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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더민주 운동권은 열린우리당 운동권과 어떻게 다른가?  

등록 2016-05-13 09:53수정 2016-05-13 11:52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앞줄 왼쪽 둘째)와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지난 12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고 윤상원·박기순 묘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광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앞줄 왼쪽 둘째)와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지난 12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고 윤상원·박기순 묘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광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의겸의 우충좌돌
당선자 워크숍을 통해 본 12년전 열린우리당과 더민주 운동권
총학생회장에서 현장밀착형으로 ‘86 그룹’ 주도세력이 바뀌었다
12일 이른 아침 국회에서 버스에 올라탔다. 더불어민주당의 당선자 워크숍이 열리는 광주로 향하는 버스다. 네댓 시간 차창 밖 풍경을 무심히 흘려보내다 ‘언젠가도 이런 당선자 워크숍을 취재했었는데...’ 하는 기시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12년 전인 17대 국회 때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며 제1당이 됐다. 이번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됐다. 취재기자로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제1당이 된 두 번 모두 당선자 워크숍을 구경하는 셈이다.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그러나 두 워크숍 분위기는 딴판이다. 이번에도 분명히 이기긴 이긴 건데 소리 내 웃는 사람이 없다. 호남을 뺏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워크숍도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로 내려간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는 거다. 12년 전에는 설악산 자락의 풍광 좋은 호텔에서 열렸다. 봄날 햇살은 싱그러웠고 모두들 승리 뒤의 달뜬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152명 당선자 가운데 초선 의원은 무려 108명이었다. 그 가운데 대다수가 이른바 ‘386’이었다. 70년대 학번이라도 많은 이가 운동권 출신이었으니 다들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 우리 정치권에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진입한 최초의 의회였다. 워크숍 가는 길은 농지거리와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했다. 흡사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는 분위기였다. 기억은 희미하게 빛이 바랬지만 그래도 몇 장면이 떠오른다.

너무 일찍 긴장의 끈 놓았던 ‘노란 점퍼’

당선자들이 여장을 푼 뒤 당시 열린우리당의 상징색인 노란색 점퍼로 갈아입고 한데 모였다. 152명이 모였으니 강당이 그득했다. 여의도 국회의 반이 강원도로 옮겨온 셈이었다. 임채정 의원이 주제발표를 했다. 뭐 그리 흠 잡힐 말을 한 게 아닌데, 초선인 임종인 의원이 발끈해 일어났다. “총선을 통해 사회경제적 혁명이 일어났는데, 중립적 태도를 취해서 무얼 하자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전적이었다. 정청래 의원도 기억난다. “이념이란 게 과연 나쁜 겁니까?” 에두르지 않고 바로 찌르고 들어가는 입담이 이때부터 선을 보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실용이냐 개혁이냐’는 논쟁의 서막이 올랐다. 끝없이 반복되는 되돌이표였고 중구난방이었다. 보수언론은 이를 ‘백바지 대 난닝구 논쟁’이라고 비하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그날 이런 말을 했다. “152명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통합을 할수 있는지에 대해 좀 걱정이 됩니다.” 그의 우려는 머잖아 현실이 되고 만다.

지난 2005년 8월 29일 정세균 원내대표(맨 앞) 등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이틀 일정으로 경남 통영 마리나리조트에서 열린 당 소속 의원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통영/연합뉴스
지난 2005년 8월 29일 정세균 원내대표(맨 앞) 등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이틀 일정으로 경남 통영 마리나리조트에서 열린 당 소속 의원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통영/연합뉴스
당시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 사이의 묘한 긴장관계도 이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사회자가 두 사람을 소개하거나 두 사람이 연단에 오를 때 의원들 사이에는 박수 경쟁이 붙었다. 김근태 대표에게 가는 박수소리가 더 컸고 환호가 더해졌다. 어느 여성 의원은 김근태 대표에게 여러번 ‘오빠’라고 외치기도 했다. 웃음 속에 뼈가 있었다. 전문가 그룹과 운동권 출신 사이의 주도권 경쟁처럼 느껴졌다. 이후 당은 두 사람의 영문 애칭을 따 디와이(DY)계와 지티(GT)계로 갈라지며 당내 갈등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누가 통일부장관이고 누가 복지부장관이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서로 생각이 다른 건 자연스러운 게다. 이견을 얼마나 생산적 대화로 승화시켜내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로운 토론 문화와 함께 엄격한 규율, 상대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17대 열린우리당에는 규율과 존중이 모자랐나 보다. 너무 일찍 긴장이 풀렸다. 최소한 그날의 기억이 그렇다. 처음으로 맛본 의회권력 교체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저녁 식사에 곁들인 반주에 취해서인지, 밤이 깊어갈수록 흥취는 고조돼갔다. 2박3일 일정 중 마지막 날에는 호텔의 클럽을 통째로 빌려 기자들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여흥이 벌어졌다. 지금은 중진이 된 어느 의원은 여성 의원들끼리 모여 노는 노래방에 불려가 탬버린을 들고 흥을 돋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혼자로는 힘이 달렸는지 기자들의 손을 끌기도 했다. “오늘 누님들 노는데 우리가 기쁨조 좀 돼 드리자.”

