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유선세포 떼낸 뒤 증식시켜 생산
면역 물질 없지만 다른 성분은 모유 비슷
수유 여건 안되는 산모·아기의 대안 기대
미 신생기업 바이오밀크 "내년 상품화 가능"
면역 물질 없지만 다른 성분은 모유 비슷
수유 여건 안되는 산모·아기의 대안 기대
미 신생기업 바이오밀크 "내년 상품화 가능"
젖산을 분비하는 유선세포를 떼내 몸밖에서 모유를 생산하는 기술이 나왔다. 픽사베이
바이오밀크의 유선세포들. 녹색이 유선세포이고, 그 안의 파란색은 세포핵이다. 각 세포의 발달단계 차이로 세포 크기가 다르다. 바이오밀크 제공
2013년 세포 배양 햄버거 시식회에서 영감 얻어 회사 공동창업자인 레일라 스트릭랜드 박사가 배양 모유 개발에 나선 건,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두 아기를 모두 조산하는 바람에 모유 수유에 애를 먹었던 그는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던 중 2013년 열린 세계 최초의 세포 배양 햄버거 시식회 영상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는 곧바로 5천달러를 들여 온라인에서 배양기, 현미경, 원심분리기 등을 구입한 뒤 남편과 함께 실험을 시작했다. 이어 2019년엔 식품과학자와 의기투합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어 포기하려는 순간 지난해 6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350만달러의 투자금을 받으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후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해 최근 모유와 성분이 상당히 비슷한 배양 모유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모유를 대체하거나 분유를 퇴출시키는 것이 아니다. 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만드는 것이다. 바이오밀크는 보도자료에서 배양 모유가 실제 모유와 생물학적으로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수유 기간 중 엄마와 아기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모유 성분의 역동성까지 반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오밀크는 그러나 배양 모유는 몸 밖의 엄격한 무균 환경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모유에서 흔히 검출되는 환경 독소나 식품 알레르기 물질, 약품 성분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입양 가정, 알레르기 아기, 수유 불가능 산모에 획기적 대안" 배양 모유는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임신 기간 중에 아기엄마의 유방 세포를 채취하면 아기가 태어난 뒤 곧바로 자신의 세포가 만들어낸 모유를 먹일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다. 공동창업자이자 바이오밀크 대표인 식품과학자 미셸 에거는 내년쯤에는 배양 모유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오밀크의 기술고문 자키야 윌리엄스는 “배양 모유는 입양 가정이나 알레르기가 있는 아기, 수유가 불가능한 산모에겐 ‘게임체인저’와도 같은 획기적인 대안”라고 말했다.
바이오밀크 공동 창업자인 미셸 에거와 레일라 스트릭랜드(앞줄 왼쪽 두번째와 세번째). 바이오밀크 제공
싱가포르 기업은 모유 속 줄기세포 배양해 생산 배양 모유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 바이오밀크만은 아니다. 2019년 설립된 싱가포르의 터틀트리랩스(TurtleTree Labs)도 젖소 세포를 이용해 우유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한 데 이어 지난해 4월 같은 방식으로 모유 시험 생산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유선세포를 직접 채취하는 바이오밀크와 달리 줄기세포를 이용한다. 우유나 모유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증식시켜 유선세포로 만든 다음, 적절한 환경에서 세포를 배양해 우유나 모유를 얻는 방식이다. 줄기세포가 유선세포로 분화하는 데 3주가 걸리며, 이때부터 유선세포는 몇달 동안 젖을 생산할 수 있다고 회사는 설명한다. 지난해 말 620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터틀트리랩스는 배양 모유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분유업체에 이 기술을 판매해 분유의 질을 개선하는 데 쓸 계획이다. 터틀트리랩스 대표인 린펑루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치즈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양 우유 개발에 나섰다가 배양 모유까지 영역을 넓히게 됐다고 한다. 업체들의 설명대로 배양 모유가 실제 모유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 과정이 분유보다 친환경적이고 성분이 모유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가격 조건이 맞고 식품 안전성이 보장된다면 시장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특히 모유를 수유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되는 산모들에겐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하나의 변수는 아기 먹을거리에 민감한 산모들이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지 여부다. 생명공학 기술은 불가능했던 걸 누릴 수 있게 해주지만, 미지의 기술은 정체 모를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나저나 이렇게 몸 밖에서 세포를 배양해 만드는 젖은 모유일까, 분유일까? 아니면 제3의 새로운 식품군을 따로 설정해야 할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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