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가 2018년 캘리포니아 산불 진압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는 최근 발간한 ‘국가준비태세보고서’에서 기후변화, 가뭄, 해수면 상승 등 단어를 아예 삭제했다. Paul Kuroda/Zuma Press E&E News 제공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해마다 발간하는 ‘연방준비태세보고서’에서 ‘기후변화’라는 문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는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가뭄’과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단어들도 삭제됐다.
연방재난관리청이 지난해 발간한 8차 ‘국가준비태세보고서’(National Preparedness Report)를 보면, 기후변화와 가뭄, 해수면 상승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국가준비태세보고서는 재난이나 재해, 테러 등에 대한 취약성을 진단하는 보고서로 연방 기관들이 이를 근거로 대비책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환경과 에너지 분야 정책 뉴스 등을 다루는 온라인 매체인 ‘이엔이 뉴스’(E&E News)는 “보고서에 ‘climate’라는 단어가 한 번 나오는데 학교 폭력 근절 항목에서 ‘학교풍토’(school climate)라는 용어에 들어 있다”고 보도했다.
가뭄(drought)와 해수면 상승(sea-level rise)도 보고서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보고서는 100명의 사망자를 낸 2018년 캘리포니아 산불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산불은 숲들을 불쏘시개로 만든 장기 가뭄 때문에 발생했다.
정부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이 배제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3월 발표된 연방재난관리청의 ‘2018-2022년 전략계획보고서’에서도 4년 전에 발간된 이전 보고서에는 들어 있던 기후변화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의회 요청에 따라 해마다 발간되는 연방준비태세보고서는 연방과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과 비영리단체들한테 지침을 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처음 발간된 보고서는 당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연방정부 기구들이 슈퍼태풍이나 폭염, 가뭄 등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추동하는 구실을 했다.
2016년 3월 발간된 오바마 행정부의 마지막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공공시설을 파괴하고 질병 확산에 기여하며 식량공급을 막아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가뭄과 해수면 상승에 따른 피해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7년 8월 발표된 현 정부 첫번째 보고서는 기후변화 위협에 대해 언급 없이 단지 연방정부 부처들의 임무를 기술하는 데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몇 차례 사용한 것에 그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고서는 가뭄과 해수면 상승의 위험에 대한 경고는 여전히 반복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18년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대한 언급을 거의 배제했으며 가뭄이라는 단어도 연방정부의 재난구호프로그램을 설명할 때만 사용했다.
2019년 보고서에서는 홍수와 들불, 허리케인 등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는 기술하고 있음에도 세 단어는 완전히 빠졌다. 보고서는 250억달러의 재산피해를 발생시킨 2018년의 플로렌스와 마이클 허리케인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정부 기관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와 같은 연방정부 기관들은 기후변화와 극한 기상 현상에 대한 경고를 계속하고 있다. 2018년 말에 발표된 정부의 ‘2018 국가기후평가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극한 기상 현상을 더욱 강하게 빈발시키고 있으며 사회기반시설과 생태계, 사회제도에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