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발명가들이 제안한 ‘비대면 놀이터’. bindermartin.com 제공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 놀이터가 수시로 폐쇄되는가 하면, 열려 있어도 아이들 보내기가 찜찜해졌다. 감염 위험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놀이터는 없을까? 독일 베를린의 발명가들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확산될 때도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비대면 놀이터’ 아이디어를 내놨다.
디자이너이자 미술가인 마르틴 빈더(Martin Binder)와 심리학자이자 홍보전문가인 클라우디오 림멜레(Claudio Rimmele)가 이 색다른 놀이터 개발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평소 아이들로 북적거리던 놀이터가 코로나19 발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동제한 조처로 인해 적막한 공간으로 변한 걸 보고 아이들을 계속 뛰어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사회성을 높이고 정신 및 육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던 이들은 6주만에 비대면 놀이터라는 해법을 찾아냈다.
이들이 밝힌 림빈의 설계 원칙은 6가지다. 첫째, 각 어린이는 개별 놀이공간을 갖는다. 둘째 각 놀이공간은 따로따로 출입한다. 셋째, 아이들은 서로 마주볼 수 있다. 넷째,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섯째, 아이들은 부모의 시야에 있어야 한다. 여섯째, 아이들은 안전한 거리에서 여러 놀이를 즐긴다.
이런 원칙에 따라 놀이터는 여러 개의 독립적 놀이공간 ‘림빈’(Rimbin)들로 이뤄져 있다. 아이들이 드나들면서 신체 접촉을 하지 않도록 각각의 림빈에는 별도의 출입구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생활을 같이 하는 형제자매들은 같은 림빈에서 놀 수 있도록 림빈의 크기에는 여유를 뒀다. 물론 동네 아이들과는 다른 림빈을 사용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다. 림빈 바닥엔 모래를 채워넣을 수 있다.
이 놀이터의 또 다른 특징은 서로 다른 림빈에서 노는 아이들이 신체 접촉을 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놀 수 있는 기구를 배치한 점이다. 각각의 림빈 사이에 시소, 수평형 햄스터 바퀴 등을 둬 다른 놀이공간에 있는 아이와도 함께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양쪽 끝이 원뿔 모양인 통신용 파이프 ‘스피킹 튜브’(speaking tube, 전성관)를 통해 부모한테 들리지 않게 어린이들끼리 장난스런 대화도 할 수 있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개발자들은 또 손잡이 등 어린이가 손으로 직접 만지는 곳은 살균 소독이 쉬운 금속 소재로 만들고, 이곳을 찾는 부모들을 위해 소독제가 상시 비치돼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둥그런 모양의 놀이공간 ‘림빈’은 남미 아마존강 유역에 서식하는 거대한 수련 ‘빅토리아 아마조니카’(Victoria amazonica)의 잎 모양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은 19세기 영국의 정원사 조지프 팩스턴이 지름이 최대 2미터나 되는 이 수련 잎이 얼마나 튼튼한지 실증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딸을 수련 잎 위에 세웠던 ‘1849 프로젝트’에서 림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849년 수련 실증 시험 장면. 위키미디어 코먼스
비대면 놀이터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림빈’은 개발자인 두 사람의 이름에서 첫 음절을 합친 것이다. 두 사람은 부모와 아이들을 면접한 결과, 감염병 상황이라도 아이들에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대화형 야외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디자인 전문 미디어 ‘디진’(Dezeen)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들이 내놓은 비대면 놀이터 아이디어가 실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코로나19가 먹고 쉬고 일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 노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을 바꿔나가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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