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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밀었더니 넘어가더라, 약자들의 권능감이 촛불의 핵심이다”

등록 2017-02-23 08:21수정 2017-02-23 08:28

[1987~2017 광장의 노래] 4부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설계도
에필로그-광장 너머의 민주주의 / 전문가 3인 촛불 이후 전망
(왼쪽부터)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hani.co.kr
(왼쪽부터)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hani.co.kr


청와대 100m 앞까지 간 건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진전

광장의 촛불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혹한을 뚫고 광장에 나선 1200만여 시민들의 바람은 어디서 비롯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지난해 12월 촛불의 한가운데서 시작한 ‘1987~2017 광장의 노래’가 긴 여정을 마쳤다. 그사이 한국 사회는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촛불 이후’를 전망하기 위해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문가들을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났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의 지혜를 빌려, 대한민국 사상 최다 인파가 쏟아낸 물음표의 의미를 가늠해 봤다.

# 보수의 극단화, 탄핵 정국에 집중해야

사회 보수세력의 탄핵반대 집회 등 역풍이 거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서복경 여론조사를 보면 탄핵이 인용돼야 한다는 의견이 몇개월째 78~79%에서 변동되지 않고 있다. 다만 탄핵을 반대하는 쪽의 의사표시 강도가 세졌을 뿐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갈 곳 없는 세력과 이들과 정서적으로 결속 관계를 유지해 온 분들은, 대통령 탄핵을 국가의 몰락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후지이 다케시 보수세력 입장에선 줄을 갈아타야 하는데, 바꿔 설 줄이 없는 상황이다. 선택지가 없으니, 더욱 발악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갈 데까지 갔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신진욱 지금 한국 사회에는 서로 다른 두 시간대가 있는 것 같다. 탄핵이 되느냐 마느냐를 걱정하던 지난 12월의 시간대와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무엇을 할 것인가의 시간대가 있다. 그런데 지금 야권과 촛불 시민들은 대선 이후의 시간대만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 보수세력은 우리가 지나친 앞선 시간대에 강력하게 재집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탄핵이 기각될 수도 있다는, 말하자면 지난 12월에는 있을 수도 없던 일이, 마치 있을 수도 있는 일인 것처럼 전환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박근혜와 최순실로 대표하는 구체제의 완전한 청산이라는 과제를 다시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사회 실제 특정 시점 이후 보수언론에서는 ‘헌재가 기각 결정을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프레임을 제기하고 있다.

서복경 특정한 정치적 의사가 전국적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지역·계층·세대별 도약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따져보면 보수 세력이 딛고 도약할 기반이 없다. 젊은층과 노년층 사이에서 키를 쥐고 있는 50대의 탄핵 지지율이 70%로 매우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 지역적으로 피케이(PK)의 여론 추이가 전국 평균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남은 것은 이념적 기반밖에 없는데, 지금 보수세력은 아주 올드한 보수집단에 갇혀 있다. 적어도 시민들의 수용도 측면에서는 반전이 쉽지 않다고 본다.

신진욱 지금 상황을 좀더 엄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탄핵 찬성 여론이 70~80% 정도로 지배적인 상황이지만, 역사적으로 제도적 움직임이 여론과 다르게 움직여서 두눈 뜨고 당해본 경험이 많다. 적어도 지난 12월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서서히 부활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사회 상상하기 힘든 시나리오지만, 헌재가 기각을 한다면 받아들여야 할까?

