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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2014년 박근혜는 1956년 아데나워보다 후퇴

등록 2014-05-02 19:32수정 2014-05-03 10:24

1960년 3월 미국 뉴욕에서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만나 환담하는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9년부터 1963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AP 연합뉴스
1960년 3월 미국 뉴욕에서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만나 환담하는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9년부터 1963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AP 연합뉴스
[토요판] 독일공산당과 통합진보당
한국의 통합진보당과 1951년의 독일(서독) 공산당은 여러 측면에서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진보당과 공산당은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로 나라가 갈린 분단 상황 속에서 맹목적인 반공주의를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는 보수세력의 집권에 맞닥뜨렸다. 상대적으로 단단한 대중적 기반과 달리 의석수가 많지 않았던 두 정당은 나라 안팎의 정세에 따라 달라지기 쉬운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공산당은 동독이나 소련 등 당시 서독이 적대시했던 국가와 가까웠고, 진보당은 말 그대로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의 ‘종북 정당’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종북몰이’, 또는 매카시즘을 활용해 정국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틀어쥐고자 했던 보수정권한테는 ‘약한 고리’였다.

1951년과 2013년 공산당과 진보당은 헌법(독일 기본법)이 보호하고자 했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을 갖고 활동했다는 이유로 각각 독일과 한국 정부에 의해 정당해산 심판의 대상이 됐다.

두 정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 과정은 달랐다. 독일 공산당 해산 심판 사건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편에 속했다. 정당의 위헌적 ‘목적’과 관련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독일 공산당은 강령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사회발전 노선’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곧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거쳐 사회주의-공산주의적 사회질서 수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당시 공산당은 교육용 당원 교재 등에 ‘아데나워 정권의 혁명적 전복’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소련·동독과 가까웠던 공산당
‘종북 낙인’ 찍혀있던 진보당
둘 다 보수정권한텐 약한 고리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이유로
정당해산 심판의 대상이 되다

어떠한 구체적 계획도 없는
정치적 프로파간다 불과했지만
공산당은 ‘혁명·전복’ 명시
진보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뿐
결국 퍼즐맞추기 당하는 처지

다만 공산당은 실제로 노동자 등 무산계급이 주도하는 폭력혁명을 실행에 옮길, 아데나워 정권을 갈아엎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 정당이 즐겨 썼던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이나 혁명, 전복 등의 용어는 ‘프로파간다’, 곧 정치적 선전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독일 사회의 일반적 평가다. 독일 공산당 해산을 연구해온 호르스트 마이어 변호사는 “공산주의자가 동원한 용어는 대단히 과격한 것이었지만 이는 어떠한 구체적 계획도 동반하지 않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연방헌재는 공산당의 공식 강령과 정치적 구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해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공산당 해산 판결문에는 “가까운 미래에 헌법을 침해하려는 의도를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이 없더라도, 그런 의도를 나타내는 것을 근거로 특정 정당은 위헌이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독일 공산당에 대한 해산 결정은 독일을 넘어 유럽 사회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사회발전 노선 등을 근거로 ‘독일 공산당의 목적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던 아데나워 정권의 정당해산 청구 사유는, 박근혜 정권이 제시한 진보당 해산 청구 사유에 견줘 보면 훨씬 직접적이었다.

지난해 11월5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안을 제출하며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보당이 강령 등을 통해 밝힌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주권론’ 등은 법무부에 의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일성의 사상을 도입한 것”이라는 식으로 새롭게 해석됐다. 독일 공산당이 폭력혁명을 전제로 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사회발전 노선’을 공식적으로 내세웠다면, 진보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또 공산당이 ‘아데나워 정권의 혁명적 전복’의 방식으로 정권을 창출하고자 했다면, 진보당은 민중주권론과 의회주의를 앞세운 집권을 꿈꿨다.

대한민국 정부가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주권론의 위헌성을 입증하려는 보완 수단으로 헌재에 제시한 개념은 비유하자면 ‘퍼즐 맞추기’ 이론이다. 진보당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것과 달리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숨겨진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퍼즐 맞추기를 통해 위헌성을 밝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 2월18일 헌재에서 열린 2차 공개변론 당시 정부 쪽이 참고인으로 내세운 장영수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정당의 목적을 확인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정당의 강령, 당헌, 당규 등이지만 정당해산 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강령이나 당헌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진보당의 위헌성을 판단하려면 퍼즐 맞추기를 통해 숨겨진 목적까지 확인하고 목적과 활동을 연계해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결정도 성숙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높이 평가받지 못하지만) 독일 공산당의 공식 강령과 정치적 구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해산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다는 195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달리, 2014년 한국 헌법재판소는 심판 대상으로 올라온 정당의 숨겨진 목적까지 일일이 퍼즐 맞추기를 통해 판단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청구인은 대한민국 정부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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