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후보들은 저마다 장밋빛 공약을 내걸며 지지를 호소한다. 가짜 뉴스까지 포함해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쳐난다. 지난 대선에서의 선택이 실패로 드러난 지금, 유권자들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 고민에 작은 힌트라도 건네고자, 후보들에게 자신의 정치관과 가치관을 담은 애장품을 소개해달라 요청했다. 때로 주인의 내밀한 사연과 가치관을 담은 애장품은 그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후보에 대한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취재 결과 애장품과 그 선정 사유에서 각 후보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각양각색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 주시라.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재인의 묵주반지
내 왼쪽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이 묵주반지는 내게 종교 이전에 어머니다. 20년 전 한창 변호사로 바쁠 때 어머니가 주셨다. 성당에 잘 안 가니 복잡한 세상살이에 마음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을 게다. 부모님은 공산당에 가입하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난을 오셨다. 피난민 생활은 고생, 그 자체였다. 양말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맞자, 어머니는 노점 등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가난은 떠날 줄을 몰랐다. 어느 날, 부산역에 암표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앞장세우셨다. 거제에서 부산역까지 그 먼 길을 갔는데, 어머니는 바라만 보셨다. 날이 저물고, 끼니도 거른 채 다시 그 먼 길을 걸어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훗날, 까닭을 여쭈니 그저 웃으셨다. 아마도 자식 앞에서 작은 법이라도 어기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비록 가난했지만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신 어머니. “어려울 때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라.” “아무리 힘들어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돌아보지 마라.” 나의 좌우명인 이 말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묵주반지를 보며, 그 가르침을 새긴다.
안철수의 종이학
유리병 2012년 전국을 돌며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던 당시 선물받은 ‘종이학 유리병’이다. 이 유리병에는 안 후보의 모습을 직접 그린 그림과 “1000마리 학들의 소원과 7777개 밝게 빛나는 별빛처럼 모든 사람의 희망이 돼주세요”라는 작은 편지도 붙어 있다. 진심이 담긴 이 선물은 안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청춘콘서트 당시는 청년들과 대화하고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올바른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한 안 후보가 정치 진출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주변에서도 “삶을 바꿔달라, 정치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던 밤, 안 후보는 종이학을 마주 보고 앉았다. 종이학을 건네며 “청년들의 희망과 기대를 담아 전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정치 부탁드립니다”라고 당부하던 학생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안 후보는 바로 그날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도 이 종이학은 안 후보 의원실에 보관되어 있다. 안 후보는 왜 정치를 하게 됐는지, 누구를 위해 어떤 정치를 해야 할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 선물을 항상 가까이 두고 있다.
홍준표의 옛날 사진
내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애장품은 우리 누이와 내가 찍힌 옛날 사진이다. 낡디 낡은 옛 사진을 보고 있자면 우리 남매를 바라보았을 어머니의 마음이 떠오른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은 세종대왕도 아니고, 링컨 대통령이나 김구 선생도 아닌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는 무학을 넘어 문맹이다. 나를 키우기 위해 행상부터 시장 좌판까지 안 해본 고생이 없으셨다. 나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육사를 가려고 했다. 그러나 내 학비를 마련하려고 고리채를 얻었다 갚지 못해 사채꾼에게 머리채를 잡힌 엄마의 수난을 보고 법관이 되겠다 결심하여 고려대 법대를 지망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지극히 착하고 평범한 분이다. 내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가 두 가지인데, 첫째는 검사 시절 수많은 깡패와 권력자들을 구속시켰더니 가족까지 협박을 당하여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둘째는 우리 엄마처럼 가난하지만 착하고 순박한 보통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다.
