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겨울 대통령 선거 때니 오래 전 얘기다. 내가 맡은 일은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쫓아다니며 유세현장을 취재하는 거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유세장에 도착하면 후보의 연설을 받아 적고 청중 분위기를 스케치한 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기사를 작성해 회사로 보냈다. 요즘이야 노트북으로 기사를 쓰고 무선으로 보내면 되지만, 그때만 해도 일일이 원고지에 쓰고 팩스로 보내야 했다. 팩스는 또 어찌나 말썽을 피우던지. 버스 멀미가 심한 나로서는 여간 고단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 수도권이면 낫다. 가깝고 길도 좋은 데다 청중들도 많이 모이니 취재기자도 따라다니는 맛이 났다. 그런데 김대중 후보는 주로 머나먼 경상도 지역을 찾아다니는 게 아닌가. 도로 사정도 사나운 데다 청중들의 반응도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지금은 지명이 없어진 경남의 삼천포(현재 사천)를 들렀을 때다. 김대중 후보가 예정시간보다 많이 늦게 도착했다. 땅거미가 지고 칼바람이 외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청중들이 하나둘 떠나더니 고작 스무 명 남짓만 남았다. 그래도 김대중 후보는 자기 연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안주머니에서 연설문을 꺼내더니, 검은 볼펜 빨간 볼펜을 번갈아 사용하며 연설문을 고치고 또 고쳤다. 그리고는 쉰 목소리로 외쳤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삼천포 주민 여러분~” 어찌나 딱해보이던지 내 코끝이 다 찡했다.
‘화합·통합’ DJ의 뜻 존중했던 호남 민심
DJ의 정치 역정은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의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역대 정치권력은 그를 ‘호남의 김대중’으로 가둬두려고 했다. 특히 1990년 3당 합당은 그런 음모가 노골화된 것이다. DJ는 포위망을 뚫어보고자 끊임없이 외부와 교신을 시도했다. 다른 지역 정치인을 우대했고, 민주화 세력은 계속해서 수혈했다. 영남의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이을 수 있었던 것도 DJ 덕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호남의 민심도 DJ의 뜻을 존중하고 따랐다.
그런데 요즘 호남 민심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며칠 전 <국민TV>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장세환 전 의원과 함께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장 전 의원은 2008~2012년 전주에서 민주당 의원을 지낸 적이 있고, 이번에 다시 전주에서 도전장을 내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그가 전해준 호남의 민심은 이거였다. “유권자들을 만나다보면 ‘호남 자민련을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이어지는 영남의 개혁세력과 인연을 끊고 호남이 독자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호남이 홀로서야 호남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거다.
이런 정서에 이론적인 옷을 입힌 게 김욱 서남대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이다. 김욱 교수는 영남 패권주의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호남이 겪어야 하는 비참한 차별을 묘사하고 있다. 나도 격렬하게 공감한다. 그런데 영남 패권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놓고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을 보는 관점은 하늘땅 차이다. 나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 모두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둘 사이에 한때 긴장이 흐르기도 했고 때론 갈등이 쌓이기도 했다. 그래도 둘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지였다.
그러나 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을 그저 “영남 패권주의 이데올로기의 쌍생아”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영남 패권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는데, 알고 보니 노무현 대통령도 영남 패권주의자였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니 호남은 “친노의 표 찍는 인질이 돼 기약 없이 끌려 다니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난 단언컨대 김대중(지지자)와 노무현(지지자)의 이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본다”고 말한다. 이런 차이는 “오랜 역사를 지닌 근원적 이념 차이다”라고까지 단언한다. 김 교수의 눈에는 김대중-노무현이 같은 편이 아니라, 노무현-이명박·박근혜가 같은 편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김 교수에게는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길이 ‘내각제’밖에 없다. 그리고 “호남이 반드시 복수정당제를 쟁취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야권 분열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역설’로 대응한다. “현재와 같은 야권분열 상태가 오히려 야당의 집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고 낙관론을 펴는 것이다. “야권 제 세력이 편을 갈라 싸울수록, 그래서 각자의 확고한 지지자들이 뭉칠수록, 이 경향은 결정적으로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장 4월 총선에서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이 200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견해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김욱 교수만의 주장이 아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강준만 교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종석 작가도 김욱 교수에 동조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나만 이상한 건가’하는 의심이 든다.
