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 앞에 반경순 구만리 골프장 반대 대책위원장(맨 왼쪽)과 주민들이 서 있다. 구만리 주민들은 골프장 반대 운동을 하면서 다치고 전과자가 되었다. 주민들의 반대 투쟁으로 골프장 공사는 중단됐다. 홍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그 땅엔 계절이 흐르지 않는다. 벼, 잡곡, 콩, 옥수수, 고추, 배추, 사과, 과실수를 심겠다고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 놓은 의원들의 논과 밭을 5개월간 2526.1㎞ 다닌 끝에 만난 것은 오래도록 방치돼 무릎 높이만큼 자란 잡풀이거나, 홀로 피었다 수확되지 않아 말라비틀어진,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열매였다. 붉은 흙을 뚫고 여린 풀잎이 돋아나 봄볕과 여름날 소나기를 머금는, 계절이 흐르고 시간이 저무는 토지는 그들의 땅이 아니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내인 의사 정아무개씨는 배추와 고추를 심겠다고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2007년 4월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인천 서구 백석동 밭 1164㎡를 샀다. 2007년 3월 당시 건설교통부가 백석동 일대를 택지개발예정지구(한들지구)로 지정한다는 발표를 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땅을 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2018년 9월 10억5600만원에 매각했다. 한들지구는 공영 개발이 무산된 뒤 민영 개발 방식으로 추진돼 올해 11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분양을 앞두고 있다. 지난 2월 찾아간 백석동 밭엔 ‘경작 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본 사업은 도시개발법령 등에 따라 2017년 8월 실시계획인가 고시되어 보상 및 철거에 착수할 예정으로 경작 행위 등 모든 행위가 금지됩니다.” 정씨는 앞서 2004년 또 다른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인천 계양구 다남동 논밭 3528㎡를 사들였다가 농사를 짓지 않고 곧바로 소작농을 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토지의 투기적 거래가 성행할 우려가 있는 지역 및 땅값이 급격히 상승하거나 상승할 우려가 있는 지역에 땅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하는 구역으로, 일정 규모 이상을 매입하려면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인 정아무개씨가 2007년 매입했다가 11년 뒤 매각한 인천 서구 백석동 농지 일대에 ‘경작 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한들구역 도시개발사업이 추진 중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백석동 일대에 들어설 예정으로 올해 11월 분양을 앞두고 있다. 인천/김명진 기자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2005년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농지 등을 매입했다가 4년 뒤 본인이 이사장을 지낸 바 있는 경민학원에 매각했다. 밭과 대지 898㎡, 건물의 매맷값은 13억2700만원이었다. 홍 의원이 땅을 사들인 시점은 건설교통부가 해당 농지에서 직선거리로 3㎞ 떨어진 곳에 80만평 규모로 민락2지구 택지개발을 진행하던 때였다. 경민학원은 해당 용지에 경민커피문화원을 조성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28일 찾아간 경민커피문화원은 폐쇄된 상태였다. 간판이 없고, 문도 잠겨 있었으며 나무판자로 입구 자체가 막혀 있었다. 상당 기간 방치된 모습이었다.
유 의원은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샀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은 여러차례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겨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들 의원이 사들인 농지는 모두 인근에 새도시가 들어서면서 값이 뛰었다.
신도시, 산업단지, 레저시설이 대거 조성되는 땅은 대다수 값싼 농지나 임야다. 개발과 더불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과 인천을 합친 넓이에 해당하는 1549.4㎢의 농지가 사라졌다.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나 그 인근을 사들이고, 농부들은 개발을 진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땅을 강제 수용당한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농지를 찾아 떠나거나 농업을 포기했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올해 이른 봄까지 의원들의 농지를 찾아 전국을 다니며, 개발 과정으로 인해 삶이 뒤흔들린 12명의 농민을 만났다. 어떤 이는 소유하고도 방치하는 논과 밭을, 농민들은 각종 개발로 잃어가고 있었다.
