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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달리는 사이보그 휠체어’ 장애인과 공학자 힘 합쳤다

등록 2019-05-18 09:24수정 2019-05-18 10:05

[토요판] 르포
사이배슬론 휠체어 경기 참관기

최첨단 보조기기 착용한 장애인이
일상적 작업 수행하는 미션 겨루는
‘사이배슬론’, 내년 2회 대회 예정
일 가와사키서 휠체어 경기 열려

엔지니어와 장애인 한팀 돼 참가
첨단기술 이용 적극적 모습 주목
대회장 ‘배리어프리’로 설계돼
장애인 관중도 쉽게 즐길 수 있어
지난 5월5일 일본 가와사키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에서 계단을 오르고 있는 일본 게이오대학 소속팀의 노지마 히로시. 일본 팀의 전동 휠체어 바퀴는 평지를 달릴 땐 접혀 있다가 울퉁불퉁한 길이나 계단을 오를 땐 펴진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지난 5월5일 일본 가와사키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에서 계단을 오르고 있는 일본 게이오대학 소속팀의 노지마 히로시. 일본 팀의 전동 휠체어 바퀴는 평지를 달릴 땐 접혀 있다가 울퉁불퉁한 길이나 계단을 오를 땐 펴진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 공학과 기술은 장애인의 일상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장애인들이 공학자들과 힘을 합쳐 만들어낸 전동 휠체어를 타고 여러 미션을 수행하는 경기가 일본에서 열렸다. 카이스트 대학원생인 강미량·신희선씨가 일본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기의 현장을 지켜본 뒤 참관기를 보내왔다.

지난 5일 오전 11시20분, 일본 도쿄 인근 가와사키의 컬츠경기장. 두 대의 전동 휠체어가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사회자가 ‘시작’을 외치자 휠체어가 모터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장애물을 피하고, 울퉁불퉁한 표면을 달리던 휠체어가 계단 앞에 섰을 때, 밑에 있던 큰 보조 바퀴가 드르륵 하고 휠체어 전면으로 나왔다. 휠체어를 탄 파일럿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기 시작했다. 뒤로 젖힌 파일럿의 상체가 덜컹거렸다. 계단을 다 오르자,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바라보던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사이배슬론 시리즈’ 대회의 전동 휠체어 종목 예선 1차전 경기가 시작됐다.

장애인이 개발과정의 중심

지난 5~6일 일본 가와사키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의 포스터.
지난 5~6일 일본 가와사키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의 포스터.
‘사이배슬론’은 ‘사이보그’(cyborg, 인간과 기계장치의 결합)에 경기를 뜻하는 ‘애슬론’(-athlon)을 붙여 만든 단어다. 이 국제대회는 2016년 10월 스위스에서 정식으로 시작됐다. 전동 휠체어, 강화 외골격(착용자의 힘을 증대해주는 기계장치) 등 최첨단 보조공학기기를 착용한 장애인들이 문열기, 계단오르기 등 일상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경기를 벌인다. 주최 쪽은 선수를 ‘파일럿’이라 부르는데,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처럼 기계를 잘 운용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첨단 기계를 개발하는 엔지니어와 그 기계를 이용할 파일럿이 한 팀이 되는 것이 사이배슬론 참가 조건이다. 엔지니어와 파일럿이 협업하여 파일럿이 잘 쓸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2016년 첫 대회에는 한국에서 공경철 교수팀(서강대), 김종배 교수팀(연세대), 이성환 교수팀(고려대)이 각각 강화 외골격 경주, 전동 휠체어 경주, 뇌파를 이용한 컴퓨터 게임 시합에 출전했다. 이 중 공경철 교수팀은 강화 외골격 경기 3위를 차지했다.

여섯 종목으로 구성된 사이배슬론은 스위스에서 4년마다 열린다. 2020년에 열릴 제2회 대회를 앞두고 조직위원회는 여러 나라에서 한 종목씩 ‘사이배슬론 시리즈’를 열고 있다. 첫 시리즈인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주에는 스위스, 일본, 러시아, 홍콩에서 총 여덟 팀이 참가했다.