심상정의 브로치
작년 봄날, 손편지 한 장을 받았다. 사무실을 나서야 한다는 재촉에도 브로치 한 쌍이 부록처럼 첨부된 그 편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은영님의 선물이다. 언제 처음 그를 만났던가. 2012년 10월 의원실로 들어오던 일곱살배기 어린 소년을 기억한다. 휠체어를 타고 코와 목으로 연결된 산소통에 의지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휠체어를 밀던 소년의 엄마도 기침이 잦았다. “내 손으로 내 가족을 죽였어요.” 피해자들은 고통에 스러지는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통과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어떻게든 해결하겠다 다짐했다. 못된 기업을 혼내주고, 관리 감독을 게을리한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피해자들은 처절하게 싸웠다. 나는 그저 그들을 도와줄 뿐이다. 피해자들의 싸움은 둥근 원과 같아서 시작은 있어도 결코 끝이 없다. 단 한 사람의 피해자까지 지키려 싸우는 이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정치인인 내가 빚을 갚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편에 서는 것. 그리고 억울한 이들을 양산하는 세상의 귀퉁이라도 바꿔내는 것. 이 브로치는 그 사명감을 상기시켜주는 열쇠다.
유승민의 김오랑 중령 감사패
고 김오랑 중령은 1979년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 때 쿠데타군인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이 공수부대원들을 동원해 정 사령관을 체포하려 했고, 김 중령은 홀로 쿠데타군에 맞서 교전을 벌이다 6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그 뒤 고인의 명예회복 요구가 있었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17·18대 국회에서도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결의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 19대 국회에 이르러서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결의안’이 다시 제출됐다. 이런 의로운 군인이 사후에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통과되어야 하는 결의안이었다. 그래서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으로서 국방부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본회의에서 가결되어서야 정부는 2014년 보국훈장 추서를 결정했다. 이 일로 ‘김오랑 기념사업회’의 김준철 사무총장이 직접 국회로 찾아오셔서 준 감사패다. 이 패는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 정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항상 되새겨주기에 제게는 소중한 애장품이다.
안희정의 메모와 필기구
대학 시절부터 옥고를 거쳐 도정을 이끌기까지 수십년간 그의 생각을 담아온 다양한 형태의 메모들은 안희정의 성숙해가는 내면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거울과 같은 기록들이다. 때로는 누런 공책에, 스프링 노트와 손수첩, 붙이는 메모지까지 다양한 형태의 여백에 그는 머릿속에 피고 지는 여러 생각과 비전들을 꼼꼼하게 손글씨로 적었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와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1994년 3월2일 밤 10시 처음 쓰인 아이디어 학습 노트는 “정치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으로 발전되고 “우리는 어떻게 보수화하는가” 하는 성찰로 이어진다. 도정 생활 중 기록된 메모에는 우리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현장의 의견과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즐겨 쓴다며 메모와 함께 내놓은 펜들이다. 무엇이 특별한가 살펴보니 여느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볼펜들이다. 만년필 등 좋은 필기구들은 잘 보관했다가 함께 일하는 공무원과 직원들을 격려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모두 나누어 주었다 한다. 누런 갱지와 궁합이 잘 맞는 필기구다.
이재명의 일기장
이재명 성남시장의 애장품은 일기장이다. 중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공장에 다녀야 했던 그의 팍팍한 삶과 그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기록된 일대기다. 공장에서 관리자에게 매일 이유 없는 구타를 당했던 절망부터, 교복 입은 또래를 마주쳐야 했던 상실감, 검정고시로 법대에 진학할 때의 희열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게 된 대학생 이재명의 분노까지 그의 삶과 감정이 온전히 담겨 있다. 이 시장은 부인인 김혜경씨에게 결혼 프러포즈를 하며 이 일기장을 선물했다. 감추고 싶은 그러나 지울 수 없는 자신의 전부를 내어준 것이다. 김씨는 이 일기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반지 대신 받은 일기장이다. 나에겐 반지보다 더 소중한 선물이다.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어린 시절과 삶을 느낄 수 있지 않나. 힘들게 살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더라. 사법고시 패스하고 변호사가 돼서 자신은 절망적인 삶을 탈출했을지언정 여전히 어렵게 사는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을 생각하는 그의 한결같은 마음이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나를 움직였다.”