지난 1일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소유했던 부지에 들어선 경민커피문화원(맨 아래 하얀 건물). 홍 의원이 자신이 이사장을 지낸 바 있는 경민학원에 부지를 매각했고 이 부지에 경민커피문화원이 들어섰다. 의정부/김명진 기자
■ 2018년 11월: 마을 주민 27명이 ‘별’을 달았다
“우리 마을 주민들 절반은 다 별을 달았어. 내가 처음 골프장 반대 운동을 시작한 때가 마흔일곱이었는데 그때는 원빈보다 더 잘생겼었어. 허허. 지금은 예순이 돼버렸네.”
지난해 11월29일부터 이틀간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에서 만난 반경순(60)씨는 농담을 던졌다. 주민들은 마을 공터에 둥그렇게 서서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65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서 27명이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벌금을 받은 전과자다. 구만리 골프장반대 대책위원장 반씨가 말한 ‘별’은 업무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생긴 전과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 십년이 지나도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아. 우리는 전과자야. 사면 복권이라고 하나? 나는 그런 걸 받고 싶어.” 노인회장 강원형(83)씨가 말했다.
‘원하레저’(옛 비큐공영)가 2006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일원에 1.53㎢(46만3096평) 규모의 골프장과 숙박시설 ‘마운트나인’ 개발을 추진하면서 이 마을엔 ‘별’을 단 주민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 최아무개씨가 공동 대표이사를 지낸 원하레저는 가시오가피 농장을 만들어서 고용을 창출하겠다며 농민들로부터 구만리 일대 농지와 임야를 대거 사들였다. 그러나 실상은 가시오가피 농장이 아닌 골프장이었다. 2006년 11월, 구만리 마을 옆에 골프장이 들어설 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홍천군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농업용수가 부족해 지하수를 끌어올려 농사를 짓는 상황에서 인근 골프장이 조성되면 잔디에 대량으로 뿌리는 농약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원하레저가 2008년 공사를 본격화하면서 주민들의 반대도 더 심해졌다. 업체 쪽은 집마다 다니면서 “이 서류에 도장만 찍어주면 1천만원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골프장 건설에 대한 주민동의서였다.
박덕흠 의원 아내 투자 법인 구만리 46만여평에 골프장 추진 주민들 반대에 고발·재산 가압류… 강남 살며 서귀포 과수원도 매입 박 의원 “아내가 하는 사업 다 몰라”
전과자 ‘별’을 단 마을 주민들 “골프장 저지하다 용역들과 대치 어르신들 구급차에 실려가고 10년 지나도 가슴에 응어리로 사면복권? 그런 걸 받고 싶어”
‘입목 축적 조사’ 부실 강원도청 2008년 골프장 가능케 토지용도 변경 2014년에 인허가 직권취소 결정 구만리 빼고 홍천 골프장 9곳 인허가 주민들은 삶의 터전 떠나 떠돌아
“한밤에 검정 봉투에 현찰 천만원을 넣어서 집집마다 찾아다녔지. 업체 직원들이. 동네 민심 쪼개 보려고. 한글 모르고 돈이 필요한 노인들한테 천만원씩 갖다 안겼어. 돈 준 사람들 얘기가, 동네 찬성 50%만 넘으면 골프장을 할 수 있는데 반경순이랑 반대론자들이 돈을 더 받고 싶어서 반대하는 거라고. 그러면서 돈을 뿌렸다는 거야. 두 사람만 더 찬성하면 이제 골프장 되니까 이 돈 받으라고. 삼십명은 그때 받았어. 시골 할머니들이 천만원을 언제 봤겠어? 장독대에 돈을 묻어놓고, 쌀독에 넣어두고, 밤에 자다가 문만 덜컥해도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고. 이 돈 때문에. 나중에는 업체가 돈 뿌렸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지. 여기 마을 공터에 주민 100명이 다 모여서, 주민이 다들 농사 못 짓게 생겼는데, 다들 반대하기로 했는데 왜 돈들 받으시냐고. 서로 얘기했어. 마을 공터에 모인 다음날 다섯명이 천만원씩을 동네에 내놨지. 한 다발 되더라고. 할머니들이 전전긍긍하다가 이거 내놓으니까 그렇게 편하다고. 우린 ‘이거 뇌물이다’라고 생각해서 업체와의 싸움에서 다 이기게 되는 줄 알았어. 근데 물어보니까 이건 죄가 안 된다는 거야, 변호사가. 골프장 반대대책위원장, 노인회장, 이장 그런 사람들한테 현찰 주는 건 죄가 형성되는데 일반 주민들한테 주는 건 법적으론 아무 죄가 안 된대.”