 당구를 치던 장면도 떠오른다. 호텔 로비 한쪽에 당구대가 놓여있었는데, 임종석 의원이 먼저 긴 다리와 긴 팔을 이용해 솜씨를 뽐냈다. “내가 재수할 때 당구장에서 살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자 유인태 의원이 “나는 중학교 때 동네 형들 따라다니면서부터 배웠어”라며 달인의 경지에 이른 당구 실력을 선보였다. 유시민 의원도 보기와 다르게 상당히 숙달된 기술을 보여줘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들 유쾌했다. 청와대도 국회도 모두 장악했으니 모든 게 잘 될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뭔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워크숍에 같이 취재 갔던 후배 기자가 전해 준 내용이다. 그날 여흥 자리가 끝나갈 무렵 유시민 의원이 한쪽 구석에 그림자처럼 앉아 있더란다. 말을 붙였더니 그는 혼잣말처럼 “불안해, 불안해”를 연발했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다는 거냐”는 질문에 “왜 이렇게 불안한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불안해”라고 말했다니 본능적인 감각이 작동했나 보다. 그의 예감은 2004년 해가 가기 전에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이 좌절되면서 열린우리당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쓴소리 경청하며 자세 낮춘 ‘파란 티셔츠’  

20대 국회에도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진입했다. 예전에 비해 표가 덜 날 뿐이다. 1970년대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90년대 중반 대학을 다녔던 박주민 당선자도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운동권이다. 운동권 문화가 완전히 퇴조기에 접어든 시기였는데도 그렇다. 그는 “철거민촌, 공장, 농촌 그런 곳에 가서 제 자신을 회복시키는 걸 넘어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게 됐죠”라고 말한다. 그런데 20대 더민주의 운동권 출신 당선자들은 17대 열린우리당의 운동권 출신들과는 뭔가 많이 다르다.

 워크숍 이틀 전인 10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당선자만을 상대로 한 연찬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 12년 전 열린우리당 워크숍에서 발제를 했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 강연을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예산 전문가’가 되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주문을 쏟아냈다. 다들 숨소리마저 죽이며 경청했다. 강연이 끝나자 자리를 빠져나가는 임 전 의장을 배웅하기 위해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12년 전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그 사이에 임채정 의원이 국회의장 경력을 더했기 때문은 절대 아닐 것이다. 임 전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17대 때는 다들 개선장군처럼 승리감에 도취돼 있었던 반면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의원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연륜을 쌓아온 분들이라 사고의 폭과 깊이가 다르다. 훨씬 신중하고 현실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12일 김대중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는 달라진 분위기가 더 분명히 드러났다. 12년 전 노란색 점퍼가 파란색 티셔츠로 바뀌어서만은 아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는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로서 이곳 호남을 방문했다”며 “우리에게 호된 채찍질을 한 호남 민심 앞에서 잘못했다고 빌고 경청하고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하러온 것”이라고 한껏 자세를 낮췄다.

‘광주시민에게 듣는다’는 시간에는 광주지역의 인사 5명이 쓴소리를 뱉어냈다. ‘무능한데 오만하기까지 하다’고 자존심 긁는 소리도 했다. ‘친노 패권주의’를 공격할 때는 사실관계가 어긋난 대목도 있어 보이던데 의원들은 조용히 귀 기울여 들을 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저녁 여흥도 없었다. 민생국회 실천을 위한 토론, 수권경제정당 실현을 위한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분반 모임이 이어졌다. 밤 10시 가까이 돼서야 하루 일정이 끝났다. 의원들이 숙소로 돌아간 이후에도 혹시 긴장이 풀릴까 우상호 원내대표는 ‘감시반’을 가동해 의원들이 숙소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기까지 했다. ‘기자 접대’를 위한 소수 정예 요원만 금주령에서 풀어줬다. 몇몇 의원들이 “아니 국회의원들의 양식을 믿어야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항의했지만, 우상호 원내대표는 밀어붙였다.

