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출판된 <위인 아인스타인>에 실린 아인슈타인 초상 사진. 서울SF아카이브 제공
1922년 11월10일, 아인슈타인은 홍콩을 떠나 상하이로 가던 배에서 전보를 받았다. 스웨덴 과학아카데미가 그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그는 초청을 받아 40일 정도 체류할 예정으로 일본을 향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 하면 누구나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지만, 그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광전효과와 광양자 가설이라는 연구 업적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이 기존 물리학을 뛰어넘는 놀라운 내용임은 분명했지만 너무나 난해하고 찬반양론도 많아 당시의 세계 물리학계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이미 세계적인 유명 인사의 반열에 올라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의 조선에서도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되는 등 그 명성이 알려진 상태였다.
그가 일본을 방문하기 반년쯤 전인 1922년 4월에는 경성(서울)에서 <偉人(위인) 아인스타인>이라는 90쪽 남짓한 소책자가 출판되었다. 발행인은 당시 연희전문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던 선교사 백아덕(아서 베커). 이 책은 해방 이전까지 우리말로 출판된 아인슈타인 관련서로는 유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부분에는 ‘인류가 많다 하나 재주 뛰어난 사람이 흔할쏘냐 아마도 아인스타인이 뉴턴 후의 일인인가’라는 내용이 포함된 찬사가 실려 있다.
아인슈타인 찬사 -1922년 <위인 아인쉬타인> 중에서. 서울SF아카이브 제공
그런데 한국 과학계의 원로였던 화학자 안동혁(1906~2004)은 생전에 흥미로운 증언을 남긴 바 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일본 방문을 마친 뒤 기차로 서울을 통과해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베를린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2001년 1월 인터뷰) 이게 사실이라면 아인슈타인은 비공식적으로나마 한반도를 방문했던 셈이 된다. 일본 쪽 기록에는 출국할 때 다시 일본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을 향했으며 예루살렘과 스페인을 거쳐 독일로 돌아갔다는 정도만 확인되며, 그밖에 어떤 기착지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다.
안동혁은 1940년대 후반에 미국 프린스턴대학에 연수차 1년 반 정도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한동네에 살면서 아인슈타인을 몇 차례 보았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기간에 서울대 의대 교수이던 윤일선(1896~1987)이 프린스턴을 방문하여 아인슈타인과 면담을 한 기록은 있다. 한국의 1세대 의학자이자 병리학자로 추앙받는 윤일선은 1956년에 서울대 총장이 되었으며, 의학을 비롯한 과학기술계 발전에 오랫동안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1년에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이다.
아인슈타인 추천―1932년 11월호 <동광> 중에서. 서울SF아카이브 제공
사실 1922년에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교육협회에서 그를 초청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생기기 전이어서 한반도 안에 청년 지식인들이 진학할 수 있는 대학 자체가 없었는데, 조선교육협회에서 민립대학을 세우자는 캠페인 차원에서 아인슈타인 초청을 시도했다는 얘기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에 맞춰 동아일보가 자세한 동정 기사 등을 연일 보도하며 관심을 고조시켰지만 결국 초청은 성사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 생애 유일의 아시아 여행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한반도를 지나갔다는 안동혁의 증언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당시의 귀환 경로를 확인해봐야겠지만, 아무리 비공식적이라 해도 일단 조선 땅에 발을 디뎠다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동혁은 학생 시절부터 아인슈타인의 책을 읽었다고 했는데, 아마 그 영향에다 훗날 프린스턴에서 직접 접했던 아인슈타인의 모습 등이 겹쳐서 한반도를 지나갔다는 가공의 기억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
1920년대 이후에도 이 땅에서 아인슈타인은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같다. 1932년 11월호 <동광>지에 흥미로운 예가 있다. ‘愛人(애인)에게 보내는 冊子(책자)’라는 코너에서 ‘사랑하는 사람 또는 친한 친구에게 권하고 싶은’ 도서들을 짤막하게 소개하는데, 그중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한 책이 있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추천자는 영국의 천문학자인 에딩턴의 ‘공간, 시간, 인력’이나 아인슈타인의 ‘일반 및 특수상대성 이론’을 읽으라고 하면서 ‘조선 사람은 과학을 등한히 하는데 시대에 낙오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를 붙여 놓았다. 그런데 ‘고등수학이나 대수학에 소양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으니, 과연 독자가 얼마나 있었을까.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