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 저자들이 2019년 8월 스위스에서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 작성을 위해 토론을 하고 있다. <네이처> 제공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저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성 불균형과 차별은 여전히 심한 것으로 분석됐다.
28일 발표된 6차 아이피시시 실무그룹2(영향, 적응 및 취약성) 보고서에 참여한 저자 가운데 40%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 아이피시시 저자의 여성 비율로는 가장 높은 것으로, 6차 보고서 가운데서도 실무그룹1(기후과학)의 27%, 실무그룹3(완화) 31%보다 많다.
1990년 1차 보고서 때 전체 저자의 8%만이 여성이었던 데 비하면 6차 보고서에서는 그 비중이 33%까지 늘어났다. 이는 아이피시시가 운영 규칙에 저자를 구성할 때 학문 분야 및 지역과 더불어 젠더도 고려할 것으로 규정해놓은 데서 비롯한 결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고위직에서는 여성 비율이 낮아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지난해
<로이터>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후 과학자 1000명을 선정해 발표했을 때 상위 50위 안에 든 여성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전체에서도 여성은 12%에 그쳤다.
여성 참여 확대 등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이피시시 활동과 관련한 성 편견과 차별이 존속하고 있다고
<네이처>가 아이피시시 설문조사 보고서를 인용해 지적했다.
아이피시시는 2019년 ‘젠더에 관한 태스크 그룹’을 구성해 보고서 저자 15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바 있다. 533명의 응답자 가운데 4분의 3 이상이 성 균형이 개선됐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79%는 의사결정의 투명성에 관해 긍정적으로, 89%는 학습 경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적어도 4분의 3은 존중하고 경청하고 전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훌륭하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후보자 지명, 발언, 콘텐츠 구성, 챕터 주도 등의 기회가 모든 사람한테 평등하게 부여된다는 데 대한 동의율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15% 적었다. 일부 설문 응답자는 “여성이 배제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여성 숫자가 증가한다고 해서 항상 영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남·여 모두)이 남성 과학자들이 토론과 저술을 지배한다고 답변했다. 여성(64%)은 남성(78%)에 비해 모든 사람의 견해가 토론에서 표현된다는 데 적게 동의했다.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자신이 성적 편견이나 차별을 경험하거나 관찰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지만, 다른 사람의 차별을 목격했는지에 대한 답변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15% 많았다.
다른 사람이 여성이 제안한 공적을 가로채는 것을 목격했다는 응답에서도 여성(38%)이 남성(24%)보다 많았다. 또 여성이 무시당한 것을 목격했다는 답변(여성 52%-남성 30%), 여성을 얕잡아보는 것을 봤다는 답변(41%-27%)에서도 차이가 났다.
여성의 약 3분의 1은 누군가로부터 적어도 한번은 자신이 단지 여성이어서 아이피시시에 참여하고 있다는 암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응답자의 8%는 자신이 아이피시시 활동 중 성희롱을 당했으며, 11.5%는 (다른 사람이) 성희롱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 가장 크게 방해를 받는 여섯 가지로 시간 부족(55%), 보육 의무(33%), 다른 사람한테 도전할 자신감 결여(32%), 컴퓨터나 연구자료 접근 어려움(31%), 자국의 재정 지원 부족(31%), 작문 능력 한계(24%) 등을 꼽았다. 이 가운데 보육 의무가 장애라는 답변은 여성(44%)이 남성(24%)에 비해 두 배였다. 또 다른 사람한테 도전할 자신감 결여 항목에 대한 응답률에서도 여성(40%)이 남성(26%)보다 훨씬 높았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연구팀도 2018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이피시시 여성 저자 가운데 14%가 성·인종 차별을 겪었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