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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진정한 민주주의가 기후위기를 막는다

등록 2022-03-06 11:49수정 2022-03-06 12:21

[조천호의 파란하늘]
경제성장이 유일한 생존 방식 아니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오늘날 지구는 전 세계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으로 인한 소수의 과잉된 욕망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결국 소수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달리는 이 문명은 기후위기로 더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하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삶은 힘겹다. 소수에게 부를 몰아주고 대부분의 사람은 생존경쟁에 시달린다. 그래도 우리는 경제성장이 멈추면 이 세상이 멈출 것이라는 불안에 떨고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소득이 늘지 않고 소비도 늘지 않으며, 생산과 고용이 줄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절대적인 목표가 되었다. 좌파와 우파의 정치인은 성장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놓고 다투어도 성장 자체를 추구하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경제성장은 좌우를 떠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가장 패권적인 이념이다.

정치, 경제와 언론 대부분은 높아지는 파도가 모든 배를 밀어 올리듯 경제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외친다. 그러나 무슨 대가를 치르고 성장이 계속될 수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에너지와 물질의 증가

경제성장은 에너지와 물질의 증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현재 전 세계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3%이다. 2000년을 시작으로 매년 3%씩 성장한다면 경제 규모가 2100년 20배, 2200년에 370배, 2300년에 7,000배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경제성장을 하는데 인간의 두뇌와 근육의 힘만으로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만큼 더 에너지와 자원을 지구로부터 빼 써야 하고 그만큼 더 온실가스와 오염 먼지를 내뿜고 쓰레기를 쌓아야 한다. 우리는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하여 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1970~2013년 전 세계 물질 발자국(왼쪽). 1990~2013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와 물질 발자국의 변화 비율(오른쪽). 출처=Materialflows.net/World Bank
1970~2013년 전 세계 물질 발자국(왼쪽). 1990~2013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와 물질 발자국의 변화 비율(오른쪽). 출처=Materialflows.net/World Bank

생명은 성장한다. 하지만 스스로 성장을 제한하려는 메커니즘도 작동한다. 아이가 성숙한 후에는 건강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농작물이 다 자라 익으면 수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이 자라고 성숙하는 방식이다. 계속 성장한다면, 세포 스스로 계속 복제되는 암처럼 죽음에 이르게 된다.

골고루 나눈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생계를 해결하고도 남아돌 정도로 이미 많이 생산하고 있다. 지금 경제성장은 필요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많은 물질을 욕망하고 축적하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자원은 낭비되고 환경은 파괴되고 있다. 과잉된 경제성장은 자연에 의존하면서도 그 모태인 자연을 파괴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해치는 성장이 결국 인간을 해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지구의 유한함을 넘어서면, 지구는 인류 진보를 위한 착취 대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을 붕괴시킬 수 있는 주체로 바뀐다. 지구 스스로 인류 생존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고 지구에 넘겨주게 된다. 여기에 실존적 공포를 느껴야 한다. 한가롭게 경제성장의 둔화를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것처럼,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착취가 일어난다. 자연에 대한 착취는 곧 인간에 대한 착취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선진국이 전 세계 에너지 70% 이상을 소비한다. 가장 부유한 1% 사람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인류 전체의 노동, 모든 자원과 에너지 중 4분의 1은 부유한 사람이 더 부유해지는 데 사용된다.

1980년 이래 40년 동안, 전 세계 경제성장으로 인해 증가한 소득의 46% 이상이 가장 부유한 5%에게 돌아갔다. 반면 전체 인구 중 가난한 60%는 소득이 매년 평균 3%씩 늘었는데 세계 총소득의 대략 5%에 불과했다. 성장론자가 외치는 ‘성장의 낙수효과’라는 게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세계 부자 10%가 온실가스 50% 배출

