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군사과학 잡지 '기계화' 조선판 1943년 11월호. 서울SF아카이브 제공
우리나라의 근대 과학문화 형성 과정에 일본의 영향이 심대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별로 많지 않다. 특히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1941년부터 패전한 1945년까지 이 땅의 대중이 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수용했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은 그 중요성에 비해 사실상 공백에 가깝지 않나 싶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제는 태평양전쟁 시기 내내 군국주의를 부추기는 캠페인을 대중과학 분야에서 계속했다. 대중 잡지에 ‘미래전쟁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신무기들이 등장하는 전쟁 이야기가 실리는가 하면, 과학적 상상력의 상당 부분은 미래의 신무기 개발을 장려하는 아이디어들과 동일시되었다. 이런 추세는 해방이 된 뒤에도 잔영이 짙게 남았다가 한국전쟁을 거쳐 냉전 시대가 되도록 그 생명력을 계속 이어갔다. 과학기술과 과학적 상상력을 산업경제 및 국방의 도구라는 관점으로 보는 시각이 우위를 점했던 것이다.
그 상징적인 예로 ‘機械化(기계화)’라는 잡지가 있다. ‘国防科学雑誌(국방과학잡지)’라는 전제를 단 이 매체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1940년에 설립한 ‘재단법인 기계화국방협회’에서 발행했는데, 이 단체는 설립 목적이 ‘과학기술과 국방 교육의 추진’이었다. ‘전차의 미래’ 등 과학기술적 상상력을 주로 군수 분야에 적용한 내용과 함께 기계공학이나 자연과학의 기초지식 같은 기사도 실어 사실상 교양과학 잡지의 역할도 떠안았다.
주목할 점은 이 잡지가 ‘朝鮮版(조선판)’을 따로 냈다는 사실이다. (물론 언어는 일본어이다.) 1943년 11월호 ‘기계화 조선판’을 보면 본문 주요 기사 중 하나가 조선의 항공 훈련을 소개한 것이며 권말에는 경성(서울)의 학생들이 군사훈련소 지반공사에 ‘봉사’했다는 소식이나 평양의 학생들이 합숙기갑훈련을 받았다는 내용 등이 나온다.
1940년에 창간되어 1945년 봄까지 꾸준히 간행되었던 이 잡지가 언제부터 조선판을 냈는지, 일본판과는 얼마나 다른 내용들을 실었는지 심도 깊게 고찰한다면 그 시기 이 땅의 과학기술 문화에 대해서도 훨씬 더 소상한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