후지이 다케시 주권이 법의 원천이다. 주권자인 시민은 단순히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대상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주권자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법치주의를 넘어서야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단순히 헌재나 사법기관이 결정했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국민으로 하여금 주권자임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신진욱 ‘기각이 된다면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에 답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촛불 시민들은 지금까지 압도적인 여론을 통해 제도 정치와 국가 기관에 대해 영향의 정치를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그와 같이 어떠한 경우에도 기각은 없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서복경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시민들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본다. 또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만약 기각이 되더라도 12월 대선이 예정돼 있다. 관료나 경찰·군대, 이런 조직은 6개월 뒤 선거 결과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어렵다고 본다. 의회 다수당도 야당이다. 시민들 역시 정치적으로 매우 각성돼 있는 상황이다. 설사 박근혜 대통령이 복귀한다 하더라도 국가 운영이 쉽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 촛불의 바람, 우리의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사회 광장이 요구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뭐라고 생각하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가려져 그 이후에 대해서는 또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신진욱 1960년 4·19 민주혁명,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1987년 6월 항쟁 등 저항의 사이클에서의 핵심은 대의 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부정선거 하지말고, 내 손으로 대통령 뽑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과 2016년의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저항은 이전과 다른 흐름을 보인다. 그 흐름은 ‘선거 민주주의를 넘어서자’는 요구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물론 국민의 손으로 뽑았지만, 다음 선거 때까지 오케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두번째로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2008년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로 촉발돼서 민영화, 탈규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확장됐다. 박근혜 게이트의 경우도 권력이 얼마나 추잡한 이해관계를 통해 사유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충격이 있었다고 본다. 이는 공공성에 대한 열망이다.

후지이 다케시 혁명적인 움직임이 보수적인 가치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국민주권과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사실 보수적인 가치다. 매우 보수적인 주장이 혁명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촛불 이후에 대해 고민이 쉽지 않다고 본다. 지금 촛불을 든 학생들은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삶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경우는 드물다. 광장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면 그대로다.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촛불 이후에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사회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인가?

후지이 다케시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 역시 일종의 사회적 능력이기 때문에 경험치가 중요하다. 그런 경험을 일상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경제라는 영역을 따로 보는 태도 자체가 폐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 영역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데, 정치와 경제는 단 한번도 분리된 적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정치와 경제가 어떤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공장 안으로, 직장 안으로 민주주의가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와 제도를 어떻게 바꿀까 고민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력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과제인 셈이다. 지금은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 작업장에서의 결사의 자유, 단체행동권 등에 모두 재갈이 채워져 있다. 일상의 정치가 안되는 이유 역시 제도에 있다는 뜻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
서복경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서 대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풍부하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광장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의 내재적 본질이다. 대의제가 민주주의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적 제도가 오작동 할 때 시민들이 직접 나서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권력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과제인 셈이다. 지금은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 작업장에서의 결사의 자유, 단체행동권 등에 모두 재갈이 채워져 있다. 일상의 정치가 안되는 이유 역시 제도에 있다는 뜻이다.

신진욱 이번 촛불 집회에서 정치와 국가의 개혁이라는 주제가 가장 핵심에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분명한 메시지가 저항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촛불 집회에 부재한 것도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특히 삶의 현장에서의 민주주의의 부재, 권력의 극단적인 불균형 같은 것은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2008년 촛불과 비교할 때, 2016년 촛불이 진화된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서복경 2008년과 2016년의 경험은 굉장히 다르다고 본다. 대중의 저항을 영향력의 범위와 이슈의 깊이로 나눠서 생각해 보면, 2016년이 2008년보다 두 측면에서 모두 훨씬 크고 깊었다고 생각한다. 2008년의 경우 광장 전후에 진행된 정치조사에서 전국민적인 변화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차원에서 전국민적인 유의미한 변화가 생긴다. 정치 관심도가 늘었고, ‘내 삶에서 정치가 중요하다’는 응답이 15%포인트 늘었다. 정치 효능감은 2배 가까이 늘었고,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지표도 30%포인트 늘었다. 정치의식에서 한단계 질적 변환이 전국민적인 차원에서 발생했다고 본다.

신진욱 2016년이 의제의 범위의 측면에서 좁고, 그 안에서의 임팩트의 깊이가 2008년보다 훨씬 깊다고 보는 편이다. 2008년 촛불집회의 가장 주요한 충격은 온라인에서 벌어진 불평등과 복지, 여성 등 각종 이슈에 대한 토론에 있었다고 본다. 그 이전까지 주요 이슈로 등장하지 않았던 각종 진보 의제에 대한 인지적인 각성을 가져다 준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2016년 촛불집회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 이후의 국가개혁에 확실히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불평등과 삶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제기되지 않고 있다.확실한 포커싱과 그에 비례한 확실한 임팩트가 있었던 셈이다.