지난 3월22일 구만리 골프장 반대 대책위원장과 주민들이 골프장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 홍천/김명진 기자
1천만원을 받은 주민 가운데 12명은 원하레저 쪽에 돈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받지 않았다. 결국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돈을 공탁했다. 대다수 1920~30년생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2008년 공사가 시작되면서 주민들과의 대치가 시작됐다. “용역 애들이 100명 넘게 들어왔는데 대치하다가 주민 두 명이 119구급차에 실려 가고, 헬기에 한 분이 실려 가고 그랬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인데 용역 이삼십대 애들이 평지도 아니고 산에서 막고 그러니까 굴러떨어지고 의식 잃은 노인들도 나오고. 채증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현장에서 카메라도 뺏기고. 치료비는 동네 돈으로 다 물어줬어.”(반경순씨)
원하레저는 2008년 8월 사업자 쪽이 벌이는 지하수·지질 조사를 저지했다는 이유로 주민 43명을 업무방해죄로 한꺼번에 고발했다. 그해 11월에는 사업 방해를 하는 주민들 때문에 주야간 경비용역업체 970명의 경비용역대금 2억4007만5천원을 지출했다며, 주민 9명을 상대로 11억98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당한 주민들의 재산을 가압류했다. “주민들 업무방해로 받은 벌금은 콩을 공동 경작해서 내고, 강원도 시민단체에서도 도와주고. 업체가 11억9800만원 손해배상 소송 낸 것은 나중에 판사가 몇천만원으로 줄여서 그 벌금도 냈어요.”
강원도청은 2008년 6월 골프장을 조성할 수 있도록 토지 용도를 농림지역 및 관리지역에서 계획관리지역으로 변경하는 ‘홍천 군관리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이 과정에서 산지를 개발할 때 통과해야 할 ‘입목 축적 조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수목 밀도를 뜻하는 입목 축적 조사를 해야 산지 개발 행위 허가가 날 수 있는데, 조사 방법이 허술했다. 2009년 9월 국정감사에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입목 축적 조사에서 벌목 내용이 누락돼 있는 등 관계 공무원의 업무처리 소홀에 따른 징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09년 12월, 산림청이 재조사를 시작했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와 주민들의 반대로 갈등을 빚어온 구만리 골프장에 대해 강원도는 2014년 2월 인허가 직권 취소 결정을 내렸다. 8년간 처벌을 받으면서 맞선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업자인 원하레저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내용이 부실해 이 평가서를 토대로 내린 사업계획 승인도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박덕흠 의원이 2012년 충북 보은·옥천·영동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 가족이 운영하는 구만리 골프장 반대 운동이 힘을 얻은 이유도 작용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홍천에만 골프장 9곳이 강원도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으면서 농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잃어야 했다. 9곳 가운데 8곳이 영업 중이고, 나머지 1곳은 공사를 진행 중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은 골프장을 공공·문화체육시설로 규정해, 민간 건설업자들도 토지 소유자 80%의 동의를 받으면 나머지 소유자들의 집과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었다.
지난 3월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홍천/김명진 기자
“(홍천 북방면) 밭치리에 골프장 조성되면서 사람들이 그 마을에서 다 쫓겨났지. 읍내 가서 사는 사람도 있고. 병문(가명) 형은 밭치리를 떠나 경북 봉화로 갔다가 지금은 횡성 공근면으로 떠났다고 하던데. 그렇게 돌아다니면 돈 다 까먹지. 골프장 강제수용할 수 있는 근거가 소유자 동의 80%니까, 누구를 8로 만들고, 누구를 2로 만드느냐는 심리 싸움 같은 거거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 여기도 마을 분위기가 예전 같진 않아.”(반경순씨)
헌법재판소는 2011년 6월 골프장 조성을 위해 토지 강제수용권이 행사될 수 있도록 규정한 국토계획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공익적 사업이라고 볼 수 없는 골프장까지 무분별하게 수용할 수 없도록 위헌적인 행사를 막아선 것이다. 박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내가 하는 사업을 다 알지 못한다. 골프장 용지는 이미 팔려고 부동산에 내놨다고 들었다. 지나간 일인데 왜 자꾸 사람을 괴롭히느냐”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박 의원 아내 최아무개씨는 2008~2014년 벼와 잡곡, 묘목, 가시오가피 등을 재배하겠다고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원소리와 구만리 일대 농지 13만515㎡를 매입하면서 ‘농업 경영’ 목적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았다. 이 밖에 제주도 서귀포시 서홍동 과수원 3382㎡를 매입하면서 2002년에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았다. 2002년 발급 당시 농지취득자격증명에 적힌 최씨의 주소는 ‘서울 강남구’였다.
