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2017 광장의 노래]
3부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③-진화하는 민주주의
18살 청년부터 77살 어르신까지
1년간 낙태금지 등 5대과제 논의
옛 그리스 ‘참여 민주주의’ 실험중
3부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③-진화하는 민주주의
18살 청년부터 77살 어르신까지
1년간 낙태금지 등 5대과제 논의
옛 그리스 ‘참여 민주주의’ 실험중
시민의회 위원들은 ‘평범한 비전문가들’로 이뤄진다. 대신 전문가들을 불러 치열한 학습과 토론을 벌인다. 이들이 도출하는 최종 결론은 ‘평범한 사람들의 전문적 식견’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그랜드호텔 말라하이드에서 열린 시민의회 제3차 회의에서 전문가들이 낙태 금지 문제를 두고 찬반 토론을 밝히고 있다. 아일랜드 시민의회 제공.
연령·성·사회계층·지역 고려 의회 꾸려
중립 위해 언론·정치인과 그 가족 배제
주제발표→원탁토론→질의응답 반복
생중계 통해 일반 시민들 의견도 받아
의회는 사안별 권고안 수용 여부 밝혀
“중요한 건 당신의 의견입니다”
전문지식 없는 18살 청년도 참여
“민주주의 진회 위한 의미있는 시도” 현재 시민의회는 아일랜드의 가장 오래된 논쟁거리인 낙태 금지 문제를 가장 먼저 논의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며 1983년에 헌법 제8조를 수정해 낙태를 금지했다. 산모의 생명이 심각하게 위험하지 않으면 낙태를 할 수 없다. 성폭력 피해로 임신했거나, 태아가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판단되어도 산모가 낙태를 결정할 수 없다. 2012년 아일랜드에 사는 인도 출신 여성 사비타는 아이가 유산될 것이란 진단을 받은 뒤 인공유산을 병원에 요청했지만 아이 심장이 뛰고 있어 수술할 수 없다는 결정 때문에 자신의 건강도 악화돼 죽음에 이르렀다. 이 일을 계기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아일랜드 헌법 제8조 수정안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지난 4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그랜드호텔 말라하이드에서 열린 시민의회 제3차 회의에서 99명의 시민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낙태 금지 문제를 두고 찬반 토론을 밝히고 있다. 아일랜드 시민의회 제공
지난 4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그랜드호텔 말라하이드에서 열린 시민의회 제3차 회의에 참가한 시민위원들의 원탁에는 토론 대상인 ‘낙태 금지‘와 관련한 각종 자료가 수북히 쌓여 있다. 더블린 한겨레 송호진 기자
‘그들만의 리그’는 그만…‘한국판 시민의회’ 제주 주민자치위원 추첨제 실험 2009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제주살이를 시작한 강전애(37) 변호사는 지난 1월 제주시 이도2동 주민자치위원이 됐다. 30대 여성인 그가 지역 주민 대표로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제주도의회가 지난해 7월 조례를 개정해 자치위원을 추첨제로 바꿨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는 “9년째 제주에 사는데도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며 “올해부터 ‘뺑뺑이’로 자치위원을 선출한다고 해서 자치학교를 이수하고 응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그는 2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자치위원에 ‘당첨’됐다. 강 변호사는 “새로운 사람들이 적극 참여하면 제주도가 많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일랜드의 ‘시민의회’처럼 시민이나 지역 대표를 추첨제로 뽑는 실험이 한국에서도 싹트고 있다. 주민의회와 비슷한 제주도 주민자치위원회는 43개 읍·면·동마다 각각 15~35명의 자치위원을 선발하는데 올해 처음 추첨제를 도입했다. 그동안은 이장·통장협의회가 추천하고 읍·면·동장이 자치위원을 선임해왔다. 그 결과, 지역 유지나 관변단체가 위원직을 독점해 주민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기존 지역유지나 관변단체가 독점
올해 처음 추첨제로 주민대표 뽑아
“선거·추천과 달리 특정인 위주로
구성되지 않아 대표성 확보 가능” 2015년 5월 제주대 교수회, 제주주민자치연대 등 6개 지역 시민단체는 ‘제주특별자치도주민자치제도개선협의회’를 발족해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추첨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신용인 제주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주민자치를 실현하려면 다수의 주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필요했다. 추첨제는 누구나에게나 선발 가능성이 열려 있어 가장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능하거나 불성실한 사람이 자치위원으로 선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자치학교를 이수해야만 자치위원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자격제한을 뒀다. 지난해 12월 42개 지역에서 자치위원 1028명을 선발했는데 47%(477명)는 주민 추첨으로, 53%(547명, 기타 4명)는 지역·직능대표로 뽑았다. 