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미래&과학 과학

생명은 DNA 아닌 RNA를 중심으로 진화했다

등록 2023-09-21 09:00수정 2023-09-21 10:03

[주철현의 커넥션]
(12) RNA의 세계
34억년 전 남세균 등의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트로마톨라이트 암석층. 지구 생명의 역사는 최소 35억년 전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34억년 전 남세균 등의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트로마톨라이트 암석층. 지구 생명의 역사는 최소 35억년 전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전 칼럼에서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인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에 대해 알아보았다. 관찰 가능한 모든 생물의 특이성이 루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최후(last)라는 형용사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또한 루카는 자신의 탄생 과정을 스스로 설명하지는 못하는 과학적 한계도 역시 언급하였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루카 이전 태고의 생명에 대해서도 논쟁하고 있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고 과학자들은 호기심이 직업병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약간의 상상력을 준비하고, 과학자들의 단골 논쟁거리이자 지적 유희를 살짝 구경해보자.

최초로 확인되는 생명의 흔적은 호주의 암석에서 발견되는 35억 년 전 세균 화석이다. 하지만 화석은 발견이라는 우연성이 개입된다. 따라서 생명이 등장한 시기는 최소 35억년 전이라는 의미이며 논리적으로는 그보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현존하는 생물들의 유전자 분석으로 계산해보면 루카는 45억년 전 처음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번 시간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나이가 4억~5억 살 정도에 ‘불과’했던 어린 지구다.

생명의 시작을 상상하기 전에 먼저 생물의 정의를 다시 확인하자. 대사와 복제가 가능한 독립 개체를 생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사, 복제, 독립이라는 세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초의 생물이 루카다. 대사는 복제에 필요한 재료와 에너지를 공급하고, 복제는 대사를 수행하는 단백질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복제와 대사는 상호 의존적 관계다. 하지만 어린 지구에서 루카가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닭과 달걀의 딜레마가 생긴다. 대사가 먼저일까 복제가 먼저일까?

DNA, RNA, 단백질…어느 것이 먼저인가

답을 구하려면 먼저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하기 위해 위 그림을 보자. 세포가 만들어내는 생명 현상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DNA, RNA, 그리고 단백질이라는 세 중합체들이 일으키는 물리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아미노산 중합체인 단백질은 생명의 일꾼이다. 그리고 특정한 기능을 가진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아미노산 종류와 순서의 정보는 RNA에 담겨 전달된다. 그리고 RNA에 담긴 정보는 DNA에 보관되어 있다. DNA에서 RNA로 정보를 베껴 적는 것은 전사(transcription)라 하고 RNA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것을 해석(translation)이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DNA는 RNA를 만들고 RNA는 단백질을 만든다. 루카에 의해 확립된 생명의 중심원리는 세 중합체들 사이에서 전달되는 생명 정보의 흐름에 대한 원칙이다. 따라서 대사가 먼저냐 복제가 먼저냐 하는 문제는, 루카 이전에 세 중합체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등장하였는가의 문제가 된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생명 정보의 출발점인 DNA가 가장 먼저 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보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열 정보를 단백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 단백질이 필요하다. 특히 중합효소라 불리는 단백질이 있어야 DNA도 복제가 된다. 그렇다고 자기 복제 기능이 없는 단백질이 먼저 등장했다고 하면, 하나의 기능이 필요할 때마다 천문학적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한다. 복제의 주인공인 DNA가 먼저 등장했을까, 대사의 주인공인 단백질이 먼저 등장했을까? 등장 순서에 대한 골치 아픈 딜레마를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이번 칼럼의 주인공 RNA이다.

중합체(polymer)라는 것은 일정한 단위 분자를 계속 연결하여 만들어진 사슬 형태의 분자를 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DNA는 4개의 핵산,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이 단위 분자라고 하였다. RNA도 DNA처럼 핵산 4개를 단위 분자로 사용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은 RNA는 하나의 사슬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중 나선이라는 별명이 말하듯 DNA는 두 개의 사슬이 상보적으로 지퍼처럼 단단히 맞물려 존재한다. 모든 핵산은 자기 짝과 결합되어 있어, 3차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접힘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RNA는 단일 사슬로 존재한다. 따라서 DNA와 달리 사슬의 핵산들은 주변의 핵산들과 전자기력에 의해 결합을 하게 되어 접힘을 일으킨다. 이는 RNA의 3차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된다.

단백질(회색)과 DNA(파란색), RNA(살구색)의 구조 비교. 위키미디어 코먼스
단백질(회색)과 DNA(파란색), RNA(살구색)의 구조 비교. 위키미디어 코먼스

대사와 복제가 모두 가능한 RNA

생물학에서 일정한 구조는 곧 기능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사와 복제가 모두 가능한 RNA가 최초의 생명체로 여겨진다. 그리고 루카의 등장 이전 RNA만으로 시작된 태고의 생태계를 RNA 세상(RNA World)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개념은 1962년에 처음 제시되었으나 많은 가설 중 하나 정도로 여겨졌다. 그리고 RNA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DNA의 정보를 베껴 전달하는 단순한 쪽지 정도의 역할만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후 RNA의 기능적 구조들이 계속 발견되면서, 이제 RNA 세상은 태고의 생명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가설이 되었다.

