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생태계는 우주에서 특별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특별한 존재다. 픽사베이
이전 칼럼에서는 생태계의 시간을 거슬러 태고의 생태계인 RNA 세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시간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의 기원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생태계가 이 우주에서 얼마나 특별한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자.
넓은 사막 한가운데 우물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는 자기 공간의 특별함을 알아채기 어렵다. 우물이 말라버린 후에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존재하는 생태계의 특별함을 우리 스스로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우물이 없어져야 특별함을 깨우치는 개구리와 달리, 우리 인류는 바깥을 볼 수 있는 과학이라는 수정 구슬을 가지고 있다.
내용을 시작하기 전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에 대한 용어를 다시 정리해두자. 칼럼에서 자주 등장하는 생태계라는 단어는 생물이 상호 작용하는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이처럼 과학에서는 관심 대상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경계로 설정한 계(system)라는 관념을 설정하고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주전자에서 끓는 물 분자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고 하자. 그럼 주전자는 경계, 주전자 내부는 계, 주전자 외부는 외계가 된다. 그리고 경계의 특성에 따라 열린계, 닫힌계, 고립계로 분류된다. 경계에서 내부와 외부의 물질과 에너지가 교환 가능하면 열린계, 에너지만 교환 가능하면 닫힌계, 모두 교환이 불가능하면 고립계다. 예로 든 주전자는 열에너지가 들어오고 수증기가 빠져나가는 열린계다.
지구는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복사 에너지를 내보낸다, 그리고 미량이지만 지구의 대기가 우주로 빠져나가고 가끔 운석도 떨어지는 물질 교환도 일어난다. 하지만 이는 지구 질량보다 너무 미미해서 지구는 (당분간 실질적인) 닫힌계다. 생태계는 지구와 동일한 계가 아니다. 지구가 생명이 넘치는 푸른 행성으로 보이는 이유는 생태계가 얇은 습자지처럼 표면에 골고루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태계가 차지하는 부피는 지구의 0.03%도 되지 않는다. 생태계는 지구가 품고 있는 다양한 계의 하나이며, 지구와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열린계다.
지구가 형성되었을 때 생태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시 지구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형성된 대양에서 최초의 생태계가 시작되었다. 이후 생태계는 계속 확장되었지만 육상 식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바다가 경계였다. 식물에 이어 동물들이 육지로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생태계는 지구 표면을 뒤덮게 되었다. 지구는 닫힌계이기 때문에 탄생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물질(원자)의 종류와 양에는 변화가 없다. 이 물질들이 열린계인 생태계에 흡수되어 더 복잡한 유기물(생체 고분자)로 재구성되면서 확장이 된 것이다. 단순한 무기물이 복잡한 유기물(생체 고분자)로 전환되는 것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에서 공급되었다.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기본 환경은 물이다. 픽사베이
생태계를 지탱해주는 물의 3가지 특성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기본 환경은 물이다. 특히 활발한 생명 활동의 무대가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온도의 액체 상태가 지속되어야 한다. 이는 물의 특이한 성질 때문이다. 산소 원자 하나에 수소 원자 두개가 약간 기울어져 결합이 되어 있어 물은 극성을 가지게 된다. 이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로운 액체의 물이 고체 상태인 얼음보다 밀도가 더 높아진다. 이 특성은 얼음이 물 위에 뜨는 것을 통해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만약 극성이 없었다면 물은 바닥부터 얼어서 올라왔을 것이다.
극성으로 일어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현상은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현상이다. 이는 물의 극성 때문에 얼음으로 질서 정연하게 결정화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물이 수증기로 기화되기 위해서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을 가열하면 99도까지는 조용하다 100도가 되면서 갑자기 끓기 시작한다. 극성을 가진 물 분자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많은 열에너지를 품을 수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은 지구의 수냉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국지적으로는 낮과 밤의 온도 차이를 줄여준다. 사막의 낮과 밤 기온 차이가 심한 이유는 주변에 물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적으로는 해류라는 현상을 통해 적도에서 흡수된 많은 열을 추운 극지방으로 날라주어 기온의 차이를 줄여준다. 이 덕분에 온도 변화에 민감한 단백질로 구성된 생물들이 지구 표면에 넓게 분포될 수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물의 특성은 생명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용매라는 점이다. 극성을 가진 물은 생체 고분자를 포함해 많은 종류의 분자들을 녹일 수 있다. 분자생물학 수준에서 생명활동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분자들이 빠른 속도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이 흡수한 많은 열에너지는 물 분자 극성의 섭동을 일으킨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증명한 브라운 운동 현상을 통해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런 물의 활발한 움직임이 생체 고분자가 동작하는 기본 에너지를 제공한다. 고체나 기체 상태에서는 에너지 전달 효율이 떨어져 생명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생명일지라도 그 구성 세포는 물(체액)이라는 환경에서 활동한다.
