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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카이브

나를 키워준 8할은 ‘한겨레’라는 친구

등록 2018-05-23 17:15수정 2018-05-29 10:03

‘수도권 거주 30대 사무직 남성’ 창간독자 조준범씨. 이종근 기자
‘수도권 거주 30대 사무직 남성’ 창간독자 조준범씨. 이종근 기자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2003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51면

매일 아침 <한겨레>를 통해 세상을 읽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한겨레>가 그동안 축적한 독자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이들의 핵심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 사무직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나이 30~39살(전체 독자의 36.6%), 거주지역은 서울과 수도권(〃 52.5%), 학력은 대졸 이상(〃 50.8%)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을 담당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창간독자 조준범(35·경기 성남시 구미동)씨를 통해 이들의 생각과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88학번 창간독자. 15년 흘러 이젠 어엿한 회사원이자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요즘도 출근길엔 <한겨레>가 동행해 세상고민을 나눈다. 그 든든한 버팀목이 디제이 정권 때 흔들리는 모습도 봤다. 하지만 그에 대한 믿음은 변함없다. 앞으로도 ….

나이 서른다섯, 아파트에 살며 승용차 소유, 대학생 시절엔 운동권, 지금은 대기업 과장. 인터넷 프로, 로또복권 단골 구매, 주식 투자.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과외엔 부정적. 동성애나 페니미즘에 대해선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

<한겨레> 창간독자 조준범씨의 프로필이다. 조씨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기둥으로 성큼 자란 '진보적 생활인'을 대변했다. 그는 매사에 가치를 따지지만 집착하지 않으며, 변화를 꿈꾸되 원칙을 놓치지 않는다. 첨단 흐름에 민감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낙원으로 바꿀 것이라는 환상은 품지 않는다.

그는 항상 '사회적 고민'과 '개인적 소망' 사이에서 묘수를 찾는다.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기억들을 거두고 다져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빚는다. <한겨레>는 그렇게 빚어낸 인생의 동반자다. "아침 6시30분께 집을 나서면서 <한겨레>를 집어듭니다. 회사로 가는 좌석버스 안에서 꼼꼼히 읽죠. 그런 게 벌써 6년째네요."

그는 <한겨레>가 태어난 1988년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멋모르던 1학년 때 창간호를 읽은 기억이 새롭다. 세상을 달리 보는 혈기왕성한 친구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친구가 패기를 잃은 것 같다. "김대중 정권 이전까지는 막 벼려낸 칼처럼 날카로웠어요. 한데 그 뒤로는 날이 많이 무뎌진 것 같아요."

조씨는 대학 시절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학회에서 사회문제를 고민하면서 집회와 시위현장을 들락거렸다. 그렇다고 세상을 온통 '적'으로 돌리진 않았다. 변화에 맞서는 힘들을 향해 젊음이 뿜어내는 열정과 불만을 던졌던 것 같다. 그나마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앞두고서는 취업준비에 쫓겨 학생운동과 거리를 뒀다.

그는 세 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두 번은 '꽝'이었다. 92년 백기완, 97년 권영길 후보는 그의 바람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진보적 선택'에 대한 '보수적 결과'는 한동안 그를 심란하게 했다. 이번 대선 때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당선 가능성도 염두에 뒀습니다. 노무현 개인에 대한 신뢰도 한몫했죠.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된 것은 그게 처음입니다."

지난해 6월 한-일월드컵 때 그는 '붉은 악마'였다. 거리에서 미친 듯이 손뼉을 치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여름 땡볕보다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한 달을 보냈다. 대학 1학년 때 열린 서울올림픽을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라며 냉소적으로 지켜봤던 그로서는 놀라운 변화였다. 지금도 그때의 흥분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나 자신도 그렇게 광적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치색이 없는 순수한 스포츠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것 같아요. 많은 이들과 함께한다는 느낌도 참 좋았습니다." 월드컵에 이어 '촛불시위'가 세상을 달궜다.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숨진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촛불시위에 그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회사일에 바빠 몸까지 움직이진 못했다. 전국 곳곳에서 평화적으로 펼쳐진 촛불시위를 보면서 우리의 시민의식이 한층 성숙했음을 확인한 것은 큰 기쁨이었다. "한국인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숙이 용암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제어할 줄 아는 시민의식도 놀랍습니다."

요즘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교육문제'다. 두살배기와 세살배기 딸을 두다 보니 유아교육 책에도 손이 곧잘 닿는다. "우리나라 교육만 생각하면 답답하다"는 그는 조기유학에 대해 냉정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교육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영어교육을 위한 조기유학은 반대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은 것은 부모라면 당연한 소망 아닐까요?"

그는 모든 형태의 차별에 거북함을 느낀다. 동성애자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근거 없는 편견이나 선입견의 표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줄 만큼 우리 사회의 폭이 넓어졌다고 믿는다. 특히 두 딸을 키우다 보니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이 돋는다. "페미니즘에 대해선 앞으로 꽤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여성들에게 불리한 삶을 강요하는 불평등한 구조가 뿌리내리고 있어 걱정스럽습니다."

그는 로또복권을 10회차부터 꼬박꼬박 산다. 허황한 '대박' 꿈보다는 자신을 계발하고 이웃도 도울 수 있는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 크다. "돈이 생기면 세계여행을 1년쯤 하고 싶어요. 사회복지재단도 만들고 싶고요." 97년부터 주식 투자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큰 재미는 못봤다. 경제동향에 대해 좀더 알게 됐다는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주말이면 자동차를 몰고 아내와 여행도 다니고 등산도 즐겼다. 얼마 전부터는 물건을 살 때도 양보다는 질을 따지곤 한다. 최근에는 유기농산물이나 환경상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직장을 떠나면 무엇을 하고 살지 아직은 헛갈린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싶기도 하고,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그는 요즘 두 딸이 빨리 커서 함께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글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그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은?

● 대학시절
이른바 ‘운동권’. 사회적 고민과 개인적 소망 사이의 갈등도 많았다.

● 대선
92년 백기완, 97년 권영길, 급진적으로 투표했지만 지난해 노무현 후보를 믿고 찍었다.

● 교육
영어 조기유학은 반대하지만 잠재능력 끌어주는 나라서 교육시키고 싶은 건 당연한 소망.

● 페미니즘
두 딸을 키우다 보니 여성에 대한 불평등 구조가 새삼 걱정스럽다.

● 주식투자
6년째 하면서 돈은 못 벌었다. 경제공부에 치르는 대가라고 여기며 자족한다.

● 소비생활
양보다 질을 따지고 수입이 감당할 정도의 합리적 소비라면 찬성.

● 여가생활
주말이면 가족과 여행을 즐기는 편. 일을 열심히 하려면 충분히 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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