■ 2018년 12월: 충남 서산까지 밀려난 평택 농민들
지난 1일 오전 경기 평택시 고덕 신도시에서 택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평택 전역에서 신도시 등이 진행되면서 마을 100여곳이 사라졌다. 평택/김명진 기자
지난해 12월27일 만난 고주은(73)씨는 홀로 전기장판 위에 앉아 있었다. 추운 날이었지만 방에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았다. 38년간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해창3리에서 1천평의 논에 쌀농사를 지었다. 고덕면 일대에 13.4㎢ 면적의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그는 2014년 집을 수용당했다. 1억원 남짓의 보상비를 받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로 이사 왔다. “보상비를 받고 간신히 이걸 산 거야. 돈이 적으니까 그 근방으로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평택) 방축리, 신대리도 가고 꽤 댕겼지. 이미 다 오른 거야. 처음에는 여기가 무지하게 멀리 온 것 같아서, 아주 진짜 마음이 없었는데. 이제 뭐 후회해도 소용없고 꼼짝없이 이렇게 사는 거지.”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인근 농지는 값이 뛰어버렸다. 농사를 짓지 않는 외지인들이 마구 사들였다. 신도시가 조성될 때 땅을 수용당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반대 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다 같이 반대 운동을 했지만 한 사람, 두 사람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땅을 수용당하고 떠나갔다.
“처음엔 탱크 같았지. 시름시름 사람들 마음이 자꾸 변하는 거야. 이사 가겠다는 사람도 생기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슬금슬금 없어지고. 옆 동네 망가지는 것도 봤지. 보상비 문제 때문에 찔러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아닌가? 형제간인가? 살인이 났다고 하더라고. 보상비 서로 갖겠다고. 2013년도인가 그렇게 들었어. 아이고, 돈 때문에 동네가 전쟁터가 된 거야.”
그도 이삿짐을 쌌다. 그는 자신이 떠난 마지막 고향 마을이 가끔 꿈에 나타난다고 했다. “오늘 한 집, 내일 한 집 그렇게 떠나고 떠나보내면 말이야. 포클레인까지 들어와서 먼저 산 것(집)들을 헐잖아. 그 얼마나 보기 싫어? 개판이 되고. 빈집이 마을에 자꾸 보이니까 보기 싫더라고. 아주 보기 싫어. 밤에도 나가기 싫어. 점점 다른 동네 같고 서먹해지는 거야. 할 수 없이 이사 가자고 마음을 먹었어. 좀 늦게 나왔지, 다른 사람보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도 꿈을 꾸지. 거기서 사람들과 놀던 꿈. 여기선, 여기에서 일어난 일들은 꿈에 나오지 않아.”
평택 신도시 조성으로 고향 등져 처음엔 반대하던 동네주민들 한사람씩 변하더니 ‘돈 전쟁터’로 이주딱지 받았지만 생활고에 팔아 멀리 이사 뒤 “밤마다 고향마을 꿈”
미군기지에 농토 수용 ‘원정 농사’ 보상금으로 땅값 싼 서산에 농지 사 2시간30분씩 운전해 10년간 오가 “이자도 갚기 힘들어 재작년 포기”
수용 과정에서 경제적 양극화 대농지 보유자는 부자 되는 반면 땅값 올라 농지 살 수 없는 농민 타지로 떠나 살다 결국 빈민 전락
그는 집을 수용당하고서 이주자 택지를 받았다. 고덕 신도시가 조성되면 토지를 일반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일종의 권리로 ‘딱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논과 밭을 수용당한 뒤 마을을 떠난 주민 가운데 일부는 생활고 때문에 ‘딱지’를 헐값에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고씨도 6천만원에 이주자 택지 권리를 투자자에게 넘겼다. 이후 위치가 좋은 이주자 택지의 경우 딱지가 8억원대까지 치솟았다. “지금 생각하면 억울해 죽지. 이렇게 오를 줄 알았으면 갖고 있었을 텐데 마을 사람들이 같이 팔자고 해서. 촌놈이 6천만원 준다니까, 그 돈이 좀 많아? 나중에 마을 사람들끼리 쓸데없이 싸움이 붙었어. 너 때문에 팔았다고 서로 탓하면서.”