남경필의 초상 사진
지난해 정치호 사진작가에게 ‘얼굴’을 주제로 사회 각계 인사의 맨얼굴을 찍는 작업에 모델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아 기꺼이 촬영에 응한 일이 있다. 얼마 뒤 전시회가 열린다기에 갤러리를 찾았더니,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 속에 평소 가깝게 지내온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얼굴도 보인다. 사진을 보며 그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사실 경기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정과 협치는 이미 연정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독일 정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노동개혁으로 독일을 살리고 선거에서는 패배했던 슈뢰더 전 총리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터다. 나는 그와 만난 자리에서 선거 패배에 대해 미련이 남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사익보다는 정당의 이익을, 정당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생각하며 행동한 것으로 족하다’고 그는 대답했다. 여러 생각 끝에 전시장을 나서며 기념으로 내 사진을 구입하려 문의했더니 이미 팔렸단다. 내 사진을 누가 샀을까 의아해하던 순간, 관계자는 구매자가 슈뢰더 전 총리라고 귀띔해주었다. 뒷날 그에게 선물받은 나의 이 사진은 존경하는 분의 뜻깊은 선물로 나의 애장품이 되었다.
문재인의 묵주반지 내 왼쪽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이 묵주반지는 내게 종교 이전에 어머니다. 20년 전 한창 변호사로 바쁠 때 어머니가 주셨다. “어려울 때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라.” “아무리 힘들어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돌아보지 마라.” 나의 좌우명인 이 말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묵주반지를 보며, 그 가르침을 새긴다.
안철수의 종이학 유리병 2012년 전국을 돌며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던 당시 선물받은 ‘종이학 유리병’이다. 이 유리병에는 안 후보의 모습을 직접 그린 그림과 “1000마리 학들의 소원과 7777개 밝게 빛나는 별빛처럼 모든 사람의 희망이 돼주세요”라는 작은 편지도 붙어 있다. 진심이 담긴 이 선물은 안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홍준표의 엄마 사진 내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애장품은 우리 엄마 사진이다. 내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가 두 가지인데, 첫째는 검사 시절 수많은 깡패와 권력자들을 구속시켰더니 가족까지 협박을 당하여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둘째는 우리 엄마처럼 가난하지만 착하고 순박한 보통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다.
심상정의 브로치 작년 봄날, 손편지 한 장을 받았다. 사무실을 나서야 한다는 재촉에도 브로치 한 쌍이 부록처럼 첨부된 그 편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은영님의 선물이다. 이 브로치는 그 사명감을 상기시켜주는 열쇠다.
유승민의 김오랑 중령 감사패 고 김오랑 중령은 1979년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 때 쿠데타군인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이 공수부대원들을 동원해 정 사령관을 체포하려 했고, 김 중령은 홀로 쿠데타군에 맞서 교전을 벌이다 6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이런 의로운 군인이 사후에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대 국회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으로서 국방부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일로 ‘김오랑 기념사업회’의 김준철 사무총장이 직접 국회로 찾아오셔서 준 감사패다.
안희정의 메모와 필기구 대학 시절부터 옥고를 거쳐 도정을 이끌기까지 수십년간 그의 생각을 담아온 다양한 형태의 메모들은 안희정의 성숙해가는 내면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거울과 같은 기록들이다. 도정 생활 중 기록된 메모에는 우리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현장의 의견과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즐겨 쓴다며 메모와 함께 내놓은 펜들이다. 무엇이 특별한가 살펴보니 여느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볼펜들이다.
이재명의 일기장 이재명 성남시장의 애장품은 일기장이다. 중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공장에 다녀야 했던 그의 팍팍한 삶과 그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기록된 일대기다. 공장에서 관리자에게 매일 이유 없는 구타를 당했던 절망부터, 교복 입은 또래를 마주쳐야 했던 상실감, 검정고시로 법대에 진학할 때의 희열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게 된 대학생 이재명의 분노까지 그의 삶과 감정이 온전히 담겨 있다.
남경필의 초상 사진 지난해 정치호 사진작가에게 ‘얼굴’을 주제로 사회 각계 인사의 맨얼굴을 찍는 작업에 모델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아 기꺼이 촬영에 응한 일이 있다. 전시장을 나서며 기념으로 내 사진을 구입하려 문의했더니 이미 팔렸단다. 내 사진을 누가 샀을까 의아해하던 순간, 관계자는 구매자가 슈뢰더 전 총리라고 귀띔해주었다. 뒷날 그에게 선물받은 나의 이 사진은 존경하는 분의 뜻깊은 선물로 나의 애장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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