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지구 공전 궤도에 올랐다. 미국인들은 ‘스푸트니크 쇼크’로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스푸트니크가 불과 96분여 만에 한 바퀴씩 지구를 돌며 20메가헤르츠(㎒)와 40메가헤르츠 주파수로 발신하는 신호음을 들을 수 있었다. 머리 위로 반복해서 지나가는 소련의 우주 물체에 미국인들은 커다란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에 발사된 스푸트니크 2호는 1호보다 훨씬 컸으며 최초의 ‘우주견’ 라이카까지 타고 있었다. 과학기술의 모든 분야에서 소련에 앞섰다고 자신하던 미국은 충격을 받아 엄청난 자본과 노력을 우주개발에 퍼붓기 시작했다. 이러한 스푸트니크 쇼크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건 당연한 일이다.
1958년 7월호로 창간된 대중과학잡지 <과학세계>를 보면 스푸트니크 쇼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권두의 창간사와 축사 등에 바로 이어서 특집 기사로 제목에 ‘인공위성’이 들어간 글이 5개나 줄줄이 이어진다. 다른 관련 기사까지 합치면 잡지 전체에서 ‘우주’가 차지하는 분량은 40%에 육박한다.
스푸트니크 쇼크가 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문화의 핵심 키워드는 원자력이었다. 획기적인 에너지원으로 주목을 받은 원자력은 핵폭탄의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개발해야만 하는 분야로 인식되어 정부 차원에서 홍보 캠페인이 진행될 정도였다. 그런 한편으로 우주개발 역시 진작부터 주목을 받으며 잡지 등에서 심심찮게 다루고 있었는데, 스푸트니크를 계기로 완전히 과학문화의 대표 분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과는 달리 우주개발은 10대 소년이 혼자서 소형 로켓을 만들어 발사 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리곤 할 만큼 ‘시민과학’적인 측면도 있었다.
<과학세계>는 창간호를 잇는 통권 2호를 8, 9월 합본호로 내는 등 순탄치 않은 행보를 보이면서도 꾸준히 간행되었다. 1959년 1, 2월 합본호에서는 학생과학상의 제정과 과학학생장학회의 창설을 알리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해 가을 이후로는 관련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쉽게도 사라진 듯하다. 그 뒤로 1964년에 새로운 과학잡지인 <과학세기>가 선보이기 전까지는 한국 대중과학잡지의 공백기가 아니었나 짐작된다. 1961년 전후로 <과학과 생활>이라는 간행물이 몇 번 나오기는 했지만 이는 과학교사 단체의 기관지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당시 <과학세계>의 편집주간을 맡은 유창균이라는 인물에 궁금증이 인다. 그는 앞서 1954년 5월에 창간된 <과학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서도 주간을 맡았던 사람이다. <과학 다이제스트>는 한국전쟁 이후로 처음 창간된 대중과학 잡지로 여겨지는데, 주 대상은 청소년이었으나 1년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과학 다이제스트>와 <과학세계>는 발행인도 다르고 회사도 다르지만 편집주간은 유창균이라는 동일한 인물이며 그 때문인지 내용 구성이나 편집 체계가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어쩌면 이 사람은 <과학 다이제스트>가 일찍 폐간되고서 아쉬움을 달래다가 스푸트니크 쇼크에 힘입어 다시 <과학세계>라는 새로운 과학잡지의 창간을 성사시킨 숨은 산파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닐까? 아쉽게도 이 인물에 대한 추가적인 자료들은 확인할 길이 없기에 궁금증으로만 덮어둘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푸트니크 쇼크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일간지 최초로 과학전문기자가 탄생하는 등 과학문화의 보급과 확산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었던 것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1954년 4월 일간신문에 실린 ‘과학 다이제스트’창간호 광고.
1950년대의 대표적인 과학잡지인 <과학세계>와 <과학 다이제스트>를 보면 당시의 교양과학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어 흥미롭다. 화성의 자연환경을 지질, 대기, 기후 등으로 꼼꼼하게 살피면서 적어도 지의류 같은 하등생물은 살고 있으리라는 추측을 강하게 펴는가 하면, 사실상 오늘날과 같은 자율주행 자동차 시스템도 꽤 구체적으로 전망해놓았다. 반면에 서기 2000년이 되면 빛의 속도로 날 수 있는 우주선이 나올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주의도 보인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에스에프(SF) 소설이나 에스에프 만화가 실려 있다는 점이다. 이 잡지들의 편집인은 과학이 한계를 넘어 꾸준히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