그는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가끔 새로 이사 온 마을의 회관에도 가지만 그는 여전히 이곳이 낯설다. 이사 온 첫해엔 38년간 살던 해창리 마을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젠 서로 뿔뿔이 흩어져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사 오고 첫해에 서너명은 자주 만나서 술 한잔씩 먹었지. 이제는 전화를 안 하는데 나만 자꾸 할 수가 없으니까. 또 돈이 들잖아. 만나면 오륙만원씩.”
그는 여전히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고, 말하면 뭐해. 거기선 좋았지. 여름에 논에서 고생해도 겨울에 놀고 서로 술도 한잔씩 하고. 작물은 말이야. 주인 발소리 듣고 자란다고, 매일 돌아봐야 잘 자란다고 하잖아. 매일 나가서 내 땅을 돌고 들어오고. 그게 얼마나 마음 편하고 좋아? 저기에 내 땅이 있다는 생각.”
그는 고덕면에서 살던 시절을 생각하며 잠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전깃불도 켜지 않은 채 전기장판 위에 앉아 하루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가 안 간다고, 하루가. 날이나 따뜻하면 다니겠는데 집에만 이렇게 처박혀 있는 거지.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어. 자전거도 타고.”
지난 1일 경기 평택시 서정동 일대에 자리한 부동산 상가들. 고덕 신도시 분양권과 이주자 택지 권리 등이 매매된다. 평택/김명진 기자
평택은 고덕 신도시를 비롯해 미군기지 이전, 민간개발 방식의 택지 개발이 대거 이어지면서 농촌이 사라져갔다. 평택문화원은 2014년부터 없어진 농촌 마을 100여개를 대상으로 ‘평택의 사라져가는 마을’ 보고서를 발간해오고 있다. 사라지는 마을 주민들의 구술사와 현장 탐방을 담은 책이다. 토지를 수용당하는 과정에서 고씨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넓은 농지를 보유한 농민들의 경우 보상비를 많이 받아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기도 한다. 한마을에 어울려 살 때는 체감하기 어려웠던 경제적 양극화가 벌어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토지 수용 전문’ 변호사들이 마을에 들어와 ‘보상금을 많이 받기 위한 필수 지식’을 농민들에게 강의하거나 일부 농민은 도시민들처럼 땅 투자에 뛰어든다. 고덕 신도시로 토지를 수용당할 때 농민대책위원회 사무장을 맡았던 이근덕씨를 만났다. “수용되고 몇년이 지나니까 농민 가운데 일부가 빈민으로 전락하시는 게 눈에 보여요. 자기 집을 소유하셨던 분들이 전세로, 다시 월세로. 농촌하고 도시는 삶이 다르잖아요. 도시는 그야말로 돈이 없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니까요. 땅이 수용되지 않았으면 마을회관에서 밥 먹고 어울려 사셨을 텐데 다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곳에 혼자 들어앉으니까 외롭고 힘들어서 그런지, 치매 오신 분들도 많이 생겼고요.”
농사를 짓고 싶은 농민들은 더 값싼 땅을 찾아 떠난다. 평택 팽성읍 대추리에 살던 김영식씨는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땅을 수용당한 뒤 받은 보상금으로 2007년 충남 서산 농지를 샀다. 화물 트럭을 몰고 하루 왕복 2시간30분을 운전해 쌀농사를 지으러 서산으로 다녔다. “재작년에 그만뒀어요. 그냥 뭐 힘들게 일만 한 거지. 간척지라 땅에 하얗게 염분이 올라와서 농사가 잘 안 되었어요. 평택에서 땅을 수용당한 사람들이 꽤 서산에 갔거든요. 지금도 농사짓는 사람이 일부 남아 있고요. 몇년 하다가 나이가 70대가 되니까 운전하기가 버겁고 농사지어봐야 쌀값이 싸잖아요. 땅 사면서 빌린 이자 갚기도 힘들었어요.”