태양에 가까운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무거운 원자들이 뭉친 암석형 행성이고, 태양에서 먼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가벼운 원자들이 뭉친 기체 행성이다. 픽사베이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럼 생명을 가능하게 만든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납을 금으로 바꾸려 노력했던 과거의 연금술사(뉴턴도 포함해)들은 몰랐겠지만, “자연 상태”에서 원자는 생성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은 이제는 초등학생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럼 물을 구성하는 산소와 수소 원자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보자. “자연 상태”라는 말은 화학적 반응만 일어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가면 원자가 생성되거나 소멸되는 핵반응의 영역이다. 경제적 의미는 없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핵반응을 이용해 수은에서 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핵반응을 통해 발전하여 그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 핵반응은 (지구 같은) 행성 수준이 아닌 (태양 같은) 항성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수소와 산소를 포함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는 우주라는 거대한 ‘계’의 구성원인 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주라고 하면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대의 공간이 생각난다. 그런데 우주 ‘계’라고 하면 이 우주에 경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과학이 다루는 우주의 경계는 관찰 가능한 범위다. 우리 우주가 열렸는지 닫혔는지 고립되었는지도 알 수 없고, 비슷한 우주가 옆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평행 우주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관찰 가능한 경계의 바깥은 과학이 아닌 추상적 관념의 대상이다. 우리 인류의 과학 지식은 관찰 가능한 우주를 측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과학자가 우주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관찰 가능한”이라는 개념이 생략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우주 전체의 구성 원자의 88%는 수소, 11%는 헬륨이다. 나머지 90종의 원자를 다 합해도 1%도 되지 않는다.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소와 헬륨은 138억년 전 빅뱅에서 만들어졌다. 빅뱅을 ‘특이점’ 혹은 ‘사건의 지평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관찰을 통해 빅뱅 발생 1초 이후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잘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이전 상황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루카에 대한 설명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런 아이러니 때문에 ‘빅뱅 이론은 빅뱅만 빼고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빅뱅이 일어나고 3분 후 등장한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뭉쳐져 헬륨이 되고 남은 양성자는 수소가 되었다. 이때 수소와 헬륨이 생성된 비율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빅뱅 이후 1억년이 지나 팽창된 우주는 열기가 식어가자, 억눌려 있던 중력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흩뿌려져 있던 수소와 헬륨이 중력에 의해 뭉쳐지면서 최초의 별들이 탄생한다. 고온고압의 별의 중심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며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자들이 만들어졌다. 이때 남는 질량은 빛에너지로 방출되면서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생물의 기본 구성 원자이기도 한 탄소, 질소, 산소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우주와 지구, 그리고 우리 몸에 들어 있는 물을 구성하는 산소는 여기에서 온 것이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려면 초신성 폭발처럼 핵융합보다 더 거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마젤란성운의 초신성 잔해.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을 ‘초신성의 후예’라고 부르는 이유
별의 심장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을 통해 생성 가능한 가장 무거운 원자는 철이다. 그런데 우리 인체에는 철보다 무거운 구리, 아연, 셀레늄, 요오드 등의 미량 원자도 존재한다. 이런 원자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핵융합보다 훨씬 거대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는 초신성(super nova)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초신성은 이름과 달리 새로운 별의 탄생이 아니라 수명을 다한 별의 화려한 죽음이다. 더는 중력의 붕괴를 버틸 수 없는 거대한 별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것인데, 멀리서는 갑자기 밝은 빛이 보이기 때문에 초신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엄청난 폭발의 에너지로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진다. 생성된 원자들은 폭발의 여파로 우주로 산산이 흩어져 먼지가 된다. 그리고 폭발의 충격이 가라앉으면 다시 중력으로 뭉쳐져 철보다 무거운 원자들을 가진 별이 탄생한다. 새로운 별로 진화하기 위한 늙은 별의 화려한 최후가 초신성이다.
요즘 MZ 세대나 이전의 X 세대처럼, 세대의 개념을 사용해 별을 분류할 수 있다. 빅뱅 직후 처음 등장한 별들은 1세대이며, 초신성 진화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별은 2세대로 분류가 된다. 하지만 모든 별이 초신성이 되는 것은 아니고 쓸쓸히 식어가며 죽는 별도 있다. 또한 별은 크기에 따라 수명에도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재 우주에는 1세대에서 3세대의 별들이 모두 존재한다. 빅뱅 이론에 의해 가장 오래된 별은 137억살 정도의 1세대일 것인데, 현재까지 발견된 최고령 1세대의 별은 135억살이다. 최근 활동을 시작한 제임스웹우주 망원경이 빅뱅에 더 가까운 순간에 탄생한 별을 찾아내는 것도 흥미진진한 관심거리다.
