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문명을 축적해 나가는데 결정적 뒷받침을 하는 것은 생각과 말을 기록·전수,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록매체다. 인류의 기록매체는 형상, 문자, 소리(오디오), 이미지(사진), 영상(비디오) 순서로 발전해 왔다. 수천 년 동안 아날로그 형태로 기록되던 인류 기록은 오늘날 대부분 디지털화했다.
컴퓨터의 발명은 정보의 기록과 처리의 양과 방법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왔다. 컴퓨터 저장매체는 기록 방식에 따라 자기(테이프, 플로피디스크), 광학(CD, DVD), 반도체(USB, SD카드) 매체로 발전해 왔다. 그 결과 언제 어디서든 양과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과거의 생각과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
기록매체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가 기록을 통해 소환하는 기억이나 추억은 본체를 대체할 수 없다. 기록매체를 통해 다시 듣고 보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아버지의 사진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 저장되고 재생된다 한들 살아계신 부모님을 대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아날로그 형태의 기록매체를 통해 과거의 체험이나 다른 이들의 경험을 현장감 있게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보다.
일상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잘 느낄 수 있는 기록매체 중 하나가 소리다. 소리를 기록하는 녹음에서 아날로그의 대표선수는 엘피(LP)이고 디지털의 대표선수는 시디(CD)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선호의 차이는 있지만 어차피 둘 다 원음을 그대로 재생하지는 못한다. 음반의 경우 엘피가 원음을 풍부하게 저장하고 있기에 엘피는 재생하는 카트리지를 고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의 경우 디지털 음원을 재생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애트모스(Atmos) 사운드트랙을 도입하여 현장감을 극대화해 나가고 있다. 애트모스 기술은 최근 홈시어터나 핸드폰에도 적용되고 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영상은 4K로, 음향은 돌비 애트모스로 작업했다고 한다. 아날로그의 향수를 가지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원음과 원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한 기술자들과 예술인들의 노력이 고맙기 그지없다. 오는 주말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기록매체박물관에 가서 기록의 역사를 더듬어 볼까 한다.
서병조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