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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한국에서는 왜 SF문학이 인기가 없었을까

등록 2018-01-14 16:21수정 2018-01-14 19:28

[박상준의 과거창]
현대사 질곡 속 현실도피로 인식
1965년에야 첫 장편소설 등장
21세기 들어 창작·잡지 등 활발
한국 최초의 창작 에스에프(SF) 장편으로 여겨졌다가 일본 작품의 번안임이 드러난 김복순의 <화성마>.
한국 최초의 창작 에스에프(SF) 장편으로 여겨졌다가 일본 작품의 번안임이 드러난 김복순의 <화성마>.

지난해 여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제75차 세계에스에프(SF)대회에 다녀왔다. 1939년부터 시작돼 2차 세계대전 당시 몇 년 쉰 것을 제외하면 이제껏 매년 개최된 유서 깊은 행사지만 한국은 작년이 첫 참가였다. 대회장에 부스를 차려놓고 한국의 에스에프 문학과 영화를 세계의 에스에프 팬들에게 소개하고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우리나라에 에스에프 문학이 들어온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쥘 베른의 <해저2만리>가 ‘해저여행기담’이라는 제목으로 <태극학보>에 일부 번역, 연재된 것을 시초로 꼽는데 그게 111년 전인 1907년의 일이다. <태극학보>는 일본 도쿄의 한인 유학생들이 펴내던 잡지였다. 한편 쥘 베른과 함께 세계 에스에프 문학의 시조로 꼽히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대표작 <타임머신>도 ‘80만년 후의 사회’라는 제목으로 1926년 잡지 <별건곤>에 일부 연재된 바 있다. 또 세계 최초로 ‘로봇’이라는 말을 등장시킨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도 ‘인조노동자’로 1925년에 잡지 <개벽>에 소개되었다. 이와 같은 예들은 당시의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도 크게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뒤로 동아시아 세 나라의 에스에프 문화 발전 양상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서양의 에스에프라는 틀을 일본 고유의 정서와 융합시켜 독자적인 전통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본 에스에프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쳐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의 에스에프는 21세기 들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79년에 창간된 중국의 <과환세계>(科幻世界)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올리고 있는 에스에프 잡지이다. 한창때는 30만부까지도 갔고, 지금도 13만부 정도를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 에스에프 작가 류츠신이 장편 <삼체>로 2015년에 휴고상을 수상한 것이 세계 에스에프 문학계의 큰 사건이었다. 휴고상은 영어문화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에스에프 문학상인데, 아시아 작품이 영어로 번역된 뒤 이 상을 받은 것은 최초의 일이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휴가 때 탐독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한국 최초의 성인용 창작 장편 에스에프(SF)로 추정되는 문윤성의 <완전사회>.
한국 최초의 성인용 창작 장편 에스에프(SF)로 추정되는 문윤성의 <완전사회>.

한국의 에스에프 문학은 위 두 나라에 비하면 상황이 좋지 못했다. 창작 활동이 얼마나 왕성했는가로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한국은 번역이나 번안에 비해 창작 에스에프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최초의 에스에프가 어떤 작품인지도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단편소설의 경우 김동인이 1929년에 발표한 ‘케이(K)박사의 연구’가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이른 예이며, 장편은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사례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1954년에 출판된 김복순의 <화성마>는 한때 창작물로 여겨졌으나 일본 작가 운노 주자의 작품을 번안한 것임이 몇 년 전에 드러났고, 이봉권이 1954년에 낸 <방전탑의 비밀>은 ‘과학탐정소설’을 표방했지만 내용이 에스에프와는 거리가 멀다. 어린이·청소년 에스에프 문학 분야에서는 한낙원이 장편 <금성탐험대> 등을 50년대부터 발표한 기록이 있다. 현재 한국 최초의 성인용 창작 장편 에스에프 소설로 언급되는 것은 1965년 <주간한국> 창간 기념 추리소설 공모전의 당선작인 문윤성의 <완전사회>다.

왜 한국에서는 에스에프 문학이 인기가 없었을까? 오랫동안 출판 시장에서 에스에프의 비중이 보잘것없다 보니 에스에프 작가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필 환경을 누리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창작 활동은 양적인 면은 물론이고 질적으로도 크게 주목할 만한 경우가 드물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여러 진단이 회자되곤 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진 현대사의 질곡이 에스에프를 현실도피적인 분야로 인식하게 하여 주류문학계나 독자들의 진지한 관심을 끌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리말로 소개된 최초의 에스에프(SF) <해저여행기담>. 원작은 쥘 베른의 <해저2만리>.
우리말로 소개된 최초의 에스에프(SF) <해저여행기담>. 원작은 쥘 베른의 <해저2만리>.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한국 에스에프 문학의 전망은 점점 밝아지고 있다. 금년 여름에는 미국에서 ‘현대한국에스에프선집'이 영문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김보영이나 듀나처럼 이미 작품 일부가 해외에 번역 소개된 에스에프 작가들도 있다. 또 환상문학 웹진인 ‘거울’은 중국의 에스에프 집단인 ‘미래사무관리국’과 단편을 정기적으로 교환, 번역하여 소개하는 ‘한-중 에스에프 교류 프로젝트’를 작년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는데, 한국 작품을 읽는 중국 독자의 온라인 조회수가 수십만에 달한다고 한다. 한편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운 에스에프문학상이 속속 생겨나면서 신인 작가의 등단 기회가 많아졌으며 새로운 에스에프 잡지 창간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있다. 얼마 전에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가 출범했다. 첨단 과학기술이 점점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사회 윤리나 미래 전망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에 한국의 에스에프 문학계가 뒤늦게나마 기지개를 켜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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