도심의 특정 지역이 주목을 받으면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기존 거주자 또는 임차인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인천과 경기도 농민들은 개발되는 과정에서 비싼 농지 값을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는 농촌형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었다.
■ 2019년 1월: 밀양나노융합국가산업단지 조성 중인 밀양
지난 1월22~23일 찾아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의 밭은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였다. 잡풀이 나무처럼 우거져 걸을 때마다 옷에 도깨비풀이 엉겨 붙었다. 신공항 유치 바람이 불면서 땅값이 뛴 밀양은 2016년 사업이 전면 백지화되며 주춤해졌다. 2017년 7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산업단지 계획승인을 받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조성 중인 밀양나노융합국가산업단지는 현재 56.6%의 토지 보상이 완료됐다. 2021년 12월 국가산단 조성이 완료된다.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땅이 수용돼 보상비를 받은 농민들이 다른 농지를 사는 ‘대토’를 하는데 이런 작용으로 농지 값이 다시 뛰어오른다.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인 감천리 마을도 주민들 간에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분위기는 어두워 보였다. 산업단지 조성을 찬성한 농민 집에 들어갔다가 욕만 한 바가지 듣고 쫓겨났다. 도시와 달리 시골길을 아무리 걸어도 농한기에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드넓은 논 사이에 드문드문 자리한 집들을 지나 소를 키우는 농민 석아무개(62)씨 집을 찾아 걸었다. 석씨는 옆에 남편이 함께한 자리에서 사과를 깎아서 내놓았다.
“여기 논을 수용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한평당 38만~42만원 준다네. 그 돈을 갖고 다른 데서 살 수가 없지. 밥도 못 먹겠고 신경성 식도염이 올라오는 거야. 이사가야 하는데, 어디를 가긴 가야 하는데. 집에 모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고층 아파트는 못 가고 단독주택으로 가려고 하면 비싸고. 나도 산업단지 찬성해. 청년들 일자리도 늘겠지만, 우리가 살아갈라 카이 농사지을 데가 없는 거야. 안 돼, 이건.”
석씨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틀간 밀양 부동산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느낀 농지 값은 저렴하지 않았다. 길이 붙어 있지 않아 개발 행위가 어려운 ‘맹지’에다 농사짓기에 척박한 땅도 평당 50만원을 넘었다. 석씨가 막막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석씨도 토지 보상가를 놓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이의 신청을 생각해보았지만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소 30마리 키우는데 이제 팔아야겠지. 한목에 내버리면 싸게 쳐줄 테니까 한마리씩, 또 한마리씩. 다른 축사로 이사 가려고 해도 문제가 뭐냐면, 축사는 허가가 잘 안 나요. 허가를 받아도 주변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민원이 들어가니까. 이미 축사를 해온 다른 자리에 들어가려니까, 우리는 축사로 먹고사는데 다른 축사 자리를 알아보니 얄궂은 것도 7억원씩 하니까. 그럼 나는 축사도 접어야 해. 우리 동네 주민들이 순진해. 처음에는 관광버스를 타 갖고 청와대에 가자, 이 이야기가 나왔어. 작년 여름에. 근데 아무것도 못 했어요.”
국가산단 조성되는 밀양 부북면 주민들 찬반 나뉘어 분위기 삭막 보상금 적어 인근 농지도 못 사 “어디서 생계 유지하고 살아야 하나”
신도시 기습 발표된 인천 계양 투자자들이 농지 절반 이상 보유 농사 포기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 “농기계·시설재배 대출금 상환 막막” 일부는 전라도까지 내려갈 생각도
그는 토지를 강제수용당하면서 물어야 할 양도세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우리 땅과 집을 수용하면 양도세를 안 낸다고 해놓고는 이제 와서 그마저도 세금 낸다고 하는 거야. 팔고 싶지도 않은 이 땅을 강제수용당하면서 양도세까지 물게 생겼다고요.”
