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는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란 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백신·치료제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감염병)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이다. 다중시설이나 군중집회를 피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2미터 유지하는 생활이 벌써 3주가 지났다. 정부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집행에 들어간 날 세계보건기구는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란 말을 쓰자고 제안했다. 팬데믹을 퇴치하려면 오히려 사람간 소통과 협력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소셜 네트워크는 유지돼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 자밀 재키는 “우리가 사회망을 찢어버린다고 비난하는 바로 그 기술이 지금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며 `원격 교류'(distant socializing)란 용어를 제안했다.
거리두기는 사실 인간의 진화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 사회적 교류와 협력, 연대, 경쟁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서게 한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기술문명은 협력과 거리두기가 동시에 가능한 세상을 열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는 대면 접촉에만 익숙했던 직장 일과 학교 공부, 신앙 행사 등을 온라인상으로 처리하고 경험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물리적 거리를 둬야 할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코로나19는 인간은 이제 자연과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음을 깨우쳐 준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온 건 바이러스 숙주 동물들의 터전이 사라진 탓이다. 인간 번영의 역사는 곧 동물 쇠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지구 생물종의 다양성을 허물어뜨렸다. 20세기 이후 멸종 속도는 그 이전에 비해 50~100배 빨라졌다. 하루에 150종이 멸종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다양성의 감소는 생존력의 약화를 부른다. 다양한 특성을 발현하는 유전자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힘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면 면역방어체계가 단순해져 질병에 취약해진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에 지구상 식물의 67%, 척추동물의 50%가 산다. 이들 지역은 한때 지구 육지 면적의 24%나 됐지만 지금은 8%로 줄었다.
생물 다양성은 인간의 언어·문화 다양성과도 직결돼 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세계 언어의 70%가 생물 다양성이 높은 곳에 분포한다. 현재 존재하는 6900여개의 언어 중 4800여개가 생물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들 언어의 절반 이상도 역시 이번 세기 안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언어 다양성 지역과 겹친다. PNAS 제공
생물 다양성과 언어 다양성이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서로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원이 풍부해 외부세계와 교류할 필요성이 적은 곳일수록 다양성이 풍부했다. 물산이 풍부한데 굳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 다양성의 기반은 바로 각자의 공간을 온전하게 유지한 것이었다.
동물한테도 그들의 공간을 보장해준다면 바이러스가 인간 세계로 건너올 일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과연 자연과 거리두기도 가능할까? 지식과 기술의 발전은 자연과 `원격 공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가고 있다. 예컨대 인수공통감염병의 뿌리라 할 육식 문화를 살펴보자. 2009년 신종플루는 돼지축사에서, 1997년 조류인플루엔자는 닭농장에서 시작됐다. 고기를 공급하는 공장식 축사, 은밀한 동물 거래 시장 등이 바이러스 배양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고기를 먹지 않을 순 없다. 어떻게 할까? 식물에서 단백질을 뽑거나 세포를 배양해 고기를 만드는 신기술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육 동물을 줄이고, 감염병 위험도 그만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온실가스 배출, 항생제 오염, 자연 파괴 등 육식 문화가 초래한 여러 걱정거리도 줄어든다. 에너지에서도 화석연료, 목재 같은 자연 자원을 덜 쓰는 기술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보여주는 그래픽. 위키미디어 코먼스
20세기 인류는 번영과 성장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는 21세기 인류에게 기후변화와 불평등, 저성장, 저출산의 부담을 안겼다. 인간에게 탈탈 털린 자연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순간에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는 문명의 뉴노멀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됐음을 알리는 전령사일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은 친절을 베푸는 행위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격리하는 것은 공동체의 취약층을 보호하는 길이다. 지금은 격리가 곧 연대다.” 재키 교수가 사회 공동체를 두고 한 얘기다. 이를 지구 공동체로 넓혀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똑같은 충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과의 격리가 곧 지구 연대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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