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서청원(왼쪽부터)·이인제·김태호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가 3월17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 부속실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해가 질 무렵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가 난다. 장관이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데 석양을 물들이던 태양이 자취를 감춘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점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그림이 나쁜 건 아닌데 아쉽다. ‘저기 붉은 태양이 따~악 있었으면 정말 좋았는데’ 태양이 기다려 줄 리 없고 말 못하는 새는 자기들 맘대로 하늘을 난다. 둘 다 내 말을 듣는 존재도 아닌데 한 앵글에 들어오길 바라는 것부터가 무리일지 모른다. 이 정도도 괜찮다 싶으면 장비 걷고 돌아오고, 정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나오길 바란다면 출장을 연장해야 한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 앵글에 원하는 요소를 다 집어넣기란 힘들다. 눈동자보다 조금 큰 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찾아 한 앵글에 넣어야 하니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예전, 국회를 출입할 때였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갈라설 때쯤이었을 거다. 타사 사진기자와 여의도의 한 음식점 식사 자리에 모인 민주당 구파(당시 우리끼리는 그렇게 불렀다)를 찍으러 간 적이 있었다. 비공개회의였는데 어찌 알음알음해서 찾아가 식당 문을 열고 보이는 사람에 대고 셔터를 눌렀다. 최대한 다 들어오게 해서. ‘아무개 있고, 아무개 있고…’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러다가 어깨를 부딪치면서 같이 사진을 찍던 타사 동료에게 셔터를 누르면서 물었다. “야, 아무개는 보이냐?” 타사 사진기자는 눈에서 카메라를 떼지 않고 말했다. “어, 저기 오른쪽 구석에.”
쉽지 않지만 한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뭔가 찍어야 할 사람들, 전부 다는 아니라도 최소한 엑기스(?) 있는 분들이 한 앵글에 다 들어왔다면 사진기자는 분명히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심봤다!”(오케바리, 오예~, 앗싸~ 등등 표현은 달라도 다 속뜻은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니겠는가?)
사진은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이 한창일 때인 지난 3월17일의 사진이다.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 공천에 불만을 품고 최고위원회의 소집 자체를 하지 않자 나머지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국회 원내대표실의 부속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소문을 듣고 밀려온 사진기자들에게 잡힌 것이다. 왼쪽의 서청원 최고위원은 카메라가 들이닥치자 서둘러 일어나고 있고 이인제 최고의원은 앉아서 들이닥친 기자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 김태호 의원은 이 와중에도 어디론가 전화 중이고 원유철 원내대표는 머쓱한 표정이다.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지만 이 사진 한 장이 당시의 새누리당 상황을 기가 막히게 설명해준다. 능력도, 유권자에 대한 인기도 필요 없고, ‘친박’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오직 ‘진박’이어야만 한다는 기준으로 공천의 칼날을 마구 휘둘러댔다. 집권당의 공천에 ‘배신과 보복’만이 난무했다. 원래 친박이었으나 오락가락하는 처신 탓에 미운털이 박힌 김무성 대표가 소집하지 않은 최고위원회의를 ‘그럼, 너 빼고 우리끼리’ 이러면서 모인 간담회다. 한 장의 사진에 이렇게 고위급 ‘친박’이 걸리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어? 그러고 보니 최고위원 중에 그분이 안 보인다? 원래 정체성이 무엇인지 감 잡을 수 없는 장군의 손녀, 삼둥이 할머니. 원래는 친박이었으나 탈박으로 돌아섰다는 소문도 들리던데 그래서 없었나 보다.
그분에 대한 ‘충성’ 하나로 모든 것을 결정했던 여당을 심판할 날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다. 정권 잡고 국회 다수당까지 하신 분들이 선거 때 느닷없이 야당을 심판해 달란다. 어느 나라 선거에서 야당을 심판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쪽은 갈라져 있네? 우리는 과연 심판할 수 있을까?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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