나는 이 책이 의도하든 않든 ‘야권 분열 세력’에게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서평 기사의 제목이 “호남이여, 이제 친노의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라”였다. 이렇게 쪼개지는 걸 보고 좋아할 사람이 누구일까? 전통적인 야권 지지자들은 결단코 아닐 것이다. 야당의 분열을 바라는 새누리당이 박수 칠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간극을 벌려 이득을 취하려는 분열의주의자들이 숨어서 웃을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주승용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호남 민심은 패권정치의 볼모가 되길 거부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주 의원은 “김 교수의 책을 최근 인상 깊게 읽었다”며 “호남은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영남 출신 대선 후보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주의 타파와 전국 정당을 명분으로 번번이 희생과 양보를 강요받았고, 정치적으로도 배제 당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주 낯선 상식>의 주장과 거의 같다. 주 의원은 13일 탈당을 예고하고 있는데 김 교수의 논리를 탈당의 명분으로 삼을 모양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런 행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대중 의원을 호남에 고립시키려고 했던 건 박정희 대통령이었지만, 그걸 완성시킨 것은 딸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 같다. 그것도 호남 정치인들의 손에 의해…”
여기서 ‘친노 패권주의’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단지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건 그 후유증이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이 애초에는 야당의 비주류 정치인들이 주류와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 사용한 ‘여의도 용어’였는데 어느새 ‘시장 민심’으로까지 확산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민심은 지금 쓰나미가 돼 다시 정치권을 덮치고 있다. 거기에 놀란 호남의 정치인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수도권 의원들도 우왕좌왕이다. 정치인들끼리만 분열되면 모르겠는데 지지층이 찢어지고 있다. 지지층들끼리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조선일보> 식으로 표현하면 호남과 운동권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분열된 지지층… 호남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 결과로 호남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다른 지역과의 협력도 민주 개혁 세력과의 연대도 포기해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가? 호남만 독립하면 차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가? 김종필 총재가 이끈 공화당과 자민련이 대답이 될 것이다. 그가 이끌던 당은 1990년 3당 합당 때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과,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대표의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 그 결과 그를 따르던 정치 엘리트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김종필 총재는 “충청도가 이놈 저놈 아무나 입을 수 있는 핫바지 취급을 당해왔다”는 선동논리를 펴 국회에서 50석을 얻었다. 또 김대중 정부에서 추종자들은 장차관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평범한 충청민의 이익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정치인들만 혜택을 누렸지 충청민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설사 좋아진 게 있더라도 그건 자민련 때문이 아니라 충청이 수도권과 가깝고 중국과의 교역량이 급증하면서 생긴 효과다. 자민련 덕이었다면 왜 자민련이 소리없이 소멸됐겠는가.
그래도 충청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호남과 영남이라는 경쟁자가 있었기에 그 사이에서 몸값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호남이 홀로서는 순간 호남은 선택할 파트너가 없어진다. 호남이 독자노선을 걸으면 더불어민주당이 됐든 정의당이 됐든 호남의 왼쪽에 있는 세력은 쪼그라들고 만다. 호남이 더불어 정권을 창출한 만한 크기가 안 된다. 그렇다고 충청이 독자적으로 서있는 것도 아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충청의 맹주가 돼 옛날식으로 호남-충청 연합을 성사시킬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안희정 지사는 그런 식의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남는 건 영남 패권세력 뿐이다. 호남이 영구적으로 영남 패권세력의 하위 파트너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모든 걸 떠나 우리나라를 이 정도로까지 민주화시키고 진보의 길로 이끈 두 바퀴는 호남과 민주화세력이었다. 두 바퀴가 찢어지면 대한민국이라는 마차는 어디로 가게 되는가? 과거로 퇴행하는 폭주기관차 새누리당을 누가 막을 수 있는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에게 특히 지역적으로 차별받는 호남의 민중에게 돌아가는 건 아닌가?
2005년 김대중 대통령은 동교동을 찾아온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시대가 따로 있고, 노무현 시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로 가야 합니다. 줄여서 ‘김-노시대’입니다. 그렇게 해야 성공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내 몸의 반쪽을 잃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치장을 하더라도, 김대중 세력과 노무현 세력을 나누려는 시도는 ‘분열’일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몸 반쪽을 찢어내는 일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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