후지이 다케시 2008년과 2016년의 촛불 집회가 바라보는 대상이 분명히 달랐다고 본다. 2008년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방식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당시 촛불 시민들의 구호는 ‘엠비 아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저항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토론을 낳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박근혜 하야’로 끝났고 토론의 여지가 없다.

서복경 시기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2008년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였고, 2016년은 정권 말기다. 정부 출범 시기에는 표출되는 관심의 대상이 다층적일 수밖에 없었다. 취임 하자마자 ‘너 나가’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 사퇴의 대의명분이 너무나 명백하니까 ‘너 나가’로 진행됐을 뿐이다.

신진욱 촛불 집회에 나타난 정상 국가에 대한 욕구가 한국 사회에 잠복된 유일한 시대적 과제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자본주의의 선봉에서 제도적 권력을 이용해 재벌로 대표되는 사적 영역에 권력을 넘긴 세력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옛날 옛적에 없앴어야 할 묵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구나 인식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번 촛불 집회에서 드러나는 요구들도 세계사적 흐름에서 보자면 퇴행적인 미완의 과제로 분출된 측면이 있다.

# 한국사회 모순의 근원, 박정희 체제

사회 한국 사회 모순의 근원을 따라가보니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시각에 동의하는지?

서복경 정치 제도 쪽으로는 모든 악의 뿌리가 박정희 체제다. 헌법에 규정된 비민주적인 정당 조항이나, 정당법 등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제도의 기원이 제3공화국 헌법이다. 공직선거법,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도 박정희 정권 때 강화되면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노동 관련 기본법도 마찬가지다. 제3공화국 위에 제4공화국이 얹혀있고, 또 그 위에 제5공화국이 얹혀있는데, 우리는 간신히 제5공화국의 잔재를 조금 걷어냈을 뿐이다. 민주화의 과정이 제3공화국의 뿌리를 그대로 두고 사상누각을 지어온 느낌이다. 박정희 체제의 문제는 경제개발, 정경유착의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박정희는 거의 모든 것이다. 박정희가 말한 조국 근대화는 국가 개조나 정책적 수준을 넘어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였다. 1987년 이후 민주화는 제도적 개혁과 정책적 개혁에 성공했지만, 정치와 정당을 넘어서는 국가 조직의 문제, 또 국가 조직을 넘어서는 삶의 현장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박정희 20년이 만들어놓은 초석을 깨뜨리지 못한 결과물이 지금의 현실일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 박정희는 거의 모든 것이다. 박정희가 말한 조국 근대화는 국가 개조나 정책적 수준을 넘어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였다. 1987년 이후 민주화는 제도적 개혁과 정책적 개혁에 성공했지만, 정치와 정당을 넘어서는 국가 조직의 문제, 또 국가 조직을 넘어서는 삶의 현장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박정희 20년이 만들어놓은 초석을 깨뜨리지 못한 결과물이 지금의 현실일 것이다.

