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23일 오후 세월호 침몰해역인 진도 동거차도 앞다바를 찾아 헌화 하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기무사가 2014년 6월5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세월호 인양실효성 및 후속조치 제언’. 이철희 의원실 제공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세월호 참사 뒤 인양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희생자를 “수장”하자고 청와대에 건의한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됐다. 또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 이름을 부르라”는 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 제고 방안도 조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공개한 문건은 2014년 5~6월 기무사 요원 60여명으로 구성된 세월호 티에프(TF)가 유가족들을 사찰한 뒤 매일 작성한 것이다. 2014년 6월4일에 기무사가 박근혜 대통령 보고용으로 작성한 ‘중요 보고’를 보면, 인양에 반대하는 ‘네티즌 여론’이 93%라며 “국민적 반대 여론 및 제반 여건을 고려해볼 때 인양 실효성 의문”이라고 적었다. 기무사는 인양 전문가 인터뷰와 언론 기고를 통해 “인양의 비현실성”을 홍보해야 한다며 “실종자 가족들과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 인양 불필요 공감대(를) 확산”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기무사가 2014년 6월13일 작성한 ‘세월호 선체 인양 필요성 검토’ 문건. 이철희 의원실 제공
기무사는 “지난 6.7 비에이치(BH·청와대)에 ‘미 애리조나호 기념관과 같은 해상 추모공원 조성’을 제안한 것과 관련, 세계 각국의 수장문화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2014년 6월 초부터 기무사가 지속적으로 ‘인양 불가론’을 박 대통령에게 주장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미국과 중국, 인도 등의 ‘수장문화’를 거론한 뒤 “각국의 해상 추모공원 관련 내용을 지속 확인하겠음”이라고 적었다. 9일 뒤 일일 보고 문건에선 “실종자 수색 종료 시 전원 수습 여부와 관계없이 선체는 인양하지 않는 것으로 가족들과 협의가 필요”하다며 “인양 반대 여론을 확산시켜 ‘사고원인 분석을 위한 인양 필요성 제기’ 차단”을 주문했다. 세월호 인양이 사고원인 분석을 통한 정권 책임론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셈이다.
2014년 5월14일 기무사가 작성한 박근혜 대통령 피아이 제고방안 제언 문건. 이철희 의원실 제공.
세월호 참사 한 달쯤 뒤인 2014년 5월14일 ‘조치 요망사항’에서 기무사는 “브이아이피(VIP, 대통령)의 사과와 위로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지율이 하락”했다며 “감성에 호소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박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기무사는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연설을 하면서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호명한”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사례로 들며 “대국민 담화 시 감성적인 모습 시현”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이로부터 5일 뒤인 그해 5월19일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기무사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편지를 쓰라고 제언했으며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5살 권아무개양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라고 건의했다. “생존자 중 유일하게 고아가 된 권양에게 평생 장학금 지원 등 후원 시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모성애 이미지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기무사의 제안이었다.
이철희 의원은 “기무사가 국가적 재난을 지원한다며 보안·방첩 최전선에서 뛰어야 할 정예요원을 60명이나 빼내어 티에프를 만들고, 대통령 이미지 개선책이나 짜내도록 한 것은 위험한 탈선”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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