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슬양(오른쪽) 가족이 집에 보관해둔 〈한겨레신문〉 창간호를 펴놓고, 7년 전 한슬이와 한겨레신문이 함께 세상에 나오던 날을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강창광 기자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95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23면
"아빠 엄마가 좋아하는 한겨레신문을 저도 사랑해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깜찍한 축사를 던진 조한슬(7.숭인국1)양은 <한겨레신문>과 동갑내기다.
새 신문 창간을 위한 기금모금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아버지 조탁준(38)씨의 영향 때문인지, 한슬이는 출산예정일을 닷새나 늦춰 한겨레신문 창간호가 나온 88년 5월15일 태어났다.
"한슬이를 낳은 날 아침 한겨레신문이 제대로 나왔는지가 가장 궁금했다"는어머니 백정선(36)씨는 "큰아들 휘성(8)이를 낳은 날이 삼일절이었는데 한슬이 생일도 "경축일"과 겹쳐버렸다"며 웃었다.
한겨레신문 창간일에 딸이 태어나자 조씨 부부는 딸의 이름을 순한글로 짓기로 했다.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아오신 한슬이 할아버지가 의외로 순순히 한겨레신문처럼 순한글로 손녀 이름을 짓는 걸 허락하셨어요." 자질구레한 병치레없이 잘 크던 한슬이가 몹시 아팠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한겨레신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였다.
"애가 두살 때 몹시 아파 고생을 한 적이 있어요. 한겨레 리영희 논설고문이 북한취재 계획 때문에 구속될 바로 그 무렵이었지요." 한슬이는 그 뒤로는 큰 탈없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 어엿한 국민학교 1학년 어린이가 됐다.
"학교에 들어간 뒤엔 늦잠을 못 자는 게 제일 속상해요." 한슬이는 지난해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으로 이사하면서 충남 온양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피아노를 치는 걸 가장 좋아한다. "신문에선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본다"는 한슬이는 피아니스트가 꿈이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한슬이 아버지의 바람은 좀 다르다.
"한슬이가 대학에 갈 때쯤이면 한겨레신문도 청년기를 맞게 되고, 그때는 한슬이도 한겨레신문에서 일을 했으면합니다." 한슬이네 가족은 아버지 조씨가 창간 때 연차수당으로 한겨레신문 주식 2백주를 구입했고 어머니가 따로 50주를 산 뒤 큰아들 휘성이와 한슬이, 막내 휘찬이(2)도 생일선물로 50주씩을 받아 모두가 주주이기도 하다.
요즘 한겨레신문이 <한겨레 21>과 <씨네 21>을 발행하고 각종 문화사업을 펼치는 걸 보면 사세가 크게 확장된 것 같아 기쁘다는 아버지 조씨는 "밝고 맑게 자라는 한슬이처럼 한겨레신문도 창간 때의 순수함을 계속 유지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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