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인 원희룡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왼쪽)과 김상협 상임기획위원이 1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인수위원회가 온실가스 배출 증가, 원전 가동률 감소, 한국전력 부채 등의 이유를 모두 아울러 ‘탈원전’을 지목하며, 현 정부가 짜온 탄소중립 정책의 전면적 수정 방침을 공식화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원자력계와의 소통이 부족했고, 국가 에너지 체계 전반에 걸친 종합적 대책으로도 부족했다고 지적해왔다. 전기요금에 연료비 반영을 미뤄 인상을 막아왔다는 인수위의 주장도 수용할 지점이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원전강국’ 공약 이행을 위한 위한 명분쌓기로 왜곡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인수위는 2주 뒤 재생에너지 확대 등 추가 기후·에너지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인수위 기획위원회(원희룡 위원장)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실현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을 발표, 탄소중립 정책의 대대적 수정 방침 및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식화했다. 우선 올해 8월까지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올해 12월 10차 전력수급계획에 새로운 정책 방향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또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 위원회 구성원도 교체할 것을 시사했다. 이는 전략보고서로 더 구체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인수위가 내세운 근거들이 숨긴 비논리성이나 사실 왜곡이다.
① 원전 가동률 낮아진 이유가 탈원전? - “부실시공 때문”
인수위는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낮아진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등 다양한 기후·에너지 문제가 나타났다고 전제했다. 2017년과 2018년 문재인 정부 초반 원전 가동률이 줄고 원전 비중이 줄면서 석탄화력발전량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변화는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닌 격납건물 공극, 철판 부식 등 부실시공이 드러나고 정비가 필요해지면서 초래됐다.
특히 신한울 1·2호기는 경주·포항 지진 이후 2017년 내진설계 재평가를 받느라 준공이 지연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신한울 원전에 최초로 적용된 국산 계측제어통합설비(MMIS) 작동 오류문제 등으로 신한울 1·2호기 사업완료 시점을 또다시 내년 9월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원전의 이용률 하락과 건설 중 원전의 공기 지연은 원자력계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② 한국전력 부채 이유도 탈원전? - “천연가스 등 다른 발전원 수입 늘어난 것”
인수위는 원전 발전량 감소로 한국전력의 전력구입비가 13조원 증가했다고 말했다. 인수위 기후환경 대응 티에프(TF) 팀장이기도 한 김상협 인수위원은 “원전 관련 비용만 추출한 게 13조원이지만 부실시공 비용까지 포함된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지점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폭등 등 국제에너지시장 가격이 뛴 탓이 더욱 크다고 지적한다. `감원전'이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별도의 주원인이 있단 얘기다.
원전 확대 정책을 꾸준히 펴고 있는 프랑스도 지난 1월 전기위원회(CRE)가 지난해 전기요금 원가가 올라 주택용 전기요금을 45% 인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때문에 한전의 부채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국제 원자재·에너지 대란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③ 온실가스 배출 증가 이유도 탈원전? - 코로나 회복 등 복합적
인수위는 문재인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 “역행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나 탈원전 정책이 시행된 2017년 이후 증가하다 2019년과 2020년 감소 뒤 지난해 4.16% 다시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기준 온실가스 배출이 1.3% 늘어난 6억8500만톤에 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를 탈원전 정책 하나로만 상관 짓는 것도 무리다. 2019~2020년 배출량이 줄어든 데엔 코로나19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 것 또한 코로나19에서 회복하는 세계 경제 여파로 다시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난 추세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탄소중립이 그만큼 힘든 목표임을 인정할 때, 새 정부가 문재인 정부보다 더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체계적이고 전사회적인 노력을 해야하는데 탈원전 정책만 탓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12월29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④ MB ‘녹색성장’ 시절 친원전 정책 회귀?
2008년 이명박 정부는 1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 10여기를 새로 지어 원자력 발전비율을 2030년 59%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전 발전 확대, 수출 확대 등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함께 ‘녹색성장’이라는 그릇에 담았다. 김상협 인수위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실 미래비전비서관과 녹색성장기획관을 맡으며 녹색성장 정책을 설계했다. 김 위원의 인수위 합류로 기후·환경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이 이명박 정부 시절로 회귀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인수위는 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 등 부처의 정책을 추가로 보고받고 시민사회단체 의견도 수렴해 2주 뒤 재생에너지 확대 등 추가 기후·에너지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김 위원은 <한겨레>에 “(새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관련해) 선거 과정 중에 나왔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문제점부터 짚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전제하며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라 정해두었지만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7번의 전기요금 인상을 했지만 문 정부 때 전기요금 현실화를 이루지 못한 문제가 부담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녹색성장 기조처럼)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열린 ‘20대 대선 탈핵 정책 제안 기자회견'에서 활동가들이 핵폐기물 대책을 묻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비판적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인수위가 설명한 정책 방향은 오직 원전 확대에만 국한됐다. 인수위가 제시한 근거는 국민의힘이 지난 5년간 반복했던 묻지마식 탈원전 비판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한전 부채와 전기요금 인상은 화석연료에 과도하게 의존한 전력 생산 방식에 기인한다”며 “원전만 바라보다가는 국제 유가 변동을 비롯한 리스크 악화시킬 뿐”이라고 우려했다. “탄소중립을 핑계로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을 늘리려는 꼼수”라고 비판한 녹색당은 “원전 놀음에 정신이 팔려 당장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인수위를 비판했다.
300여개 시민사회단체 연대활동인 기후위기비상행동도 “인수위가 원전에만 매달리는 정쟁의 매몰로부터 빠져나와 기후 정책을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며 “기후위기를 핑계로 국민들의 안전에 또다른 위기를 불러오는 핵발전을 확대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인수위는 기후위기를 일으킨 원인은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성장주의 그 자체에 내재된 모순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