빅뱅 이후 수십억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은하계 가장자리에 있던 어느 2세대 초신성이 폭발하였다. 충격이 가라앉자 흩어졌던 먼지 구름이 중력으로 다시 뭉쳐지면서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45.6억년 전 중심부에 3세대 항성이, 긴 팔에서는 8개의 위성이 형성되었다. 우리 태양계(solar system)의 탄생이다. 태양에 가까운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무거운 원자들이 뭉친 암석형 행성이고, 먼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가벼운 원자들이 뭉친 기체 행성인데 여기에는 지각(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번째 행성 지구의 지각에는 47%의 산소와 규소, 알루미늄, 철, 칼슘, 나트륨 등이 풍부하게 존재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모두 이 지구 지각에 존재하던 것들이고, 이들은 빅뱅에서부터 2번의 초신성 폭발을 통해 점차 만들어진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우리 인간을 ’초신성의 후예’라 표현하는 것은 아주 과학적 표현인 셈이다.
탄생 초기 지구에는 생명이 싹틀 수 없는 용암이 끓어 넘치는 지옥도가 펼쳐졌을 것이다. 수소, 헬륨 등 가벼운 기체로 이루어진 최초의 대기는 태양풍과 지구의 열로 우주로 흩어졌다. 중력에 붙잡힌 물질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이를 통해 다양한 화합물(분자)이 만들어져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생성된 원시대기는 지구에서 뿜어낸 메탄, 암모니아와 우주에서 날아온 수증기가 가득했다. 원시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열 에너지는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시켰고, 암모니아에서 질소를 분리시켰다. 산소는 메탄과 반응하여 탄산가스와 물이 생성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기의 주성분은 탄산가스와 질소가 되었다. 수억 년이 지나 지구가 충분히 식자 두꺼운 구름에서 지구 최초의 비가 내렸다. 지구에 바다가 생기고 대기와 비의 순환이 지속되면서 생명의 기본 재료들이 바다로 흘러가 모였다.
원시지구와 테이아가 충돌한 뒤 분출한 물질이 모여 달을 형성하는 장면. 미 항공우주국 제공
지구 환경과 비슷한 행성은 몇개나 될까
그리고 40억년 전 태양계 외부에서 날아온 다량의 운석들이 태양계의 내부 행성을 폭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폭격은 2억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지구의 대기는 두꺼운 구름에서 끝없이 번개가 치는 환경이었고 운석의 충돌은 강력한 에너지를 발생시켜 유기 화합물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었다. 운석의 폭격은 지구의 형제 행성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달의 곰보 자국(크레이터)의 많은 부분이 이 시기 운석의 폭격으로 생긴 것이다. 지구에는 물과 대기의 순환에 의해 운석 자국이 풍화된 반면 대기가 없는 달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지구에는 원시적인 바다가 이미 존재하였고, 운석 충돌 에너지가 유기물로 전환되는 용매 역할을 하였다. 혼란이 끝나고 하늘이 맑아졌을 때 대기의 두꺼운 구름은 유기물로 가득한 바다가 되었다. 생명의 재료가 가득 찬 원시 해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사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는 우주 탐사의 기본은 먼저 액체 상태의 물을 찾는 것이다. 원시 지구에 바다가 존재한 것이 생명체가 탄 생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우주에서 물을 찾기는 쉽다. 수소는 지천으로 널려 있고 산소는 1세대 별이 탄생했을 때부터 계속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체도 기체도 아닌 액체 상태로 모여 있는 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에너지를 뿜어내는 별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골디락스 지역이라고 한다. 골디락스는 ‘곰 세 마리’라는 동화에서 딱 맞는 침대와 음식을 차지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우리 지구가 바로 골디락스 행성이다. 제임스 웹 이전 최고의 천체 망원경인 허블이 찾아낸 행성 3000개 중 30개가 골디락스 행성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지구 환경과 95% 이상 동일한 행성이 최소 일억개가 존재할 것이다. 이 행성 중 물을 품고 있는 것에 생명이 존재할 최소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빅뱅을 통해 만들어진 수소, 1세대 별을 통해 만들어진 산소, 2번의 초신성의 폭발을 거쳐 만들어진 90여종의 원자들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딱 적당한 위치에서 딱 적당한 시기에 탄생한 지구라는 행성. 이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들어맞아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오래 시간을 거쳐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역사에서 아주 특별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의학교육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