사이배슬론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장애인이 아닌,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일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장애인의 모습을 재현해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참가팀을 인터뷰하기 위해 경기 개막 전날인 지난 4일, 스위스에서 온 ‘에이치에스아르(HSR) 인핸스트 팀’을 만났다. 첫 대회 전동 휠체어 종목에서 우승한 이 팀의 파일럿은 2014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플로리안 하우저다. 팀을 이끄는 크리스티안 베르메스 교수와 엔지니어 라파엘 슈뢰더가 2층 관중석에서 다른 팀의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었다. 슈뢰더는 다른 팀이 휠체어를 타는 모습을 노트에 꼼꼼히 적고 있었다. 다들 문제없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미션을 통과하는 듯 보였다.

하우저가 이런 고성능 전동 휠체어를 매일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베르메스 교수는 “불가능하지는 않다”면서도 “하우저가 전동 휠체어에 의존한다면 남은 근육마저 다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하우저가 근육을 계속 사용하길 원한다면, 최첨단 전동 휠체어보다 현재 사용하는 수동 휠체어가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에 팀이 결성된 이후 하우저는 매순간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팀의 엔지니어는 사지 마비 장애인인 하우저에게 꼭 맞는 휠체어를 만들고자 했다. 그 없이는 회의를 하지 않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그가 시범 탑승하도록 했다. 하우저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탑승감 조절부터 색깔과 이름까지 수많은 선택이 그를 거쳤다. “우리 휠체어는 하우저에게 최적화된 모델이에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죠.” 슈뢰더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에서 스위스 인핸스트팀의 플로리안 하우저가 로봇 팔을 써서 문을 여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에서 스위스 인핸스트팀의 플로리안 하우저가 로봇 팔을 써서 문을 여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에서 스위스 인핸스트팀의 플로리안 하우저가 탁자 아래로 휠체어를 밀어넣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탁자 아래로 휠체어 넣기에는 섬세한 휠체어 기술이 필요하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에서 스위스 인핸스트팀의 플로리안 하우저가 탁자 아래로 휠체어를 밀어넣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탁자 아래로 휠체어 넣기에는 섬세한 휠체어 기술이 필요하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겨루는 경기장 아닌 즐기는 경기장

다시 5일, 오후 2시40분. 마침내 1·2위 후보가 결승전의 출발선에 섰다. 스위스의 인핸스트팀과 러시아의 카터윌팀이었다. 막 3·4위 경기를 끝낸 장내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휠체어가 출발하자마자 관중석에서 응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곧 러시아팀의 파일럿 유리 라린이 첫 미션에 실패했다는 빨간 깃발이 올라왔다. 책상 밑에 휠체어를 넣고 빼다가 책상을 건드린 것이다. 예선부터 1위를 지켜왔던 그가 첫 미션에서 실패한 것은 의외였다. 관중석에서 탄식이 흘렀다. 그사이 스위스팀의 하우저가 ‘울퉁불퉁한 지면 통과하기’ 미션을 수행했다. 경기장의 사회자가 “휠체어를 타고 숲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할 만큼 어려운 미션이었다. 라린도 속도를 올렸다. 휠체어를 뒤로 돌려 울퉁불퉁한 지면에서 후진했고 이어 나온 계단도 거꾸로 올랐다. 그는 미션 두 개를 한달음에 빠른 속도로 끝내면서도 놀라운 균형감을 유지했다. 3분30초가 지났을 때 두 팀 모두 오늘의 마지막이자 가장 어려운 미션을 앞두고 있었다. 로봇 팔을 이용해 문을 열고, 휠체어로 문을 통과한 다음, 다시 로봇 팔로 문을 닫아 결승선을 통과하는 미션이었다.

