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공간에 펼쳐진 제임스웹우주망원경 상상도. 미 항공우주국(나사) 제공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이 전임 국장 제임스 웹이 1950∼1960년대 남·여 동성애자 직원들에 대한 탄압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었음에도 과학계의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 개명 요구를 거부한 사실이 최근 새로 밝혀져 과학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사실은 지난달 말 과학저널 <네이처>가 400쪽에 이르는 이메일을 온라인에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네이처는 정보공개법 요청을 통해 이메일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허블우주망원경의 후속으로
지난해 12월 발사됐다. 이름은 1961∼1968년 나사 2대 국장을 지낸 제임스 웹에서 따왔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과학자 4명이 웹의 성소수자 탄압을 이유로 제임스웹우주망원경 개명 청원을 내고 1250명의 과학자가 연대 서명하면서 쟁점으로 떠올랐다.
나사 직원들이 제임스웹망원경을 조립하고 있다. 나사 제공
네이처, 웹 혐의 증거 이메일 공개해 논란 점화
하지만 빌 넬슨 나사 국장은 지난해 9월27일(현지시각) “현재로서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 이름을 변경해야 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한 문장으로 된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청원을 거부했다. 이번에 네이처가 공개한 이메일이 논란을 부른 것은 나사 지도부가 이런 결정을 내릴 당시에 이미 웹의 문제를 알고 있었음이 드러났다는 점이라고 과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제임스 웹은 나사 국장이 되기 전 국무부 차관(부사령관)이었다. 네이처가 확보한 지난해 9월3일치 이메일에서 이름이 가려진 발신자는 과거 기록에 “웹이 백악관과 국무부가 어떻게 하면 ‘동성애자 조사에 협력’할 수 있는지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1950년 6월22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웹이 1952년 국무부에서 사임하기 전 많은 성소수자 직원들이 국무부에서 해고됐다.
비평가들은 동성애 혐오가 웹을 뒤따라서 나사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웹 국장 시절 동성애 의심을 받은 직원 클리포드 노턴은 나사의 보안국장한테서 자신의 성 이력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으며 “(자신의 성 이력이) 부도덕하고 부적절하며 수치스러운 행위”라는 이유로 해고됐다.
지난해 4월초 이메일의 이름이 가려진 발신자는 노턴을 해고한 관리가 자신한테 그의 고문이 동성애 행위에 대한 해고 조처는 ‘기관 관행’으로 간주된다고 말했기 때문에 (노턴을) 해고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또 9월3일치 이메일의 이름이 삭제된 발신자들은 망원경 이름을 변경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면서 “웹이 ‘라벤다 공포’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적었다. 라벤다 공포는 많은 성소수자 연방정부 직원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감시하고 박해하거나 해고하는 등의 매카시즘식 마녀 사냥을 가리킨다. 모두 넬슨이 성명을 발표하기 전 이메일들이다.
미국 럿거스대 천문학자인 야오-유안 마오는 “이메일을 읽어보면 과학자들의 우려에 나사 지도부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말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이 지난해 12월25일 남미 브라질 북쪽의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아리안5호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나사 제공
나사 “조사 진행중으로 몇달 안 보고서 제출”
나사 관리들은 지난달 30일 산하 천체물리학자문위원회 회의에서 웹이 성소수자 탄압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가 아직 진행중이며 몇 달 안에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리라고 밝혔다. 회의에서 나사 수석역사가 대행인 브라이언 오돔은 “웹의 역할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충돌할 수 있는 추가 증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나사 천체물리학 책임자인 폴 헤르츠는 “나사가 내리는 결정이 어떤 이들한테 고통스럽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한테 잘못된 것 같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명 청원을 주도한 4명 가운데 한 명인 시카고 애들러천문대의 천문학자 루시앤 월코위츠는 “웹이 임기 동안 달에 우주비행사를 보내는 데 도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면 그가 자신의 행정부에서 행한 동성애 혐오 행위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카네기과학연구소 천문학자인 조한나 테스크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 개명은 나사가 천문학자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매우 영향력 있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핵심 가치의 하나를 충족할 수 있는 기회를 왜 놓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연방기구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이름이 변경되는 일이 드물지는 않다. 2019년 말 미국과학재단(NSF)은 암흑물질의 발견에 기여한 천문학자 베라 C. 루빈의 이름을 기려 현재 건설중인 대형시놉틱관측망원경(LSST)의 이름을 변경했다. 또 나사가 계획하고 있는 광대역적외선관측망원경(WFIST)은 천문학 선구자이자 나사 최초의 여성임원인 낸시 그레이스 로만의 이름을 따서 개명됐다. 스위프트감마선폭발천체탐색기(SGRBE)는 고인이 된 수석 연구원 이름을 따서 닐 게럴스 스위프트 관측소(NGSO)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국가극궤도환경위성시스템준비사업(NPP)은 출범 3개월 뒤 기상학자 베르너 E. 수오미의 이름을 따 수오미NPP로 변경됐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