명망가에서 전문가로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첫째는 나이가 든 탓일 게다. 요즘에는 주로 ‘86 그룹’이라 불리는 집단이 17대에는 주로 30대 후반 40대 초반이었다. 그래서 ‘386’이 통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이 50을 훌쩍 넘어섰다. 쓴맛 단맛 다 보면서 많이 숙성이 된 것이다. 17대에는 초선 108명이 모두 개성이 강해 ‘108 번뇌’라고 불렸다. 하나하나가 번뇌 덩어리였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지난 것이다. 이번에 더민주의 원내대표단에 도전한 의원이 6명이었는데 이들 모두 17대에 처음으로 등원한 이들이다. 노웅래(서울 마포구갑, 3선 이하 20대 국회 기준) 강창일(제주 제주시갑, 4선) 민병두(서울 동대문구을, 3선) 우상호(서울 서대문구갑, 3선) 우원식(서울 노원구을, 3선) 이상민(대전 유성구을, 4선) 의원이다. 당에 번뇌를 일으키던 사람들이 이제는 당을 대표하는 지도부로 성장한 것이다. 나이가 들고 당내 지위가 달라지면서 책임감도 높아진 듯하다.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86 그룹이 단순히 운동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의 86 그룹이 실패하면 우리 세대 전체가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둘째, 같은 운동권 출신이라도 20대 의원들은 17대 때와는 그 성장과정이 다르다. 과거에는 주로 총학생회장을 지낸 명망가 중심이었다. 학생운동 경력만으로도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20대에는 생활 현장에서 묵묵히 기반을 쌓았거나 전문 영역을 인정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경북 의성에서 사과 키우고 소 기른 김현권 당선자가 대표적이다. 김한정 당선자도 25살 때부터 김대중 총재의 비서로 입문해 격동의 정치 현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몸으로 배운 이다. 한 당직자는 “과거 초선들은 상임위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2~3년은 공부하는 기간이 필요했는데, 이번 초선들은 바로 투입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사람이 많다”고 평가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세 번째일 것이다. 모두들 쓴 경험을 많이 겪었다. 그냥 쉽게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이 없다. 17대에는 덜컥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많아서 ‘탄돌이’라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고, 노회찬 의원은 “길 가다 지갑을 주웠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대 의원들은 다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이다. 경희대 운동권 출신의 치과의사 신동근 의원은 16대 때 재보궐부터 나오기 시작해 4번이나 계속 떨어지다 5번째에야 겨우 붙었다. 고려대 운동권 학생으로 검사직을 던지고 나온 백혜련 당선자도 3번째 도전 끝에 당선됐다. 어느 동료 의원은 “처음에 볼 때만 해도 아직 검사 티를 벗지 못해 뻣뻣하더니 이번에 보니 허리가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더라”고 표현했다. 초선 의원들 57명은 자기들끼리 카톡방을 운영하는데 너무 신중해서 탈일 정도라고 한다. 누군가 “총선 평가 한번 제대로 하자”고 제안을 올리면 바로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총선 평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기 위한 평가가 돼야 합니다”라는 반응이 올라오는 식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초선 의원으로서의 기백이 안 보이고 역동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정치인이 성장을 하려면 자신의 견해를 뚜렷하게 밝히고 대중적으로 검증 받는 과정이 필요한데 지금은 집단적 위기감 속에서 다들 스스로의 존재감을 죽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5월30일은 국회 개원일이다. 12년 전 개원을 하루 앞둔 5월29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청와대로 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련해준 환영 만찬회장에 모여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그리고 “님을 위한 행진곡이 대한민국의 한 복판인 청와대 영빈관에서 울려 퍼지게 될 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을...”하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나 20대 초선 의원들은 개원을 하루 앞둔 5월29일 진도 팽목항을 찾는다. 방문을 제안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자는 “20대 때 세월호 문제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17대 열린우리당과 20대 더민주의 시작은 달라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계량하기 힘든 차이이고 성과물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우상호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고나서 공언한 “우리들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라섰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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