대부분을 주민 추첨으로 뽑으려던 애초 계획에서 한발 물러선데다 제주도가 자치학교도 낮에 4차례만 열어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런데도 주민 1700여명이 이 과정을 수료했다. 한재림 제주시 일도2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지역 유지들이 독점할 때는 ‘그들만의 리그’라서 관심이 없었는데 추첨제로 누구나 될 수 있다니까 지역 주민의 자치학교 참여 열기가 뜨거워졌다”고 설명했다. 헌법개정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처음 헌법을 만들 때나 그 이후 9차례나 헌법을 고쳤지만, 국민이 개헌의 주체로 나선 적이 없다. 1960년 4·19 혁명 뒤 제3차 개헌이나 1987년 6월항쟁 뒤 제9차 개헌 때도 국민은 빠지고 정치권이 적당히 타협해 헌법을 개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의 결과로 1987년 이후 30년 만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여전히 개헌 문제를 정치인끼리 다루려 한다. 지난 1월부터 활동하는 개헌 특위(위원장 이주영)도 여야 의원 36명으로만 구성됐다. 각 분야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지만 일반 국민이 개헌 과정에 참여할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개헌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국민투표만 보장될 뿐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변호사)는 “일반 법률을 개정할 때도 입법예고 등의 절차를 밟고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데 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개정을 하면서 그보다 더 부실한 의견수렴을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개헌 특위에 참가하는 김종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200~300명을 선발해 시민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시민위원회에서 개헌의 주요 쟁점을 토론하고 공론 조사를 벌여 개헌 특위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국민참여형 개헌 절차법’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첨민회네트워크는 지난 6일 윤소하 의원(정의당) 소개로 ‘헌법개정안 마련을 위한 시민의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입법 청원했다.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발한 300명의 위원으로 시민의회를 1년간 구성하는 게 뼈대다. 시민의회는 왜 추첨으로 구성해야 할까.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정치학)는 “누구라도 민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첨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자유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선거나 추천과 달리 특정 계층 위주로 구성되지 않아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사회학)는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국회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헌법(아이슬란드, 아일랜드)이나 선거법(캐나다,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을 개정할 때 시민의회가 소집됐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시민의회를 통해 국민이 개헌을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는 2006년에 시민의회 방식으로 첫 선거법 개정에 성공했다. 캐나다는 2004년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2006년 온타리오주에서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가 열렸다.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은 학습과 공청회, 심의 단계를 밟으며 1년간 총회를 열었고 의결 사항은 주민투표에 회부됐지만 부결됐다. 2009년에는 아이슬란드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회’를 구성했다.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이 나라는 헌법 개정 등 국가 개조 작업에 나섰고 각계 대표 1500명이 국민의회를 만들어 개헌 안건을 선정하고 토론했다. 이후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구비례에 맞춰 960명의 시민으로 무작위 추출한 ‘국민포럼’을 소집했고 이들은 국민의회에서 다뤄진 것을 포함한 주요한 헌법 이슈를 토론했다. 국민의회와 국민포럼에서 논의된 결과는 개헌안으로 만들어져 의회에 제출됐다. 2012년 개헌안은 국민투표를 통과(찬성 66.3%)했지만, 최종 관문인 의회에서 좌절됐다. 보수 야당인 독립당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의회 표결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H6s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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