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 하남면 거례리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수달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은 뒤 가슴에 품은 채 헤엄을 치고 있다. 화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수달의 조국은 하나다?
녀석들은 철책을 뚫고 월북을 시도할까
녀석들은 철책을 뚫고 월북을 시도할까
▶최고급 모피 감으로 알려진 수달은 역사적으로 수난을 겪었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이런 인간과의 적대관계에 따른 유전자가 형성된 결과다. 고려시대 때 몽골이 수달 가죽 2만장을 요구해 겨우 1000개 정도를 구해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18~19세기 모피산업이 발달하면서 전세계에 흔했던 수달은 멸종위기에 빠진다. 드넓은 캐나다 북극권이 개척된 이유도 사실 배를 타고 오지의 수달 세계를 탐험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선 급속한 도시화로 자연하천이 사라지면서 멸종위기에 빠졌다.
강원도 화천군 거례리의 한국수달연구센터. 이곳은 동물원이 아니다. 전국에서 구조된 수달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고라니는 차에 치여, 박새는 창문에 부딪혀 동물보호소로 가지만, 수달은 한여름 어미를 잃고 이곳에 실려 온다. 한성용 한국수달연구센터 소장의 말이다.
“홍수 때 강물이 불어나면 수달의 강가 보금자리가 물에 잠깁니다. 수달들은 피난을 가는데, 종종 어미가 새끼를 놓치곤 해요.”
“새끼들은 헤엄을 못 치나요?”
“갓 태어난 수달은 보름 동안 시력이 완성이 안 돼요. 석달 동안 어미젖만 먹고 자라고요. 급류를 헤엄칠 능력이 없죠. 새끼 때 부모와 헤어지면 바로 죽는다는 얘기입니다.”
지난달 27일 오후 연못에서 헤엄치던 수달 남매도 지난해 장마 때 전남 해남에서 주민들에게 발견돼 이곳으로 옮겨졌다. 어미는 어딘가로 가버렸고 새끼들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수달 남매는 낮인데도 연못에 나와 놀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이 풀어준 메기를 쫓다가 땅 위에 올라가선 여우처럼 뛰어다녔다.
육지서 바다로, 섬에서 섬으로
수달들의 자유 여행
헤엄쳐서 갈 수 없는 곳은
제주·울릉도 정도로 알려져
그럼 북한엔 갈 수 있나
수달연구센터 2007년 방사땐
배설물 보고 ‘가능성 있음’
이달 오작교에 방사하면
위치추적으로 확인 가능해져 수달은 야간에 운행하는 날쌘 수륙양용 자동차와 비슷하다. 낮에는 강가의 나무뿌리 밑이나 바위 틈새 등에 숨었다가 밤에 나타나 강물을 휘저으며 물고기를 잡는다. 수달이 산다는 것은 강에 물고기가 많다는 것이다. 물고기의 먹이인 식물성플랑크톤과 수서곤충 그리고 양서류, 어류를 거쳐 최상위 포식자인 수달까지 안정적인 먹이 피라미드가 구축됐음을 뜻한다. 최근 들어 대도시 주변 하천에서도 종종 수달 목격담이 전해진다. 2000년대 초반 전북 전주시 전주천에서 수달이 발견돼 화제를 부른 이래 최근엔 대구 신천과 금호강, 광주 광주천 등에도 서식 사실이 보고됐다. 멸종위기에 처한 수달(멸종위기종 1급, 천연기념물 330호)이 다시 많아진 걸까? 한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수달은 전형적인 선형 서식 특성을 보여요. 즉 강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것뿐이에요. 따라서 여러 사람이 봤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수달이었을 거예요.” 이를테면 전주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전주천에 사는 수달은 3~5마리밖에 안 된다. 내 땅 남의 땅 구분이 명확하고 강을 따라 10㎞ 안팎의 영역을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것뿐이다. 오히려 하천 개발로 수달의 절대적 서식공간은 줄어들었다. 수달은 육지와 강물을 수시로 드나드는 특성상 나무와 수풀, 암반이 어우러진 자연형 하천을 좋아한다. 서울의 한강처럼 둔치가 정비됐거나 둔치와 강물에 고도차가 있을 경우 수달이 살기 힘들다. 강 둔치를 획일적으로 정비한 4대강 사업도 수달에게 적지 않은 생태적 충격을 입혔으리라는 분석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08년 전국(육상) 수달조사에서 574개 지점에서 수달 서식을 확인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단편화된 수계별로 소수의 개체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각 무리의 크기가 매우 작고 고립돼 있다”고 밝혔다.
해달이 바다에 산다면 수달은 민물에 산다. 하지만 수달은 바다를 자유자재로 건널 수 있다. 환경부가 2011년 전남 신안과 무안, 목포 지역 무인도 57곳을 조사했는데 18곳에서 수달이 발견됐다. 수달은 섬이 많은 곳에서 섬을 건너다니며 산다. 바다 양식장 물고기가 이들의 공략 대상이다. 물론 마시는 물은 민물이어야 한다. 무인도에 샘이나 시냇물이 있어야 이들이 살 수 있다. 현재 수달이 살지 않는 섬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수달이 감히 헤엄쳐 갈 수 없는 제주도와 울릉도 정도다.
