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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관리비가 뛰었다, 기후정책 고민이 깊어진다

등록 2022-02-27 09:59수정 2022-02-27 10:07

[기후 청년의 런던 견문기⑤]
3일 영국 런던의 한 주택의 전기요금 계량기. 국제적으로 에너지값이 급등하면서 영국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전기요금의 상한선을 54% 인상할 예정이라고 이달 초 밝혔다. EPA/연합뉴스
3일 영국 런던의 한 주택의 전기요금 계량기. 국제적으로 에너지값이 급등하면서 영국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전기요금의 상한선을 54% 인상할 예정이라고 이달 초 밝혔다. EPA/연합뉴스

함께 사는 룸메이트들과 요즘 가장 큰 근심거리는 작년부터 계속 오르고 있는 집 관리비다. 집을 계약할 때만 해도 부동산 쪽은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을 포함해서 1인당 30~40파운드가량(한화 약 5~6만원)의 관리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게 설명했다. 그런데 런던에 온 지 불과 한 달 만에 매달 평균 50파운드(약 8만원)를 관리비로 지출하고 있다. 유학생 비비안(31)도 나와 사정이 비슷하다. 비비안은 “작년 마지막 분기에 1200파운드를 관리비로 냈다. 믿을 수 없이 너무 비싸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털어놨다

집 관리비가 오른 이유는 영국의 오프젬(전력 가스시장 규제청·Office of Gas and Electricity Markets, Ofgem)이 작년부터 도매 에너지 시장가 상승에 따라 6개월마다 조정하는 가격 상한선을 올렸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에너지 가격이 상승한 이유는 영국 전력 발전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천연가스를 일부 직접 생산하고 나머지는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에서 주로 수입하는데 2020년과 지난해 유럽의 혹한으로 가스 비축률이 낮아졌고 아시아 지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요가 늘면서 가스 가격이 치솟았다. 같은 시기 바람도 약해 풍력발전의 이용률을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올해 2월 기준 2020년 이후 31개의 민간 에너지 공급업체가 문을 닫았고 시민들은 높은 에너지 가격을 부담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력공사가 에너지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민간 에너지 공급업체들이 오프젬이 정한 상한선 내에서 소비자들과 개별 계약을 체결한다. 설상가상으로 오프젬은 올해 4월부터 상한선을 54% 인상할 예정이다.

2020년 7월부터 12월까지의 영국 평균 가스 요금은 유럽연합 다른 나라들의 가격보다 낮다고 강조하고 있는 자료. 오프젬 자료
2020년 7월부터 12월까지의 영국 평균 가스 요금은 유럽연합 다른 나라들의 가격보다 낮다고 강조하고 있는 자료. 오프젬 자료

에너지 가격뿐만 아니라 영국의 이례적인 인플레이션은 에너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런던에 거주 중인 라라(23)는 “연료 가격이 오르면서 시민들은 식비와 난방비를 줄여야 하는데 셸(석유 기업)은 8년 만에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정부가 기후 목표를 세웠지만 석유회사들은 돈을 벌고 한쪽에서는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서 매우 불공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영국의 기후정책을 도마 위에 올렸다. 영국의 보수당은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에너지 비용에 부과되는 환경부담금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국 진보매체 <가디언>은 보수당이 주도했던 그린딜이 기존 에너지 효율 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특히 건물 부문의 에너지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오래된 건물이 많은 영국에서 에너지 효율 강화에 필수적인 단열재 설치 등의 조치들은 그린딜 이후 급감하면서 영국 기후단체 ‘카본브리프’에 따르면 국가적으로 약 25억파운드(한화 약 4조614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 런던 시민 다니엘라(32)는 “녹색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왜 이번 사건으로 기후정책이 위축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다.

단기적으로 부가가치세를 삭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에너지 비용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에너지 도매가를 안정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불안정한 에너지 시장을 두고 재생에너지의 공급 안정성을 비판하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환경 전공생이자 에너지 컨설턴트인 벤자민(27)은 “이번 에너지 위기는 전력 발전원 리스크 제어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가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예상치 못한 환경적 변수를 고려했을 때 적은 리스크를 가진 재생에너지가 영국의 에너지 자립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에너지 위기는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잘못된 기후정책이 사회적 비용을 얼마나 증가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래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기존 친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규제들의 환경 건전성을 점검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확대되기를 소망한다.

지난달 19일 영국 런던의 슈퍼마켓에서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영국의 인플레이션 수치는 거의 30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영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2월에 5.4%로 올랐다. 에너지 가격 상승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영국 런던의 슈퍼마켓에서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영국의 인플레이션 수치는 거의 30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영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2월에 5.4%로 올랐다. 에너지 가격 상승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참고 기사·자료

https://www.carbonbrief.org/analysis-cutting-the-green-crap-has-added-2-5bn-to-uk-energy-bills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2/feb/16/tory-mps-high-energy-bills-net-zero-scrutiny-group

Failed UK Energy Suppliers Update https://www.forbes.com/uk/advisor/energy/failed-uk-energy-suppliers-update/

UK Energy Brief 2021

박소현 런던대 대학원생(환경 전공)·기후싸이렌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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