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과 삼척 일대에 대형산불이 계속된 5일 저녁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한 주민이 민가 가까이 다가온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강릉·동해 등 동해안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산불의 배경에는 겨울 가뭄, 양간지풍, 침엽수림이 중첩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변화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미국 등 외국에서 대형산불을 일으킨 것처럼 이번 산불도 ‘기후재난’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경북 울진을 시작으로 동시다발한 동해안 산불은 6일 현재까지도 진화 작업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울진 산불은 4일 국가보안시설인 한울원자력발전소 인근과 삼척 엘엔지(LNG)생산기지 2㎞ 인근까지 번졌다. 같은 날 울진과 삼척에는 ‘심각’ 단계의 산불경보가 발령됐다. 이번 산불로 6일 오후 2시 기준 울진 1만2039㏊, 삼척 656㏊ 등 총 1만2695㏊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여의도 면적(290㏊)의 43배다.
올해 산불 빈도도 전년 동기의 2배에 육박할 정도로 잦다. 행정안전부 집계를 보면, 올해 1월1일부터 지난 5일까지 발생한 산불은 모두 245건으로, 전년 동기 126건보다 94.4%나 많다. 최근 3년(2019~2021년) 평균 135건과 비교하면 87.7% 많다.
겨울가뭄·양간지풍·침엽수림이 산불 대형화 불렀다
산불이 크게 번진 첫번째 원인으로는 50년 만의 겨울 가뭄과 강풍이 꼽힌다. 건조한 날씨 탓에 산림이 바짝 말라 불에 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 기상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1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의 강수량은 13.3㎜으로 평년 강수량인 89.0㎜의 14.7%다. 여기에 봄철 양양·고성과 강릉 사이 태백산맥 서쪽(영서)에서 동쪽(영동)으로 부는 거센 바람인 ‘양간지풍’(양양-간성 사이 강풍)이 가세해 불씨가 번졌다. 봄철 남쪽에는 고기압, 북쪽에는 저기압이 위치한 ‘남고북저’ 형태의 기압배치에서 강한 서풍 기류가 발생하는데, 이 기류가 태백산맥을 넘으면 고온건조해지고 속도가 빨라지며 태풍급(중심 풍속 초속 17m 이상) 위력을 갖게 된다. 2005년 4월 양양 낙산사 산불과 2019년 4월 속초·강릉 산불 등도 이 양간지풍으로 크게 번졌다. 지난 4일 울진군 일대에는 순간풍속 초속 25m 이상의 강풍이 불었고 경북과 강원도에는 강풍주의보가 발표됐다. 강풍주의보는 6일 오전에야 해제됐다.
소나무 위주의 산림 구성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다른 나무를 베고 소나무만을 위한 산림 관리를 해왔다. 특히 울진은 소나무림을 가장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곳 가운데 하나”라며 “소나무는 건조하고 기름(정유물질)을 품고 있어 굉장히 잘 탄다. 낙엽활엽수가 중간중간 섞여야 산불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여름 대형산불이 발생한 캘리포니아 산림 역시 침엽수림이었다.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메마른 산림이 불쏘시개 구실을 했고 봄철 동해안 일대의 거센 바람, ‘테라핀’ 등 정유물질을 품고 있는 소나무림이 산불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이 산불의 이름은 기후재난”...동해안 덮친 산불에 커지는 위기감
전세계 기후학자들은 그동안 기후변화가 산불을 부추긴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면 수증기 증발이 많아져 토양 등이 건조해지고 이는 불이 지속할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노르웨이 환경단체 그리드-아렌달은 지난달 23일 ‘산불처럼 번지다-이례적인 산불 위협의 증가 보고서’를 발간해, 기후변화와 토지이용 변화로 인해 대형 화재가 2030년까지 최대 14%, 2050년 30%, 2100년 5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또 산불 발생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기후변화가 더 악화되고 지구 온도 상승 억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기후·환경단체에서는 이번 산불을 기후재난으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3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리고 ‘#이_산불의_이름은_기후재난_입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울진 한울핵발전소, 삼척 엘엔지 생산기지 코앞까지 불길이 번져 많은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며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모두 답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기후재난으로부터 모두를 지키는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녹색연합도 성명을 내어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대형산불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겨울과 봄철 건조가 심각한 상황에서 대형산불의 위협은 계속될 것이다. 국가적 재난인 산불 대응을 기후위기 적응 차원의 대책으로 재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민제
summer@hani.co.kr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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