한국수달연구센터는 강원도 화천군 비무장지대 일대의 수달을 조사하고 있다. 이 수달들이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한을 드나드는지가 연구원들의 관심사다. 연구원들은 2007년 남방한계선에 인접한 화천군 평화의 댐 북한강 상류에 수달 두마리에게 브이에이치에프(VHF) 전파발신기를 달아 방사했다. 북한강과 인근 지천을 활발히 오가던 수달은 두달도 채 안 돼 신호가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연구원들은 전파발신기가 보내주는 신호를 찾아 헤맸다. 주변 3㎞ 안에 수달이 있으면 연구원들이 지닌 전파수신기에 표시가 나타난다. 파로호까지 내려가 며칠 동안 기다려봤지만 신호는 없었다. 하류 쪽으로 내려가진 않은 것 같았다. 큰 댐과 호수는 수달이 편안해하는 장소가 아니다. 보통 댐이 축조되면 수달들은 인근 지천으로 서식지를 옮긴다고 한 소장은 말했다. “오히려 상류로 올라갔을 가능성이 컸죠. 남방한계선을 넘어 북한 쪽으로요. 하지만 수달 신호를 받기 위해 철책선을 넘어갈 순 없으니까….”
반세기 전 남북 분단 이후 우리가 휴전선 철책을 넘을 수 없듯 산양, 사향노루, 담비 등 동물도 북으로 넘어갈 수 없다.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은 포유류의 ‘생태 장벽’이 되어왔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남쪽은 남방한계선, 북쪽은 북방한계선에 워낙 촘촘하게 철책을 세웠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무장지대는 인간의 개입이 없는 야생동물의 천국이자 철책으로 에워싸인 야생 동물원이 된 셈이다.
수달은 예외였다. 남방한계선 남쪽 오작교에도 강물을 가로질러 철책이 세워져 있지만, 한 소장이 가서 보니 수달이 충분히 왔다 갔다 할 만한 틈새가 있었다. 주변에 수달의 배설물도 확인됐다. 똥을 싼 수달은 월북한 걸까?
수달 남북공동연구가 시작됐다. 총련 계열의 일본 도쿄 조선대학교의 정종률 교수(교육학부 야생동물연구실)가 북한강 북쪽 지역 연구에 참여했다. 정 교수는 현장을 방문해 간단한 조사를 마쳤고 남쪽의 한 소장과 심포지엄을 준비하던 차, 2010년 천안함 사건에 이어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면서 남북교류가 중단됐다. 한 소장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남방한계선 북한강 하류에 최소 2~4마리의 야생 수달이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이들이 지금도 북한을 드나들 수도 있죠.”
이달 중순 한국수달연구센터는 문화재청과 함께 수달을 다시 방사한다. 구조된 수달에 위성위치추적기(GPS)를 달아 오작교 하류에 풀어줄 예정이다. 사정거리가 3㎞인 기존 브이에이치에프 전파발신기와 달리 위성위치추적기는 멀리서 보낸 신호도 잡아낼 수 있다. 월북한 수달의 이동경로를 남쪽의 수달연구센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수달은 과연 북한으로 넘어갈까?
화천/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원도 화천 하남면 거례리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수달 한 마리가 뭍을 박차고 배를 하늘로 한 채 헤엄치고 있다. 화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수달들의 자유 여행
헤엄쳐서 갈 수 없는 곳은
제주·울릉도 정도로 알려져
그럼 북한엔 갈 수 있나
수달연구센터 2007년 방사땐
배설물 보고 ‘가능성 있음’
이달 오작교에 방사하면
위치추적으로 확인 가능해져 수달은 야간에 운행하는 날쌘 수륙양용 자동차와 비슷하다. 낮에는 강가의 나무뿌리 밑이나 바위 틈새 등에 숨었다가 밤에 나타나 강물을 휘저으며 물고기를 잡는다. 수달이 산다는 것은 강에 물고기가 많다는 것이다. 물고기의 먹이인 식물성플랑크톤과 수서곤충 그리고 양서류, 어류를 거쳐 최상위 포식자인 수달까지 안정적인 먹이 피라미드가 구축됐음을 뜻한다. 최근 들어 대도시 주변 하천에서도 종종 수달 목격담이 전해진다. 2000년대 초반 전북 전주시 전주천에서 수달이 발견돼 화제를 부른 이래 최근엔 대구 신천과 금호강, 광주 광주천 등에도 서식 사실이 보고됐다. 멸종위기에 처한 수달(멸종위기종 1급, 천연기념물 330호)이 다시 많아진 걸까? 한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수달은 전형적인 선형 서식 특성을 보여요. 즉 강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것뿐이에요. 따라서 여러 사람이 봤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수달이었을 거예요.” 이를테면 전주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전주천에 사는 수달은 3~5마리밖에 안 된다. 내 땅 남의 땅 구분이 명확하고 강을 따라 10㎞ 안팎의 영역을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것뿐이다. 오히려 하천 개발로 수달의 절대적 서식공간은 줄어들었다. 수달은 육지와 강물을 수시로 드나드는 특성상 나무와 수풀, 암반이 어우러진 자연형 하천을 좋아한다. 서울의 한강처럼 둔치가 정비됐거나 둔치와 강물에 고도차가 있을 경우 수달이 살기 힘들다. 강 둔치를 획일적으로 정비한 4대강 사업도 수달에게 적지 않은 생태적 충격을 입혔으리라는 분석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08년 전국(육상) 수달조사에서 574개 지점에서 수달 서식을 확인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단편화된 수계별로 소수의 개체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각 무리의 크기가 매우 작고 고립돼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 화천 하남면 거례리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수달 한 마리가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화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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