후지이 다케시 안보 담론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은 군대와 국가를 동일시하고, ‘우리를 지켜주는 군대’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안보 담론의 밑바탕이다. 보수 세력은 안보담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고 있다. 그 부분에서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복경 정치 의식에서도 박정희의 유산은 나타난다. 박정희 유신 체제에 청년기(17~25세)를 보낸 세대가 지금의 60대 초반 세대다. 이들은 그 이전 세대(70~80대)보다도 훨씬 더 국가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것 역시 박정희가 남긴 유산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신진욱 박정희 체제가 어떤 형태로 살아남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본다. 이걸 의식과 제도의 측면으로 나눠보면, 의식의 측면에서 박정희 체제가 남긴 반공주의·국가주의·성장주의는 이번 사태를 통해 많은 부분 신화가 깨졌다고 본다. 그런데 제도와 조직의 부분에서는 여전히 박정희 체제의 생명력이 강력하게 남아있다고 본다. 권위주의를 경험한 나라들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구 체제의 지배세력이 권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도를 변형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권력과 검찰, 언론, 관료조직, 교육기관, 종교기관, 정당 등 기득권 세력을 보면, 박정희 신화에 따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주요 포스트를 장악하고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불평등에 찬성하고, 인권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서복경 그간 민주주의에 반하는 가치 체계를 가진 분들이 많은 영역에 숨어있었다. 이분들이 ‘커밍아웃’하게 만드는 것이 이번 사태가 가지는 역설적 순기능이라고 본다. 저는 그래서 황교안 권한대행이 그런 분들을 대표하는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숨어들지 않고, 제도권 안에서 표현의 자유, 행동의 자유를 누리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해야 뿌리가 드러날 수 있다.

후지이 다케시 그런 분들이 지금까지 70년대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장주의를 보면 박정희 체제였던 1960~70년대 성장주의가 주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고 성장주의를 체감하게 된 시기는 1980년대다.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시기에 오히려 성장주의가 뿌리를 내렸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사회 이미 개개인의 정서에 박정희 패러다임이 내재화되지 않았을지 걱정이다. 정권교체가 된다 하더라도 박정희 체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서복경 성과주의, 성장주의는 빠르게 깨질 것이라고 본다. 사회 경제적인 사이클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시민 주체들도 그렇다는 사실을 인식을 해야 하는데, 데이터를 보면 적어도 우리 사회 40대 이하 젊은 세대는 이런 한계를 확실히 인식을 하고 있다.

신진욱 다수의 시민들이 ‘자기 개발’의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다거나, ‘성공 신화’ 몸을 맡겼다는 방식의 비판은 굉장히 잘못됐다고 본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본인이 이 사회의 위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학벌을 통해, 직업을 통해, 위너가 될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꿔 볼 수 있는 계층 자체가 극도로 한정적이다. 극심한 힘의 불균형 속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전략을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자식을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는 것은, 참혹한 패배자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의 소산일 뿐이다.

# 밀었더니 넘어가더라, 약자들의 권능감

서복경 지금 촛불의 경험은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본다. ‘밀었더니 넘어가더라’, 이 경험이 정말 크다. 우리 광장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설명하는 가설 가운데 하나가 4·19 민주혁명의 경험이다. 훅 밀었더니 넘어갔다. 그 향수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효능이 다할 시점인 1987년에, 또 2016~2017년에 이렇게 정권이 넘어간다. 한국 사회의 약자들이 ‘내가 공적 제도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느낀 권능감이 핵심이다.

신진욱 사회적 약자들이 두려움없이 행동할 수 있게 해준다면, 사회 곳곳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가 모두 어떻게 가능했느냐를 생각해 보면, 결국은 이 사람들이 가진 힘이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저항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제도적인 측면에서 말해보자. 선거법, 국가보안법, 정당법 등등 제도 개혁은 가능다고 보나.

서복경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는 있다. 예를 들면, 헌법상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만 청와대 근처 1㎞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100m 앞까지 갔다. 되돌아갈 수 없는 거대한 진전이 있었고 그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후지이 다케시 지금 패러다임은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 세력과 유신 세력이 손을 잡은 상황이다. 유신 세력을 몰아내는 것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신자유주의 세력을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안전망을 해체하고 고용을 유연화하면서, ‘잘못 걸리면 인생 끝장난다’는 방식으로 정치적인 억압체제를 만들었다.

