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대구 수성갑)가 14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김 당선자 뒤로 총선에서 맞붙었던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 사진이 걸려 있다.
대구/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사진기사는 대부분 한 장의 승부다. 여러 장을 스토리 형식으로 엮어서 전달하기도 하지만 신문이라는 매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신문은 아무리 뛰어난 사진이라도 같은 주제로는 한 장밖에 쓸 수 없다. 여러 장으로 표현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사람 얼굴도 찍고 저 사람 얼굴도 찍어서 따로 붙이면 간단한 것을 기어이 한 장에 담으려 하니 동료기자와 피 튀는 자리다툼도 벌여야 하고 렌즈도 바꿔가면서 찍어야 하는 수고를 하게 된다. 사진기사가 동영상과 다른 점도 이 ‘한 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주제를 나타내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방송사 기자 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는 순간을 찍어서 당시의 자기 심정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신문 사진을 보고 동영상과 사진의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며, 그 한 장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진기자들의 대단함에 혀를 내둘렀다.
한 장이라는 제한된 영역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진기자에게 더욱더 철학적이고 윤리적이기를 요구한다. 한 장으로 표현한 사진은 현실을 왜곡하는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서울시내 한 대학에서 대규모의 점거농성이 있었다. 그 학생들을 진압한 당시 정부는 대대적인 공안몰이를 시작했다. 이에 편승해 이 대학에서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를 애국심 출중한 교수들이 뜯겠다는 어이없는 보도자료가 나와서 취재를 간 적 있다. 당연히 학생들이 교수들을 막아섰는데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대자보는 다 뜯겨 나갔다. 민주주의와 지성의 전당에서 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황당했지만 더 황당한 것은 다음날 어떤 신문의 1면 사진이었다. 학생이 교수의 넥타이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자보를 뜯는 교수의 넥타이를 잡아당기고 있다’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이 장면을 보지 못한 나는 자초지종을 묻는 부장한테 이런 일이 없었다고 항변을 해야만 했다. 며칠 뒤 검찰이 학생을 수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휘날리는 넥타이가 잠시 손과 닿은 것이라는 교수의 해명에 결국은 흐지부지 없었던 일로 되고 말았다.
사진은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승리한 김부겸 당선자가 총선 다음날 지역구를 돌면서 당선사례를 하는 장면이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상대방 후보의 대형 홍보물이 뒤로 걸려 있다. 손을 흔들던 김 의원이 사진기자가 자세를 낮추며 사진을 찍자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고 한다.
“에이. 기자님들, 저 선배님(김문수)이랑 나랑 걸지 마세요. 그런 사이 아닌데.”
그렇지만 셔터는 눌러졌고 신문엔 이 사진이 실렸다. 안정적인 지역구를 버리고 불가능한 지역에 도전장을 내민 김부겸은 좀처럼 부서질 것 같지 않았던 지역주의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것도 상대는 그 이름만 들어도 후덜덜한 대권후보 아니던가? 계란으로 바위를 쳤는데 계란이 드디어 바위를 깼다. 계란만 찍을 것인가 계란 뒤로 깨진 바위를 같이 넣어서 찍을 것인가? 바위를 빼먹고 찍는 사진기자라면 사진을 전송할 때 경위서도 함께 보내야 할 것 같다.
특정 지역에선 막대기를 꽂아도 된다고 할 정도로 지역주의는 심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견고한 지역주의도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역구도가 무너지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한층 발전할 것이다. ‘민주주의’,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는 세상 아니던가? 대학교에 붙인 학생들의 대자보를 권위로 뜯어내는 무식한 교수님들도, 왜곡된 사진으로 혹세무민하는 기자도, 그걸 보고 수사 운운하던 검찰도 학생들이 하고픈 말을 맘대로 하게 했다면 애초에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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