이처럼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기능을 수행하는 RNA를 리보자임(ribozyme)이라 한다. RNA(‘ribo’nucleic acid)이면서 효소(en’zyme’)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세포 속에는 수많은 리보자임이 존재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무엇보다 태고의 원시 복제 RNA가 실제 존재했을 결정적 가능성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RNA가 실험실에서 합성되어 증명되었다. RNA를 복제하는 RNA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165개의 핵산으로 구성된 사슬이 필요하였고, 189개의 핵산으로 구성된 RNA 리보자임은 RNA 복제의 오류 빈도가 1% 이하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RNA 세상에서 그 다음으로 등장한 중합체는 단백질이다. 구조를 형성하여 기능을 수행하는 RNA가 있는데도 새로운 중합체가 등장한 이유는 구조적 다양성의 제한 때문이다. RNA를 구성하는 비슷한 크기의 핵산 4 종류의 접힘으로는 다양한 구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정교한 구조일수록 사슬도 길어져야 한다. RNA가 길어진다는 것은 접힘의 정확도도 떨어지고 정보를 안전적으로 유지하기도 힘들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는 단백질이 등장한 것이다. 아미노산 20 종류가 만들어 내는 단백질의 구조적 다양성, 접힘의 정확도, 정보 효율은 RNA를 압도한다. 한마디로 구조 전문 중합체다.

앞의 생명의 중심원리 그림에서 RNA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해석이라고 하였다. 이 해석 과정의 중심에는 RNA가 있다.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담고 있는 RNA, 이 정보로 단백질로 합성하는 RNA, 아미노산을 배달하는 RNA가 함께 어우러져 단백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를 해석이라 하는 이유는 4개의 핵산과 20개의 아미노산은 단어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석의 사전 역할을 하는 것이 코돈이다. 배달하는 RNA의 머리에는 아미노산이 달려 있고 발바닥에는 반대 코돈이 달려 있다. 이를 통해 핵산을 3개씩 읽어가면서 상보적인 반대 코돈을 가진 RNA를 찾아 머리에 달린 아미노산을 순서대로 결합시켜 나가는 것이 해석 과정이다. 우리 몸의 세포에 태고의 RNA 세상이 들어있는 셈이다.

두 가닥의 핵산 사슬이 이중나선 구조로 결합돼 있는 DNA는 생명 정보의 안전한 금고 역할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두 가닥의 핵산 사슬이 이중나선 구조로 결합돼 있는 DNA는 생명 정보의 안전한 금고 역할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RNA에서 단백질로, 단백질에서 DNA로

RNA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이 DNA다. 기본적으로 RNA는 불안정한 물질이다. 불안정성은 다양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단백질 기능을 시험하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시행착오로 어렵게 확보된 유전 정보를 안정적으로 보관하는 것에는 불리하다. 이 상황에서 유전 정보의 안정적인 보관을 위해 등장한 것이 DNA이다. DNA라는 이름에는 RNA 뼈대에서 산소를 제거(deoxy-)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산소가 있으면 불이 활활 탄다. 반응성이 강한 산소를 뼈대에 가진 RNA는 불안정하고 쉽게 파괴되기 때문에 산소를 제거한 DNA가 정보의 안정적 보관에 적합하다. 여기에 두 가닥의 사슬을 상보적으로 결합시켜 이중 나선으로 만들면 정보의 안전한 금고가 된다. 이후 RNA 세상에서 확보되었던 단백질 정보들은 DNA로 전환되어 보관이 되기 시작했다. RNA 세상에서 이 과정을 수행했던 유전자 화석이 바이러스의 중합 효소 유전자들이다.

정리하면 태고의 지구에서 최초의 자기 복제 중합체인 RNA가 등장하였다. RNA는 정보 보관과 기능 구현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만족시키는 중합체였다. 하지만 다양한 기능은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유전 정보를 구조로 만드는 전문 중합체인 단백질이 등장하였다. 이를 통해 더 다양한 구조와 더 정교한 기능의 구현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단백질들의 기능 진화로 정보 전문 중합체인 DNA가 마지막으로 등장하였다.

RNA는 단순히 DNA와 단백질의 사이에서 정보만 전달하는 단순한 메모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생명 발현 과정에서 중요한 코돈의 확정, 그리고 유전자 복제와 단백질 합성이라는 모든 과정이 RNA를 중심으로 진화하였고, 전문적인 기능을 DNA와 단백질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생명 정보를 더욱 정교하게 조절하는 중간자의 역할로 남아 있는 것이다. 생명 정보의 발현을 조절은 생물 개체의 고유성이 나타나는 중요한 과정이다. DNA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적재적소에 꺼내서 단백질 기능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RNA의 역할이다. 만약 DNA의 정보가 단백질로 그대로 옮겨지기만 한다면, 모든 생물의 행동과 운명은 유전자가 결정하게 되는 심심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루카의 중심 원리가 완성된 RNA 세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RNA 세상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태양계의 작은 행성 지구가 생태계를 품게 된 시간의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천문학자들이 우리가 초신성(super-nova)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알게 될 것이다.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의학교육센터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미래&과학 많이 보는 기사

과일·가공식품 속 과당, 암세포 증식 돕는다…어떻게? 1.

과일·가공식품 속 과당, 암세포 증식 돕는다…어떻게?

커피 애호가 몸엔 이 박테리아 8배 많아…카페인 때문은 아니다 2.

커피 애호가 몸엔 이 박테리아 8배 많아…카페인 때문은 아니다

미국·일본 달 착륙선, 한 로켓 타도 도착시간 석달 차… 왜? 3.

미국·일본 달 착륙선, 한 로켓 타도 도착시간 석달 차… 왜?

초속 1600km 중성자별이 그린 ‘기타 성운’ 4.

초속 1600km 중성자별이 그린 ‘기타 성운’

지난가을 왔다 멀리 가버린 ‘미니 달’…실제 달의 분신이었다 5.

지난가을 왔다 멀리 가버린 ‘미니 달’…실제 달의 분신이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