신진욱 왜 촛불이라는 형태로 이렇게 자주 분출되는가. 그 질문과 관련돼 있다. 자기가 놓인 삶의 현장, 노동 현장, 주거의 현장에서 모순이 이 정도까지 깊어지지 않도록 막아낼 수 있는 조직된 힘이 너무나 약하다. 일상 공간에서 너무 무력하기 때문에 모두가 뛰쳐 나올 수 있는 이슈가 발생했을 때에만, 익명의 대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각자 삶의 현장에서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를 제도적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극도의 불평등과 권력의 불균형을 회복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서복경 그런 측면에서 속도 조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지난해 12월 말 서베이한 자료를 보면,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해 50대 이상은 ‘이상한 대통령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고, 20~30대는 ‘재벌, 관료, 검찰 등 카르텔의 문제’라는 답이 가장 많다. 젊은 세대일수록 근본적인 개혁 과제를 지적한다는 것이다. 대선을 치르고 대통령이 바뀌면 50대 이상은 거기에서 만족하고 돌아설 가능성이 높지만, 20~30대는 그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분노를 보인 셈이다. 20~30대가 스스로 조직하고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을 하루 빨리 열어야 한다. 분출되지 못하는 분노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터진다.

신진욱 2000년대 중후반 청년층 보수화 담론이 한창 유행했지만, 그때의 청년 세대는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세대였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가장 적나라하게 깨진 세대, 지금으로 따지면 30~40대 중반까지의 ‘IMF세대’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화되고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 새로 선출될 정치권력의 가장 큰 숙제다.

서복경 문제는 경제체제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담론의 차원에서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오지만, 이를 대체할 대안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안의 추상성을 낮춰서, 작은 정치와 작은 개혁 같은 성공의 경험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를 묻는 설문에서 시민들은 검찰개혁, 직접 민주주의 강화를 꼽았고,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 해결과 재벌 개혁을 꼽았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후지이 다케시 재미있는 결과다. 전문가들이 경제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지금 이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이라고 본다. 전문가 그룹 혹은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시민들은 직접 민주주의를 말한다. 결국 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괴리다.

신진욱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실업자이건 비정규직이건, 그 개인에게는 적어도 이 국면에서는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내가 정치의 주체로서 발언하고 행동하고 뭔가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직접 민주주의에 체크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서복경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은 누구나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다. 사회경제적인 시장 주체로서의 나와,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주체로서의 나. 과거에는 통치의 주체를 정치 권력에게 넘겼다.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던 50대들은 약간의 부패와 하자가 있음에도, 경제를 살려준다니까 찍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성장이건 분배건 그런 요구를 들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법치, 최소한의 공정성 등 정책 형성 전 단계의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개혁의 대상은 결국 경제 영역이다. 그런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일 뿐인가? 비정규직 문제가 임금격차의 문제라면 월급을 100만원 더 주면 된다. 하지만 직장에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직장 내 권력과 복종의 문제 등까지 시선을 돌리면 그 해법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경제적인 개혁과제들을 민주주의와 정치의 방식으로 풀어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 그렇다면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는 무엇일까?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후지이 다케시 근본적인 개혁의 대상은 결국 경제 영역이다. 그런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일 뿐인가? 비정규직 문제가 임금격차의 문제라면 월급을 100만원 더 주면 된다. 하지만 직장에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직장 내 권력과 복종의 문제 등까지 시선을 돌리면 그 해법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경제적인 개혁과제들을 민주주의와 정치의 방식으로 풀어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서복경 공적 권력에 대한 시민적 통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시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저들이 공적인 권력과 재정을 사유화했다는 점이다. 공적 권력을 시민들이 직접 견제하고 감독하고 스스로 바꿀 수 있도록 요구하는 상황이다. 결국 단순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의 보장을 통해 시민들이 일상적인 정치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실패하면 우리는 또 나중에 광장에 몰려나와 뒷북을 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신진욱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에 역행하는 세력이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주요 포스트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여기에 더해 직장, 학교, 가정, 광장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이를 간섭하고 막는 강자들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방벽을 쳐주지 않으면 사회가 개선될 수 있는 첫단추를 꿰지 못하게 된다.

후지이 다케시 제도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웃 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힘들 순 있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는 안심이 있어야, 일상에서 개혁이건 저항이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이재성, 정리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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