마을에는 ‘경작 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봄철 농사를 준비하고 있어야 할 2월에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고 석씨는 한탄했다. “땅 수용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 난 다음에 신경을 썼더니 각막이 갈기갈기 찢어졌어요. 하루는 갑자기 머리가 깨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거예요. 눈이 안 보여. 병원에서 신경성 스트레스라고 하더라고. 밀양에선 치료가 안 된다고 해서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3개월 치료를 받았어요. 축사를 턱 하고 (앉아서) 보면, 허전하고 이상한 마음이 들고 이사 가려고 하니까….” 석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2019년 2월: 제3기 신도시 발표에 농기계 대출금 걱정
인천 계양구 동양동 일대에 세워질 예정인 ‘계양 신도시’. 농지가 강제 수용될 위기에 처한 농민들은 벌써부터 시름에 잠겨 있다. 인천/김명진 기자
정부는 지난해 12월19일 인천 계양구, 경기도 남양주와 하남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천 계양구 동양동, 귤현동, 상야동 등에 조성되는 계양 신도시는 2021년부터 주택 공급을 시작한다.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해 발표한 주택 공급 계획에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지난 2월2일 만난 동양동 영농회장 정운학(67)씨는 다른 농민들과 대책회의를 하고 오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신도시가 되리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하늘 보고 땅만 보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농사 외에는 다른 생각을 못 했어요. 국토부가 기습적으로 신도시 발표하면 농민들은 이렇게 불이익을 당해요. 정부는 한편으로 귀농, 귀촌을 장려한다고 지원금을 준다는데 정반대에서는 이렇게 쫓겨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요. 과연 어디로 가서 남은 생애를,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야 할지 길이 막막해.”
정씨는 계양 신도시로 예정된 농지를 투자자들이 절반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지 않는) 관외 지주분들이 원주민보다 훨씬 많아요. 많게는 70%까지. 먼 미래를 내다보고 땅값이 오르리라고 생각하고 땅에 돈을 묻어둔 사람들이죠.” 이제 땅이 수용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 대출금으로 마련한 농기계 처리를 두고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트랙터, 콤바인, 건조기, 이앙기 4대 갖고 있는데 다 농협에서 대출받아 산 거예요. 3억인가 주고 샀어요. 이거 팔아도 중고차처럼 절반도 못 받을 거예요. 고물값이죠. 다른 농민들 상황도 다 비슷해요. 저는 쌀농사를 짓는데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 재배는 투자 비용이 더 많이 들어요. 그분들 만나면 다들 대책이 없대요.”
일부 농민들은 벌써 인천을 떠나 전라도 쪽으로 농지를 알아보고 있다. “수도권 근방에 이제 농지가 없어서 갈 데가 없어요. 말도 못 하게 주변 땅값이 들썩대서. 지금 다른 지방, 전라도, 경상도로 내려가야 하는데 고향을 등지고 정착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농민은 어떤 일을 겪어도 신문에, 방송에 나지 않아. 이게 힘없는 사람들의 현실이죠. 이 나이 먹고 어디 가서, 객지 가서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농사는 여기서 끝이 난 거예요. 이게 세상살이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들(농지 투자자들) 생각이 맞았던 거지. 살다 보면 언젠가 땅값은 오른다는 거.”
세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만난 농민 12명의 이야기는 농사를 짓지 않는 가짜 농부들이 왜 농지를 매입해선 안 되는지를 절실히 드러냈다. “땅이 수용되는 게 아니라 삶이 수용되는 것 같았다.” 자기 땅을 수용당한 평택 농민의 말이다.
인구가 감소하고 산업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농지 또한 신도시 등의 다른 용도로 전용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수십년 살아온 농촌 마을을 떠나, 이방인으로 새 삶을 개척해내야 하는 농민에 대한 국가의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비농업인들이 투자 목적으로 개발 예정지 주변 땅을 사들이느라 값이 덩달아 상승한 농지를 농민들은 손에 쥘 수 없었다. 허위로 작성된 농업경영계획서로 손쉽게 취득한 봄날의 밭과 논은 잎이 돋지 않는 잿빛이었다.
홍천 평택 밀양 인천/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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