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영국 글래스고를 찾은 영국 청소년 제시 스티븐스(17)가 COP26 회의가 열린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SEC) 내부에 서서 웃고 있다. 김민제 기자
“COP26 내에서 지도자와 대표단이 화석연료 허용을 두고 정교한 단어와 싸우는 모습에 당혹감을 느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영국 글래스고에는 굳이 고생스러운 방법을 택해 회의장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 기후위기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탄소 배출 없이 이동하기 위해서다. 몸과 마음으로 COP26의 성공을 응원한 이들에게 이번 COP26은 당황스러운 결과를 안겨줬다. 석탄 화력 발전의 단계적 감축과 개발도상국을 위한 재정 지원에 동의하지 않는 강대국들을 보면서 좌절한 이들이 많다.
영국 남부 데본에 살고 있는 청소년 제시 스티븐스(17)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하루 50~70마일가량 자전거를 타고 지난달 20일부터 31일까지 약 12일 만에 글래스고에 도착했다. COP26의 최종 선언문이 공개된 이후 참가국들과 기후운동가들 사이에 실망감이 감도는 것과 다르지 않듯이, 그도 COP26이 폐막된 14일 “COP26의 최종 회의 결과는 극도의 좌절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제시는 지난 4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대면 인터뷰에서 자전거를 타고 COP26을 찾기로 계획한 것은 1년여 전이라고 말했다. 환경보호를 위해 2년 전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는 그는 회의 소식을 듣고 글래스고로 갈 방법을 고민했다. 기차보다는 싸고 걷는 것보다는 빠른 자전거를 택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대체 교통수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려는 뜻도 있었다. 제시는 “지구에서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 사람으로서 내 미래에 대해 굉장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려면 행동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집 근처인 데본 언덕길에서 하루 30~50마일씩 자전거를 타며 훈련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피플페달파워’(People Pedal Power)라는 이름의 지속 가능한 교통을 요구하는 운동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글래스고로 오는 12일 동안 제시는 “들뜨고 긴장됐고 한편으로는 슬펐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 자전거를 타고 통과하는 마을 주민들의 응원과 환대를 받을 때는 힘을 얻었지만, 난폭한 운전자들이나 자전거로 돌아다닐 수 있는 기반 시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서글펐다. 제시는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 같았다”며 “힘들게 오랜 기간 자전거를 타고 회의장에 왔는데, COP26 내의 몇몇 협상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는 사실도 날 슬프게 했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탄소배출량이 많은 전용기를 타고 회의장을 오가는 세계 정상들의 모습도 제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온 이들은 이해하지만, 가까운 거리도 전용기를 타고 오가는 유럽 국가 정상들의 모습들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제시는 2주 간 회의장인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SEC)와 시위 현장 곳곳을 다니며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원주민과 청소년들을 비롯해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체가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지만, 지난 13일(현지시각) 최종 선언문을 통해 나온 결과는 바라던 바와 거리가 멀어 좌절했다고 했다. 제시는 “이번 회의의 결과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며 “극도의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 결과가 알려진 직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도 “깨끗한 공기, 식량과 물 안전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회의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매우 낙관적이다. 나는 사람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희망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래스고/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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