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여름 어느 날, 수천의 군중들이 경성(서울)의 소공동 조선호텔 맞은편에 있는 공회당으로 몰려들었다.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길거리에 서성이는 사람도 많았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스피커에서 심한 잡음과 함께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송은 15분 정도 지속했으며 내용을 잘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음질이 형편없었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연결된 전선도 없이 텅 빈 허공을 건너 사람의 목소리가 전해진 것이다. 이 일은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전파 신호의 발신지는 소공동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수표동의 조선일보사. 그리고 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은 민족의 원로로 존경받던 75세의 월남 이상재 선생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악질 친일파인 송병준에서 상해 임시정부 교통총장을 지낸 신석우로 사주가 바뀐 참이었는데, 경영이 어려워진 신문사를 인수한 신석우는 이상재 선생을 사장으로 초빙한 뒤 언론사업의 홍보를 위해 라디오 방송이라는 이벤트를 기획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주파수를 썼고 송신 출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현재 확인되지 않으며 다만 오사카의 한 전기 상회에서 장비를 조달했다고만 알려져 있다.
상업 라디오 방송은 1920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했다. 위의 이벤트가 열릴 당시는 아직 일본에서도 라디오 방송국이 생기기 전이었다. NHK 라디오 방송국은 1925년에 첫선을 보였고, 한반도에는 1927년에야 경성방송국이 등장했다. JOAK(도쿄), JOBK(오사카), JOCK(나고야)에 이어 네 번째로 호출부호 JODK가 할당된 경성방송국은 처음에 NHK 소속이었다가 나중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방송협회가 설립되면서 독립했다. 평양, 부산, 청진, 이리 등 전국 각지에 속속 지역방송국이 생긴 것은 1930년대에 들어선 다음의 일이다.
1942년에는 이른바 ‘단파방송 밀청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수백 명이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 경성방송국의 한국인 직원들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숱한 사람들이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중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방송을 몰래 들었던 것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사회 분위기는 전시 군사체제의 경직성이 날로 더해갔고 라디오 방송 역시 일방적인 선전과 선동 일색으로 바뀌었다. 국제 정세의 정확한 정보 입수를 위해서는 해외의 라디오 방송을 직접 청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라디오가 큰 역할을 한 것은 한국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 피난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밤마다 몰래 라디오를 들으며 전황이 어떤지를 판단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던 언론인 김을한은 당시 재미있는 일화를 남겼는데, 한여름 밤에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모깃소리만 하게 라디오를 켜서 듣다가 한번은 일본의 야구경기 방송이 잡혀서 흥미진진하게 청취했다는 것이다. 밖에서는 인민군 순찰병이 쏘는 공포 소리가 울리는 와중에 바다 건너 스포츠 중계방송을 듣는 스릴은 너무나 짜릿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21세기가 되고도 한참이 지난 지금 대중매체로서 라디오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런데도 가장 긴 생명력을 지닐 것은 분명하다. 정보 단말기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전파 신호를 잡아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게 변환해주는 최소한의 기능만 있는 광석라디오는 부피도 작고 전파 그 자체의 전력으로 작동하기에 별도의 전원도 필요하지 않다. 주파수 특성에 따라서는 바다를 넘어 건너편 대륙의 방송을 들을 수도 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라디오는 재난 상황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통신 수단이 된다. 스마트폰처럼 기지국이 필요하지도 않고, 통신위성마저 불통이라 해도 라디오는 장거리 도달이 가능한 단파 주파수를 이용하면 사실상 지구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다. 이런 특징에 주목하여 전파 통신의 초창기부터 100년이 넘도록 순수한 취미로 라디오 통신을 즐겨 온 사람들이 바로 아마추어무선사(HAM)이다. 월면 반사통신이나 TV 화상통신 같은 새로운 기술적 도전도 이들에 의해 끊임없이 시도되었고 나중에 산업의 영역에 적용되었다.
이렇듯 라디오 문화는 사회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 모두 독특한 역사성을 지닌 현대문명의 대표적인 키워드이다. 심지어 우주과학에서 외계의 지적 존재를 찾는 과정에서도 가장 주요한 방법론으로 채택되고 있다. 라디오 방송과 전파통신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문화인류학이야말로 현대 인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신선한 접근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