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서 연구하고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 연합뉴스
정부가 8000억원을 투입하고 지난해 중단시킨 사용후핵연료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SFR) 국책 연구개발사업의 재개와 종결 여부를 판가름할 검토위원회에 관련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한 연구자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중립적이기 어려운 연구자를 검토위에 넣어 연구 재개로 결론을 몰아가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9월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 연구개발 적정성 검토위원회’(적정성 검토위)를 출범시켜 이 사업을 재개할지 계속 중단할지 검토를 맡겼다. 적정성 검토위 위원은 기존의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 연구개발 재검토위원회’(연구개발 재검토위) 위원 7명에 원자력과 경제 전문가 각 1명을 추가해 꾸렸다.
2017년 연구개발 재검토위를 구성할 때 과기부는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며 위원 전원을 물리, 화학, 기계 등 비원자력 분야 전문가로 위촉했다. 따라서 이번에 위촉된 원자력 전문가는 재검토위의 유일한 원자력 전문가여서 검토위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과기부는 위원회 요청이라며 추가된 전문가가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겨레>가 국회와 관련 전문가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추가된 원자력 전문가는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윤종일 교수로 확인됐다.
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연구정보서비스 사이언스온으로 검색해보면, 윤 교수는 “사용후핵연료에 남아 있는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파이로 건식처리기술과 소듐냉각고속로를 도입해 안전적으로 재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2010년부터 3년 간 진행된 ‘사용후핵연료 안전적 재순환’ 연구의 연구책임자였다. 이 국가 연구개발 과제인 이 연구에는 △사용후핵연료 파이로 건식처리기술 연구 △소듐냉각고속로 노심 및 핵연료 집합체 설계 △소듐냉각고속로 에너지 변환 사이클 연구 등이 포함돼 있다.
윤 교수는 또 과기부가 2011년부터 3년 간 매년 1억원씩 지원한 ‘파이로 전해정련 및 전해제련 공정’ 관련 국가 연구개발 과제 연구에서도 연구책임을 맡았다. 이 연구는 파이로프로세싱의 핵심인 사용후핵연료 전기분해 기술의 성능 평가와 전체 파이로 공정의 물질수지흐름 평가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이뤄졌다. 키스티 연구정보서비스에서 검색되는 윤 교수 참여 국가 연구개발 보고서 14건 가운데 최소 5건이 윤 교수가 연구책임자인 파이로프로세싱 관련 연구보고서다. 윤 교수가 이끄는 카이스트 방사화학 및 레이저 분광 연구실 누리집을 보면, 이 연구실에서는 비교적 최근인 2017년까지도 파이로 연구를 주도하는 원자력연구원(KAERI) 지원으로 파이로 관련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돼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 연구개발 적정성 검토위원회 위원인 카이스트 윤종일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던 ‘사용후핵연료의 안전적 재순환’ 국가 연구개발 과제 보고서 일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 연구개발 적정성 검토위원회 위원인 카이스트 윤종일 교수가 과기부로부터 3년간 3억원의 연구비를 받아 진행한 파이로 관련 국가 연구개발 보고서 일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과기부는 윤 교수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에 참여한 것을 몰랐다는 설명이다. 권기석 과기부 원자력연구개발과장은 “그것까지는 확인을 못했다. 원자력학회에 파이로 전문가라기보다는 적정성을 검토할 수 있는 전문가 추천을 요청해 3배수를 받아, 학회 추천을 신뢰하고 위촉했다”고 말했다.
과기부를 대신해 검토위원 위촉 실무를 진행한 한국연구재단 쪽은 연구 경력 검토를 했지만 문제가 없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강보선 연구재단 원자력단장은 “윤 교수에게 (파이로 관련) 정부 과제로 나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강 단장의 설명대로면 연구재단은 인터넷 검색만으로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조사도 안 한 셈이 된다.
정작 당사자인 윤 교수는 자신이 파이로프로세싱 관련 연구를 해온 사실을 인정하며 과기부와 연구재단 쪽과 상반된 설명을 했다. 윤 교수는 객관성과 중립성에 대한 의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원자력 전문가가 들어가면 외부에서는 의견을 어떤 한 방향으로 주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 좋은 방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연구 분야에 경험과 이해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에서 핵물질을 분리하는 기술이고, 소듐냉각고속로는 냉각재로 일반 원전에서 쓰는 물 대신 소듐(나트륨)을 사용해 이 핵물질을 연료로 태우려는 원자로다. 정부는 파이로와 고속로가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의 부피와 독성을 줄여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1997년부터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적 타당성과 경제성이 부족하고 핵확산 위험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7년 구성한 연구개발 재검토위의 권고대로 지난해말 예산 지원을 끊어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탈핵법률가모임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는 “과기부가 파이로와 고속로 연구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적정성을 검토하는 위원회에 정부 연구비를 받아 관련 연구를 수행했고, 정부 지원이 재개될 경우 또 수행할 가능성이 있는 연구자를 위원으로 추가한 것은 적정성검토는 말뿐이고 이미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훼손된 위원회는 파이로 고속로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고,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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