옥스팜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부유한 10%가 온실가스의 약 50%를 배출한다. 이는 전체 인구 중 가난한 50%에 속하는 사람보다 11배, 그리고 가장 가난한 10%보다 60배 더 배출하는 것이다. 가장 부유한 1%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10% 사람들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175배나 더 많다. 부자들의 돈은 커다란 저택, 큰 승용차, 개인 전용기, 잦은 항공 여행, 장거리 휴가, 사치품 등에 사용되며 여기서 온실가스가 대량 배출된다. 그 예로 1%의 부유한 사람이 상업용 항공기 이산화탄소의 50%를 배출한다. 이는 부유한 사람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호화로운 삶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과잉 배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는 에너지와 자원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는 사람들의 과잉 소비와 그에 대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아 일어나는 재앙이다. 반면 거의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기후위기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부당하고 불평등한 세상이기에 기후위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부자에 대한 높은 세금은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막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다면, 미래세대에게 생존은 불평등과 기후위기로 고통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경제 파이는 계속해서 더 커질 수 없다. 파이가 커지지 않아도 지구는 우리 모두를 위한 자원과 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기후위기 문제는 분배의 문제이며, 분배 문제는 곧 정의의 문제이다.

제이슨 히켈이 쓴 <적을수록 풍요롭다>에서 한정된 자원을 미래 세대와 어떻게 나눌지에 관한 하버드대와 예일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실험에 참여한 68%의 사람들은 자기 몫의 일부를 미래 세대가 사용 쪽을 택했다. 나머지 32%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 몫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두지 않았다. 이 이기적 소수로 인해 미래 세대에게 적은 자원만 남기게 되어 네 세대 만에 자원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이것이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통해 집단적으로 자원 사용을 결정하게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타적 68%가 이기적 32%를 통제하여 미래 세대에게도 자원이 전혀 줄지 않는 지속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불평등이 민주주의 파괴

분명 우리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는데 왜 이와는 다른가? 우리 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평등해질수록 부유층의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더욱더 지배한다. 결국 이것이 민주주의를 파괴해버렸다.

정치에서 부유층의 기득권을 붕괴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부유층의 기득권이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막지도 못하게 해 이 세상이 붕괴할 것이다.

성장은 모두가 힘을 합치면 되는데, 나눔은 가진 자신의 욕망을 다스려야 가능하다. 이것은 가진 자의 선의에 맡겨 두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소수에게 유리한 현재 민주주의를 다수에게 유리한 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한다.

인류는 민주주의를 통해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까지 하던 그대로 에너지와 자원, 그리고 인간을 착취하는 세상이 아닌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선택해야 한다.

기후 과학은 오늘날 지배적인 세계관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이 세계관은 지구가 자원과 에너지를 무한히 공급하고 지구에 온실가스, 오염먼지와 쓰레기를 맘껏 배출할 수 있다는 데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현할 수 없고, 실현하려 해서도 안 되는 판타지일 뿐이라고 기후 과학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과거에 과학은 주류 세계관과 충돌하기도 했다. 결국 그 충돌로 세계관이 바뀌었다.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등장하여 지구가 우주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를 통해 인류는 더욱 진실에 가까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오늘날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경제성장으로 생산은 과잉이지만 불평등으로 나눔은 부족하여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 기후위기가 인류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이런대도 경제 성장의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을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관을 바꿀 것인가? 기후위기는 천동설 시대처럼 과학을 무시하고 핍박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경제성장과 탄소중립 동시달성 불가능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은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경제성장은 수단이 될 수 있어도 절대적 목적이 될 수 없다. 탄소중립은 생존을 위한 지구 위험한계이므로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불평등이 과잉 탄소 사회를 조장하므로 탈 탄소 사회는 불평등 사회와 함께할 수 없다.

이런 세상은 인류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새 세상이기에 그 달성에 우리 대부분은 회의적으로 여긴다. 이처럼 곤혹스럽고 복잡한 상황은 세계관이 바뀔 때마다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세계관이 바뀌면 세상이 명확하고 단순해진다. 여기에서 창의적인 힘이 솟아나 더 좋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도록 이끈다.

지동설을 받아들이기 이전, 지구가 우주 중심이라고 여겨 행성 운동을 복잡하게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받아들인 이후, 모든 행성 운동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이 유일한 생존 방식이라는 헛된 희망을 버려야 우리는 참다운 다른 희망을 열 수 있다. 이후에는 안전한 지구환경과 불평등이 없는 참 세상을 향해 내달릴 수 있다. 우리가 이 일을 해낼 거라 믿어야 한다.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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