접전이었다. 양 팀의 로봇 팔이 문손잡이에 닿을락 말락 하는 모습이 번갈아 가며 카메라에 잡혔다. 거의 동시에 문이 열렸고, 라린이 먼저 재빠르게 문을 닫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우저도 뒤따랐다. 대형 화면에 ‘플로리안 하우저 660점, 유리 라린 559점’이라는 글자가 떴다. 조금 늦었어도 미션을 모두 성공한 하우저에게 우승이 돌아갔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과는 달리 사이배슬론에서는 결승선에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미션을 제대로 완수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의 우승팀들. 앞줄 왼쪽부터 러시아 카터윌팀의 유리 라린(2위), 스위스 인핸스트팀의 플로리안 하우저(1위), 일본 포르티시시모팀의 노지마 히로시(3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가와사키 전동 휠체어 경기대회의 우승팀들. 앞줄 왼쪽부터 러시아 카터윌팀의 유리 라린(2위), 스위스 인핸스트팀의 플로리안 하우저(1위), 일본 포르티시시모팀의 노지마 히로시(3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오치 다카오 제공
뜨거운 함성 속에 두 파일럿이 악수를 나눴다.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각 팀 엔지니어들이 밝게 웃었다. 기분이 어떤지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하우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에요!”

시민들은 경기를 어떻게 보았을까. 가와사키에서 일하는 청년 오카자와 나오미는 우연히 보러 온 사이배슬론에서 “공학이 장애를 도울 가능성을 인상적으로 보았다”며 “휠체어 접근성이 낮은 일본이 더 포용적인 사회가 될 수 있는 길을 사이배슬론이 열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카자와 나오미의 기대가 머나먼 일이 아님을 곳곳에서 확인했다. 전동 휠체어 경주가 열린 컬츠 경기장은 ‘배리어프리’(barrier-free)로 설계되었다. 배리어프리란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하는 데 장벽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휠체어용 엘리베이터 버튼이 낮은 위치에 따로 설치됐고, 1·2층 모두에 휠체어를 탄 관중을 위한 공간이 있다. 경기 관람 신청을 한 700여명 중 50명 이상이 휠체어 사용자였다는 사실은 사이배슬론 경기가 단지 장애인들이 ‘겨루는’ 곳이 아닌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장으로 잘 준비되었음을 보여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파일럿이자 관중이다.

장애인 문턱 여전히 높은 한국

사이배슬론의 경기 미션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 환경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실 ‘미션’은 경기장 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휠체어 사용자들은 평소에 식당에서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테이블이 서서 걷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배치돼 테이블 사이 간격이 좁기 때문이다. 베르메스 교수는 “사이배슬론 시리즈가 앞으로 각 개최국의 상황을 반영하는 다양한 미션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라마다 휠체어 이용자의 어려움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각국의 장애인 환경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컬츠 경기장의 모습. 관중석의 맨 앞줄은 휠체어 사용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신희선 제공
컬츠 경기장의 모습. 관중석의 맨 앞줄은 휠체어 사용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신희선 제공
주어진 미션을 파악하고, 휠체어를 만들고, 대회에 출전하면서 엔지니어와 파일럿은 미션이 개선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2016년 1회 대회에서는 로봇 팔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던 ‘문 열고 닫기’ 미션을 스위스 인핸스트팀 등이 조직위원회에 건의하여 로봇 팔을 이용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사지가 마비된 하우저는 자유롭게 손을 이용할 수 없어 불리했기 때문이다. 선수의 조건을 존중하여 경기 미션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미션의 원형인 바깥세상의 물리적 환경도 장애인의 조건을 존중하여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는 곧 우리 사회의 인프라가 반드시 지금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것, 이것 말고도 대안이 많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사회인프라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어, 이들 스스로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는 사이보그가 되어야만 하는 사회다. 휠체어 사용자들이 사이배슬론의 첨단 기술을 통해 사이보그가 된다면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이보그가 되지 않거나 되지 못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수많은 장벽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사이보그를 자처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이보그 기술을 만드는 일만큼 중요한 문제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 시리즈가 한국에서도 열릴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한국 사회는 엔지니어와 장애인이 함께 첨단 휠체어를 개발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사회인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파일럿으로, 또 관중으로 맘껏 돌아다닐 수 있는 경기장이 마련되어 있는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까.

가와사키(일본)/강미량·신희선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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