 원문 ‘무단 배포’에 나선 것도 청와대와 정치적 교감이 있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다른 고려는 전혀 없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시사게이트 첫회] ‘국정원게이트’, 그들은 확신범이었다
<한겨레 인기기사>
■ 국정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도 개입…검찰에 “명품시계 조사를”
■ “서른 전에 결혼해야지” 생각 뒤엔 ‘섹스 자본’의 그림자
■ 미국, 한국 등 38개국 대사관 전방위 도청 사실 드러나
■ 단순 개입이 아니라 총체적 공작입디다
■ [화보] "대통령 물러나라" 이집트 반정부 시위 격화
![](http://img.hani.co.kr/section-image/12/news/hani/images/com/ico/ico_movie.gif)
■ 국정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도 개입…검찰에 “명품시계 조사를”
■ “서른 전에 결혼해야지” 생각 뒤엔 ‘섹스 자본’의 그림자
■ 미국, 한국 등 38개국 대사관 전방위 도청 사실 드러나
■ 단순 개입이 아니라 총체적 공작입디다
■ [화보] "대통령 물러나라" 이집트 반정부 시위 격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