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10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 사이의 2번째 대국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면서 해설에 나선 프로기사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상하네요. 지고 있는데요. 확실히 이기고 있었는데….” 심지어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 같다”고 했던 수도 나중엔 “멀리 내다본 무서운 수”로 바뀌었다. 아마추어에겐 하늘 같은 프로기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한국 바둑계에 충격과 경악을 안기고 있다. 알파고가 ‘바둑의 신’에 가깝다느니, 이세돌이 한 판이라도 이기면 다행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
먼저 바둑계 걱정부터 해보자. 1997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아이비엠의 컴퓨터 딥블루에 진 이래 체스에서의 인간 우위는 무너졌다. 요즘엔 공짜로 구할 수 있는 체스 프로그램도 딥블루를 이긴다. 그러다 보니 체스 시합이 열리는 곳에선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공항처럼 보안검색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업들이 앞다퉈 알파고와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대중화한다면 프로기사의 지위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은 분명하다. 카스파로프는 2일치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대결을 언급하면서 “바둑이여 잘 싸워라.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썼다.
알파고가 대국 때 구글의 프로그래머를 시켜 바둑돌을 놓는 모습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수족으로 부리는 디스토피아를 떠올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지나친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추론을 통해 사람의 직관을 흉내 내는 인공지능이 탄생한 건 맞지만, 결정하고, 판단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지성의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다.
그보다 당장 걱정해야 할 일이 인공지능의 군사 이용이다. 미 국방부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멀리서 사람이 조종하는 드론이 아니라 도시나 건물 속에서 스스로 목표를 찾아내 공격하는 초소형 비행체를 연구하고 있다. 스튜어트 러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컴퓨터학 교수는 지난해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인공지능의 윤리’ 논문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무기체계는 화약과 핵무기에 이어 무기분야에서 제3의 혁명을 부르고 있다”고 썼다.
물론 인공지능의 미래에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인 자동차, 질병 진단, 금융 상담 등 현실화가 가까운 것부터 박테리아의 섬모를 이용해 헤엄치는 미세로봇이 암세포 부위에만 항암제를 투여해 불필요한 부작용을 막거나 바퀴를 닮은 곤충로봇이 붕괴 현장에 스며들어 생존자를 확인하는 등의 미래기술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바둑만 해도, 알파고의 등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자비한 승부 기계의 등장이 프로에겐 충격이겠지만 바둑 애호가에게는 승부가 바둑의 전부는 아니다. 바둑은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 곧 ‘수담’(手談)이기도 하다. 알파고가 대중화하면 애기가에게는 쉽게 접근할 최고의 사범이 생기는 셈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014년 12월2일 <비비시>와의 회견에서 “인공지능이 완전히 발달한다면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8일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올린 글에서는 “기술발전이 불평등을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며 “로봇보다 자본주의가 더 무섭다”고 했다.
인공지능이란 기술이 악마가 되지 않으려면 이를 현명하게 이용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라 기계처럼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오른쪽)의 대국이 진행되고 있다. 구글 제공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연파하면서 인공지능의 미래에 관한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영화 ‘스타워즈’ 에 나오는 인공지능 로봇 ‘C-3PO’ ‘R2D2’.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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